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지 기자
©이윤지 기자

    매년 10월 11일은 ‘커밍아웃의 날(National Coming Out Day)’이다. 커밍아웃이란 ‘벽장 밖으로 나오다(coming out of the closet)’라는 비유에서 유래된 용어로, 성소수자가 세상 밖으로 나와 자신의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 등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을 뜻한다. 커밍아웃의 날은 벽장 문을 열고 나온 성소수자를 축하하는 한편,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개선 및 제고를 목적으로 하는 날이다. 커밍아웃의 날이 따로 제정되었다는 점은, 그만큼 많은 성소수자들이 우리 사회의 편견과 혐오를 피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34번째 커밍아웃의 날을 기념하여, 우리와 함께 학교에 다니는 다섯 성소수자 학우의 목소리를 담았다. 인터뷰이 보호 차원에서 가명을 사용하였음을 미리 밝혀둔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4년째 KAIST에 재학 중인 ‘르’입니다. 시스젠더(출생 시에 지정된 성별과 스스로 정체화하는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 트랜스젠더와 대비되는 개념.—기자 주) 여성이고, 호모섹슈얼(동성애자)입니다.

Q. 여가는 어떻게 보내시나요?

    예전에 카이스트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했습니다. 합주하는 것도 즐거웠고, 제 적성과도 잘 맞았어요. 지금은 바빠서 활동하고 있지는 않지만, 시간이 더 있었으면 계속 하고 싶었던 활동이었습니다. 다른 많은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날 때 유튜브나 넷플릭스, 왓챠를 통해서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냅니다. 최근에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라는 TV 프로그램을 즐겨 보고 있습니다.

Q. 르 님의 성적 지향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알린 적이 있으신가요?

    가족에게 털어놓은 적은 없고, 친한 친구들한테는 꽤 많이 털어놓았습니다. 그래야 친구들과 저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서로 공감해주고, 대화 주제도 넓어지겠다는 생각에서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제가 털어놔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긴 후에 털어놨기 때문에 다들 그냥 “그랬구나” 하고 넘어가는 정도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믿고 털어놔 줘서 고맙다” 이런 반응도 있었고요.

    한 번은, 어떤 친구에게 커밍아웃한 다음에 무안해서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TMI’인 것 같다”고 했더니, 친구가 “너에 대한 정보인데 이게 왜 TMI냐”고 말해주어 감동한 적이 있었습니다. 또 한 번은 커밍아웃하고서 친구에게 “내가 여자 좋아하는 거 이미 눈치채고 있지 않았어?”라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친구가 “나는 다른 사람의 성별 정체성이나 성 지향성을 마음대로 예상하지 않아”라고 답해주어 감동하기도 했습니다.

    커밍아웃 이후로 친구들과 더 돈독한 관계가 되었고, 한편으로는 저로 인하여 용기를 얻고 커밍아웃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Q. 학교생활을 하면서 르 님이 성소수자임을 자각해야 하는 순간이 있으셨나요?

    가장 흔하게는, 친구들이나 교수님께서 남자친구에 대해 질문할 때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돌려 말하거나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애인이 있어도 남자친구가 있는지 물어보면 그냥 없다고 답하는 편이고, 이상형을 물어봐도 최대한 이상형이 여성이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 답을 하는 편입니다.

Q. 교내에서 성소수자로서 받는 차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오프라인에서는 간혹가다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 누군가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하는 것을 제외하면 학내에서 차별을 마주하는 순간이 많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에브리타임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헛소리를 하면 “게이야”라고 반응한다거나 “난 게이는 그냥 싫어”라는 식으로 글이 달리는 걸 종종 봅니다. 이렇게 온라인상에서 혐오 발언을 당당히 하는 사람들이 우리 학교 구성원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오프라인에서도 조금 무서울 때도 있고, 아무래도 조심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반대로 성소수자로서 교내에서 환영받는다고 느꼈던 적도 있으셨나요?

    입학하고서 동아리박람회에 참여하는데 거기에 성소수자 동아리 부스가 있는 거예요. 성소수자 동아리가 다른 동아리와 함께 동아리를 홍보하고, 학우들에게 팸플릿을 나눠주는 것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어요. 또 한번은 신학관 앞을 지나가다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에서 하는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어요. 다양한 성별 정체성과 성 지향성이 새겨진 카드로 게임을 하고 교내에 숨겨진 프라이드 플래그를 찾는 행사였는데, 학교에서 이런 행사를 공식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보며 성소수자가 배척되지 않고 포용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Q. 이 자리를 빌려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제가 노력한 부분도 있고, 요즘 미디어에서 퀴어를 많이 접한 영향도 있고 해서 저희 가족들이 예전보다 성소수자에 대한 거부감을 덜고 친근감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당신의 딸이, 혹은 당신의 형제가 퀴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누구나, 당신 주변에 있는 누구나 성소수자일 수 있다.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아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학우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에브리타임 같은 커뮤니티에서 자신을 성소수자 당사자로 소개하며 질문을 받겠다고 하는 글을 가끔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익명이기 때문에 그분이 성소수자 당사자가 맞는지 확인할 길이 없고, 또 그걸 제외하더라도 한 사람이 성소수자 전체 또는 특정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 전체를 대변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그러니 그 사람의 말을 확대 해석하거나 일반화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본인이 퀴어 프랜들리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게 어려운 일이기는 하겠지만 그걸 좀 더 많이 드러내 주시면 모두에게 힘과 응원이 될 것 같습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KAIST에 다니는 트랜스여성 학생 ‘바람’입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태어날 때 지정된 성별은 남성이고, 최근에 알았지만 선천적으로 남성호르몬이 잘 작용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는 넓은 의미에서의 인터섹스(간성)이기도 합니다. 정체성은 여성 쪽에 가깝고, 1년여가량의 호르몬 투약을 거쳐 외형적으로는 웬만해서는 여성으로 보이지만 수술이나 법적 성별 정정은 아직 거치지 못했습니다. 현재는 휴학 중입니다. 학번이 어떻게 되는지, 어떤 전공을 하는지는 비밀로 해둘게요! 다만 이런 점만 제외하면 여러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흔한 KAIST 학생이에요. 어쩌면 길을 지나치다, 혹은 같은 수업에서, 동아리에서, 새터 반에서 한 번쯤은 마주쳤던 사람들일 수도 있어요. 누군가에겐 적당히 밝히고, 누군가에겐 꼭꼭 숨기면서도 학교를 그럭저럭 다녀왔답니다.

Q. 트랜스젠더로서 학교생활을 하면서 힘든 점이 있으셨나요?

    우선 화장실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네요. 학생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교내에서, 저는 제대로 갈 수 있는 화장실이 없답니다. 법적 성별의 문제 때문에 여자 화장실을 사용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남자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여기 왜 들어왔느냐고 말하는 듯한 눈초리와 이상한 시선, 그리고 심하게는 쫓겨나는 일도 몇 번 겪었거든요. 보통은 사람이 거의 없는 시간대를 노려 사용하는 편이지만, 교내에서 편하게 용변을 처리할 수조차 없다는 점이 많이 슬퍼요. 저는 어은동이나 궁동에서 저 같은 사람들도 이용에 무리가 없는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외우고 다니는 편이에요. 교내에 당장 성 중립 화장실이 설치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예요. 법적인 문제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제7조 1항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공중화장실 등에 남녀 화장실을 구분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기자 주) 그래도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서 인지하는 학우님들이 조금이라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우리 학교의 많은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합니다. 예상하시다시피 기숙사도 제겐 그다지 편한 곳이 아니었어요. 호르몬 투약을 시작하기 전에도 머리가 긴 편이어서 사감 선생님께서 “여학생이 여길 들어오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시려다 되레 사과하셨던 웃지 못할 일도 있었고, 공용 샤워실에서 몸을 씻을 때 혹여나 다른 사람이 들어오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떤 적도 많았어요. 물론 지금은 몸도 많이 변해서 기숙사 사용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고요. 복학하면 무조건 자취하려고 해요. 기숙사라는 편하고도 좋은 선택지는, 저희에겐 ‘선택지’에 들어갈 수조차 없는 거죠.

    물론 당장 북측 빈 공간에 ‘트젠관’을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걸 원하는 것도 아니에요. 다만 기숙사라 하더라도, 이를테면 원룸형으로 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선택지 등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Q. 우리 학교 구성원들에게 전하실 말씀이 있나요?

    여러분 주위 어딘가에는 ‘저희’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풋풋했던 새내기 시절, 면전에서 아무 생각 없이 프락터가 ‘당연히 이곳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혐오 발언을 내뱉어 속으로 슬프고 울적했던 기억이 아직도 제겐 남아있어요. 저희는 어떤 괴물이나 귀신 같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고, 그냥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이 부분만 한 번쯤 다시 생각해 주신다면 기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KAIST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K’라고 합니다. 정체성은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의 일종인 안드로진이며, 지향성은 양성애자입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입니다.

Q. 정체성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바이너리는 둘로 나뉘어 표현되는 것을 뜻하죠. 남성, 여성을 말합니다. 논바이너리는 따라서 남성이나 여성이 아닌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남성과 여성이 섞인 중성일 수도 있고, 온전한 남성 정체성과 온전한 여성 정체성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남성의 성분도, 여성의 성분도 없는 허수와 같은 성도 있을 수 있고, 자신에게는 성이 아예 없다고 인지하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모두를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라 칭합니다. 저는 그중에서, 남자와 여자가 섞인 중성인 안드로진으로 자신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Q. 학교에서는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아무에게도 커밍아웃하지 않은 상태로, 그냥 ‘많이 여성스러운 취향의 남자’ 정도로 살고 있습니다. 근데 제가 너무 티가 나게 하고 다녀서, 아마 연구실 친구들은 대강 짐작하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다만 안드로진이라는 개념이 잘 알려지지 않아, MTF 트랜스젠더로 생각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Q. 여가는 어떻게 보내시나요?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유튜브, 넷플릭스, 요리, 게임을 좋아합니다. 최근에는 양주 취미도 생겼고, 네일아트도 예뻐서 종종 하고 있습니다.

Q. 학교에서 K 님이 성소수자임을 자각해야 하는 순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학교에서는 그다지 없더라고요. 남자로서는 좀 유별나 보일 수 있는 복식이나 언행을 보여도 이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조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다만 일상에서는 이것저것 겪는 것이 많습니다.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되는 상황에서는 꼭 몇 번씩 다시 확인을 받아요. “K 씨 본인 맞으세요?”, “주민등록번호가 1이신데요.”라는 식으로 말이죠. 현재 사회 제도하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확인하시는 게 오히려 성실한 근무태도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고요.

    다만 제 정체성의 노출이 혐오 표현이나 무례로 이어질 땐 무척 당혹스럽긴 합니다. 이전에 부동산 중개사분이 제 주민등록번호를 보고, “실례일지 모르겠지만,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데 혹시 성전환수술 하셨나요?”라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럴 계획도 없을뿐더러, 무엇보다도 처음 본 사이에 단순 호기심으로 그런 신상에 관련된 질문을 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유방암으로 유방을 절제하신 분께 초면에 “유방암 절제 수술하셨나요?”라고 묻는 게 예의가 아닌 것처럼 말이죠. 실례일 것 같으면 그냥 하시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Q. K 님의 정체성을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 털어놓은 경험이 있나요?

    안타깝지만 가족에게는 커밍아웃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성소수자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종종 보이셔서, 솔직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일상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아직은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10년 이상 알고 지내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에게는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열린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라 별다른 동요 없이 모두 받아 주더라고요. 그 친구들과는 지금도 자주 연락하고 만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과는 남자 대 남자로 맺어진 관계이기에, 전과 같이 그대로 저를 그냥 남자로 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관계에 만족하고 있고요.

Q. 아직 K 님의 정체성을 모르는 친구나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제가 당신에게 커밍아웃한다면, 그건 당신을 매우 친밀하고 믿을 만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제가 당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커밍아웃 뒤에도 그대로, 저를 평소처럼 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남자로 인식한 사람은 그대로 남자로, 여자로 인식한 사람은 그대로 여자로 말이죠.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학교에 있는 성소수자이면서 기독교인인 ‘울프’입니다.

Q. 언제 정체성을 처음 자각하게 되셨나요?

    처음 알게 된 건 중학교 3학년 때이고, 그 당시 저는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저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많은 시간 동안 두 가지가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기독교인으로서 존재하고, 또한 성소수자로서 존재하는 세계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확실히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Q. 일상을 살아가면서 울프 님이 성소수자임을 자각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나요?

    최근에 누군가의 결혼식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결혼식에서 새로운 가정의 탄생을 축하하고 돌아오는 길에 ‘만약 내가 동성과 연애를 한다면 결혼을 꿈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인신고를 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 단계일 것입니다. 혼인신고 전에 주위 사람들에게 약혼자를 소개했을 때, 제가 안전할 수 있는 것이 그 전의 단계일 것입니다. 그 이전은, 제 성 지향성이나 성별 정체성을 주위에 알렸을 때 제가 안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어떤 성 지향성이나 성별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지 알아볼 수 있도록 보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Q. 울프 님께서는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로 변하기를 원하시나요?

    제가 성소수자로 자각한 첫 순간에는 관련 정보를 알아보기 힘들었고, 또한 매우 조심스러웠습니다. 저는 그래서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를 쉽게 알아볼 수 있고, 터부시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저의 정체성을 아직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했습니다. 친구 몇 명에게만 겨우 얘기하였는데, 한 명에게 얘기하기로 결심하고 실제로 얘기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려서 겨우 할 수 있었습니다. 이건 제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다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얘기하기에 더 안전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독자들에게 하고픈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주위 사람 중에 성소수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분들이 여러분에게 말을 아직 못했다면, 여러분이 믿음을 주지 못했다기보다는 아직 두려운 마음이 커서 그럴 것입니다. 두려운 마음이 사라질 수 있도록 용기를 주세요. 그런 작은 행동이 모여서 자신을 드러내기에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그런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데에는 구성원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KAIST 전산학부 학부생이자 수리과학과를 복수전공하는 ‘홍삼’입니다. 현재는 학교를 쉬고 스타트업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성소수자로 정체화하고 있습니다. 무성애 스펙트럼에 속하는 성적 지향을 갖고 있고, 성별 정체성의 경우에는 남성과 여성 어느 쪽도 아닌 논바이너리이자 여전히 저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퀘스처너리입니다. 비록 얼마 전에 공개적으로 제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을 밝혔지만,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저를 볼 때 성소수자로의 저 자신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의 저 혹은 제가 이룬 학술적·기술적 성취를 먼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Q. 학교생활을 소개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전산 전공에 수학 복수전공이라 두 학과의 수업을 많이 들었어요. 동아리는 학술 동아리 위주로 가입했어요. 그중 하나인 알고리즘 동아리 RUN에서 열심히 활동했는데, 스터디도 했고 친구들과 팀을 이뤄 알고리즘 대회인 ACM-ICPC에 나가 상을 받기도 했어요.

Q. 여가는 어떻게 보내시나요?

    주로 친구들과 만나서 놉니다. 집으로 불러 직접 요리한 음식을 대접하기도 하고, 보드게임을 할 때도 있습니다. 종종 산책도 합니다. 친구들을 맞을 준비를 할 때, 가끔은 화장을 해보면서 화장하는 법을 익히기도 합니다. 혼자만의 취미로는 알고리즘 문제 풀이와 음악 감상, 산책 등이 있습니다. 음악은 넬, 자우림 등 여러 밴드의 음악과 김뜻돌, 향니 등 여러 인디 뮤지션의 음악을 좋아합니다. 음악 쪽으로 ‘덕질’을 열심히 하면서 정신을 차려보니, CD 음반과 LP 음반도 모으고, 턴테이블도 사게 되었네요.

Q. 얼마 전 커밍아웃했다고 하셨는데 그때의 경험을 설명해주시겠어요?

    가족에게 커밍아웃한 적은 없지만, 몇몇 친구들에게 일대일로 커밍아웃을 한 바가 있으며, 최근에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제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이때, 많은 지인이 제게 응원한다는 연락을 주셨고, 응원이나 격려에 시혜적인 문맥이 있는지를 떠나 정말 감사했습니다. 퀴어 당사자인 친구들의 경우, 제 커밍아웃을 계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제게 공개한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커밍아웃 이후로 대개는 더 편하게 마음속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대부분의 친한 친구들과는 이전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거리가 조금 멀다고 느꼈던 지인 중 일부와 관계가 더 멀어진 것 같다고 느끼기는 했습니다.

Q. 학교에서, 혹은 일상을 살아가며 홍삼 님이 성소수자임을 자각해야 하는 순간이 있으셨나요?

    주변의 다른 젠더퀴어분들에 비해서는 심하지 않은 편이지만, 샤워 혹은 세수하다가 문득 거울에 비친 제 몸을 봤을 때 종종 디스포리아를 느끼며 제 성별 정체성을 다시 한번 마주하는 것 같습니다. 웹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하면서 실명 인증을 할 때도 남성이라는 성별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자잘하게 상처를 받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너무 많이 받아서 어느 정도 무뎌졌지만요.

    가끔 조교님과 교수님들이 제게 He/Him 대명사를 사용하십니다. 제가 원하는 대명사로 불리기 위해 제 성별 정체성을 상대방에게 공개하고, ‘부탁’해야 한다는 사실에 너무 슬펐던 기억이 있습니다. 차라리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실명으로 부르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Q. 성소수자라서 불편한 점이나 차별을 마주해야 했던 순간이 있나요?

    가끔 정보를 찾기 위해 교내외 익명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제 정체성을 부정하고 상처를 주는 글을 종종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런 글의 내용이 궁금해서 클릭했다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았는데, 요즘은 애써 무시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젠더퀴어인 동시에 그레이로맨틱(로맨틱 끌림을 느끼지 않는 무로맨틱과 로맨틱 끌림을 느끼는 유로맨틱 사이의 회색 지대에 있는 사람.—기자 주)이자 에이섹슈얼(무성애자)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지정 성별이 다른 친한 친구와의 연애 감정이 없는 관계를 주변에서 종종 연애로 오해하곤 합니다. 이런 점도 성소수자로서 불편한 점 중 하나입니다.

Q. 본인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질문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에는 사회적 정상성에 대한 선망에 짓눌려 정체화에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열린 마음을 갖고 생각해본다면 조금 덜 험난한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독자들에게 하고픈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먼저, 카이스트신문에 학교 내에 많이 존재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집단의 삶을 조명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인터뷰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는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성소수자는 남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존재임을 인식해주시면 더욱 감사할 것 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윤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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