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선배님, 이 선배님, 임 선배님…

대전에서 안부를 여쭙습니다. 건강하시죠? 창밖으로 KAIST의 교정이 보이는 신문사 제작편집실에서 편지를 띄웁니다. 이곳의 아침 햇살은, 첫만남처럼 어렵게, 때론 새내기처럼 수줍게 내리쬐고 있습니다. 거센 바람 사이로 빼꼼하는 따스함이, 계절은 ‘춘래사춘’입니다.

10시 20분이 지나면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홀로 또는 무리를 지어 움직입니다. 햇살마냥 뒤숭숭한 교정을 보니, 선배님을 처음 마주쳤을 때가 생각납니다. 아마, 일 년이 다 되어가지요? 학교 정문에서 무작정 내린 선배님을 우연히 맞닥뜨린 거요. 10학번 학생들을 꼭 만나고 싶어 서울 마포에서 내려오셨다고 하셨지요. 그게, 닷새를 씻지도 주무시지도 못하고 이 학교에서 기사를 쓰게 되는 시작이 될 줄이야.

4월 8일, 학교 본관은 난리가 났습니다. 본관 앞은 취재진이 타고 온 차량으로 주차장이 되었고, 방송국 생중계차라는 것을 처음 본 것도 그때였습니다. 원래 4명 남짓이 정원인 3층 기자실은, 30여 언론사에서 온 60여 명의 취재진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배님을 다시 보게 된 건, 기자실이 아닌 잔디밭이었지요. 애초에 동시간대 열리는 기자회견에는 관심이 없으신 듯 했어요. 학생들과 함께 김밥을 먹으며, 대학생 시절 자취방에서 구슬피 울던 기억을 털어놓는 선배님의 모습을 저는 기억합니다. 추모 헌화식에서 일부 기자들이 설정 사진을 요구해 상처를 받았다는 한 학생의 말에, 기자들이 참회해야 한다며 눈물을 머금기도 하셨죠.

한 주가 지나서 4월 15일까지, 학교에는 수십 명의 취재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잔디밭에서 만난 선배, 학생사회를 취재하는 현장에서 만난 선배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더욱 생생히 기억해요. 기자가 학생들에게 온갖 욕을 듣던 당시에, 이례적으로, 선배님이 쓰신 기사는 현실을 정확히 고발한 기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요. 학교의 주인이자 주인공인, 학생의 소리를 담아야 한다는 선배님의 고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일 거예요.

‘공교롭게도’ 선배님을 다시 뵙니다. 정권 말의 온갖 정의롭지 못한 일들을 폭로하는 특종 기사에서, 박 선배님과 임 선배님의 이름을 읽습니다. 부조리를 폭로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선배님, 마이크와 카메라를 내려놓으셨지요. 파업 영상에서 봤습니다. 그 파업을 취재하는 이 선배님, 인터넷 속보기사에서 자주 보고 있습니다. 무한 지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선배님들의 모습에서, 기자의 영혼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시국이 흉흉합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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