김태진 중앙선거관리위원장

▲ 김태진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사람들의 삶은 참 다양하다. 커피 한 잔으로 졸린 잠을 깨워가며 시험에 열중하는 고시생도 있고, 어두운 무대 조명 아래서 땀 흘리며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무명가수도 있으며, 타인을 위해 대부분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작은 노점 분식집 할머니도 있다. 하지만 누가 어떤 인생을 어떻게 살고 있든 간에, 그들 모두는 한가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것.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세상은 쉽게 오질 않는다. 밤을 새워가며 시험공부를 하지만 탈락의 쓴 잔을 마시는 고시생들. 음악에 대한 끓어오르는 열정은 마음속에 가득하지만, 변변한 무대조차 빌리기 힘든 가난한 가수 지망생. 그리고 김밥과 떡볶이가 나뒹구는 도로 앞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할머니. 자신의 이상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에 대한 서글픔, 그리고 원망스러움은 사람들에게 비난의 활을 쥐어준다. 그리고 그들이 겨냥하는 화살은 대부분 무능력해 보이는 사회와 그 사회의 리더를 향해 날아간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인류는 ‘사회’라는 집단을 만들고, 그 집단의 구성원들과 ‘함께’지내는 본능을 가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우두머리를 뽑는다. 처음 우두머리는 힘이 아주 세고, 포악하며, 동물과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전투력을 가진 강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인류가 ‘사회’라는 단어에 수많은 주석을 달았을 때쯤, 그들이 원하는 우두머리상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 그게 바로 지금의 우두머리, 즉 리더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며 세상이 편해지고 인류의 숫자가 증가할수록, ‘사회’자체에 참여하는 사람의 숫자가 줄어들게 되었다. 그 결과로, 다수가 뽑은 리더는 맞으나, 다수의 욕구를 충족해 줄 수 없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러한 모순적인 사회를 향해, 그리고 그렇게 사회를 만든 책임을 지닌 리더를 향해 화살을 날릴 자격이 있는 이들인가? 그 사회를 만든 것은 우리고, 리더를 만든 것도 우리인데 말이다. 결국 우리의 화살은 그저 자책(自責)아닌 자책일 뿐이다.

억울한가? 억울할 수 있다. ‘나는 리더를 뽑는 데 있어 현명한 판단을 했고, 꼬박꼬박 투표도 했다’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사람들은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뽑혔던 17대 대선에서 우리나라의 투표율은 63% 남짓이었다. 나머지 37%의 국민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불만이 있더라 하더라도 비난의 화살을 날릴 자격도, 억울해 할 이유도 없다.

KAIST는 지난 몇 년 사이에 수많은 일들을 겪었다. 회계를 날려버린 총학생회가 1년 동안 KAIST의 리더역할을 하기도 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연차초과자를 후보로 인정하지 않아 해산되고 비상대책위원회가 1년 동안 학교의 대표로 일하기도 했다. 작년에는 학우 4명과 교수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상황으로 인해 사상 처음으로 비상학생총회가 열려 수많은 학우들이 본관 앞 잔디밭으로 모이기도 했고, 연말에는 3개의 선거운동본부가 출마를 선언하여 치열한 경선을 펼치기도 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근 몇 년간 투표율은 50%를 겨우 턱걸이하는 수준이다. 정말 많이 느낄 수 있고, 정말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일들이, 우리 ‘카이스트 사회’에서, 바로 여러분의 눈앞에서 펼쳐졌지만 결국은 딱 절반사이의 관심거리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카이스트 사회’속의 불합리를 총학 탓으로 돌릴 자격이 있는 학생은 두명 중 한명에게만 있다.

대의민주주의는 자신의 주권과 결정권을 포기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개인의 목소리는 작으니, 리더를 뽑아 그에게 내 목소리를 키워 전달하는 것일 뿐이다. KAIST 학생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불합리함과 모순점에 대해 KAIST의 ‘리더’인 총학생회의 잘못을 꾸짖고 싶은가?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을 얻고 싶다면 투표하자. 출마한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반대표를 던져라. 어떤 선택을 하든, 나의 선택이 옳다는 것을 당당하게 보여주자. 그리고 후에 당당하게 비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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