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미국 하버드-스미소니언 천문대는 중력파의 흔적을 검출했다고 밝혔다. 이 발견은 노벨상이 확정적이라고 할 만큼 혁신적이다. 중력파가 급팽창(인플레이션)을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력파 검출은 인류가 오랫동안 던져왔던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왔을까”라는 질문에 일부 답을 던질 수 있다. 이 오랜 질문에 대한 현대 과학의 답을 정리해보았다.

 
▲ /European Southern Observatory 제공
 

아인슈타인의 실수, 정상 우주

지금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 당연시되지만, 100년 전까지만 해도 우주는 팽창하지 않고 항상 똑같은 크기를 유지한다는 정상 우주론이 정론으로 받아들여졌다. 아인슈타인 역시 우주가 언제나 같은 상태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아인슈타인의 생각과 다르게 그가 처음 제시한 일반 상대성이론을 풀면 우주가 팽창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결론을 막기 위해 상대성이론을 임의로 수정하기까지 한다. 방정식에 우주상수라는 임의의 상수를 추가해 우주가 정상상태에 있을 수 있는 결과가 도출될 수 있도록 식을 변형한 것이다.

 

에드윈 허블, 우주의 팽창을 밝히다

하지만 정상우주론은 천문학자인 에드윈 허블이 1929년에 우주론의 시초로 불리는‘ 허블의 법칙’을 발표함으로써 깨진다. 허블의 법칙은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항성에서 오는 빛의 적색편이 정도가 항성까지의 거리에 정비례한다는 것이다. 관찰자에게 다가오는 광원의 빛은 도플러 효과에 의해 파장이 짧아지고, 관찰자로부터 멀어지는 광원의 빛의 파장은 길어진다. 허블은 도플러 효과와 천문학적 관측 결과를 이용해 멀리 있는 항성은 지구에서 멀어지는 속도가 빠르며, 가까이 있는 항성은 지구에서 비교적 천천히 멀어진다는 것을 밝혔다. 이는 우주가 팽창하며 공간 자체가 늘어난다는 것의 직접적인 증거가 된다. 이후 우주상수가 추가된 상대성이론 방정식이 물리학적으로 불안정해 정상우주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아인슈타인은 우주상수의 도입을 자신의 ‘일생일대의 실수’라며 철회한다. 

 

급팽창 이론으로 초기 우주 설명해

이후 과학자들은 우주가 처음부터 일정한 속도로 팽창해왔다고 믿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이러한 단순 팽창 모형의 모순이 발견되었고, 새로운 가설의 필요성이 대두한다. 1980년,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 앨런 구스는 ‘급팽창(inflation)’이라는 개념을 처음 만들어낸다. 급팽창은 우주가 처음 만들어진 후 아주 급격하게 팽창이 가속화되었다가, 이후 팽창 가속도가 줄었다는 이론이다. 급팽창 이론을 도입하면 당시 문제가 되었던 평평함, 지평선, 자기 홀극 문제를 설명할 수 있다.

 

팽창 속도를 가속시키는 진공에너지

급팽창 이론의 핵심은 진공에너지로 인한 우주의 급격한 팽창이다. 암흑에너지로 불리기도 하는 진공에너지는 아무 물질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 자체에 존재하는 에너지로, 특이하게도 공간을 수축시키는 중력과 달리 공간을 팽창시킨다. 우주가 처음 탄생할 때 우주에는 진공에너지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 진공에너지는 아기 우주의 팽창을 가속하는 역할을 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어린 우주가 팽창하면서 진공이 더욱 많아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주의 공간이 진공에너지 때문에 늘어났고, 늘어난 공간만큼 진공에너지가 늘어나는 양성 피드백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우주는 일정속도로 팽창하지 않고 계속해서“ 가속하며” 팽창한다. 이후 임계에 도달한 진공에너지는 다른 형태의 에너지인 물질, 파동으로 형변환한다. 진공에너지가 형변환하면서 급팽창은 종료되고, 우주의 팽창 가속도는 줄어든다.

 

▲ 마이크로파 우주 배경 복사=우주가 처음 만들어질 때 방출된 열을 찍은 사진이다. 중력파와 양자적 요동에 의한 독특한 패턴을 보인다/ NASA / WMAP Science Team 제공

 

급팽창 직후의 우주, 플라즈마와 우주 배경 복사 

급팽창이 끝난 뒤, 진공에너지는 대부분 물질과 파동으로 바뀌었다. 급팽창 직후의 우주는 너무 뜨거웠기 때문에 쿼크나 전자, 원자핵 등이 안정적으로 존재하지 못했지만, 우주가 식으며 입자들이 파괴되지 않게 되었다. 이후 우주는 양성자와 전자는 있지만 원자핵이 결합되지는 못할 정도로 뜨거운 플라즈마 상태에 돌입한다. 이 플라즈마 상태에서는 광자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다. 광자가 형성되어도 양성자와 전자가 광자를 곧 흡수해버리기 때문이다. 급팽창 후 10초 정도가 지나서야 비로소 플라즈마 상태가 끝나며 우주의 첫 원자가 형성되었다. 차츰 우주가 원자로 차기 시작하며 양성자와 전자가 광자를 흡수하지 못해 광자의 생존 기간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광자가 처음으로 우주 공간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우주의 첫 광자들은 아직도 관찰할 수 있다.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 배경 복사가 이 첫 빛이다.

 

인플레이션의 흔적, 우주 배경 복사의 발견

우주 배경 복사는 1948년에 조지 가모브에 의해 처음으로 예측되었고, 이후 1964년 실제로 관측되며 학계의 조명을 받았다. 이후 우주 배경복사를 감지해 존재를 널리 알린 공로로 로버트 우드로 윌슨과 아르노 펜지어스는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우주배경복사는 아주 우연히 발견되었다. 첫 발견 당시 윌슨과 펜지어스는 망원경의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사라지지 않는 잡음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 잡음은 우주의 모든 방향에서 오고, 또 그 세기가 일반적이지 않았다. 급팽창 이후 거대한 에너지가 방출되었고, 에너지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을 것이라는 논문을 읽은 뒤, 그들은 잡음의 정체가 우주 배경 복사라는 것을 깨닫고 그 사실을 발표한다. 이후 우주 배경 복사의 발견 덕분에 급팽창 이론은 학계의 정설로 자리잡는다.

 

양자적 요동이 은하계를 형성하다

우주 배경 복사에는 독특한 패턴이 존재하는데, 그 중 하나는 양자적 요동에 의해 생긴다. 현재 우주는 전체적으로 은하계의 분포가 균등하지 않다. 이는 우주가 식을 때의 양자적 요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급팽창이 끝날 때 모든 우주의 진공에너지가 한 번에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변한 것은 아니다.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어떤 곳에서는 에너지가 비교적 빨리 변화했고, 어떤 곳은 에너지가 늦게 변화했다. 이를 양자적 요동에 의한 우주의 불균등이라고 한다. 양자적 요동 덕분에 온도가‘ 거의 균등하지만 완전히 균등하지는 않은’ 현재의 우주가 탄생했다.

 

우주와 그 역사를 더 깊게 이해하려는 시도는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 발견된 중력파 역시 이러한 시도의 일환이다. 중력파는 공간에서 물질이 이동하거나 파괴되면 중력장에 생기는 변화가 퍼져나가며 관찰되는 파동으로, 우주 배경 복사에서 관찰되는 두 독특한 패턴 중 하나의 원인이다. 이 중력파를 이용하면 인플레이션이 어떤 시간대와 에너지 상태에 끝났는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주론과 인플레이션을 연구하는 우리 학교 물리학과 Ewan Stewart 교수는 “물리와 우주 연구의 역사는 인류의 근원적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라며“ 우주 연구는 철학적 의미를 지닐 뿐만 아니라 인류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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