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대계 세우며 학교의 정체성 확립해야

일간지에 <퇴진이 해결의 출발점> 칼럼을 기고하게 된 동기는

학교 내부의 의견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고 느꼈고, 그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교수협의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참여한 238명 교수의 77%가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한 만큼, 나의 의견이 평균적인 의견과 별 차이가 없다고 느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생각

대부분의 학생들은 등록금을 내지 않는다. 특히 상위 50%의 학생들은 위협감도 많이 느끼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난 비상학생총회에서 안건 하나가 부결이 되었는데, 이는 외부에 자살 사건이 아주 극소수 학생들만의 문제인 듯이 비친다.

학생들과 간담회를 열었을 때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몇 사람이 손을 들었고 친구들도 깜짝 놀랐다. 학생들은 친구들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확실히 모르고, 안건의 내용도 모르면서 표결을 했다는 것이다. 자살은 단순히 어떤 학생이 나태하고 의지가 약해 일어난 것이 아니다. 15년 전에 비추어 봤을 때 지금의 엄격한 학사 관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개인의 문제로만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 학교의 문제점은

우선, 징벌적 등록금 제도는 당연히 폐지해야 한다. 이 제도는 전세계 어느 학교에서도 성공했다는 사례가 없다. 우리 학교 정도의 재정이면 모든 학생들에게 일괄적으로 수업료를 조금씩 징수하고 필요한 학생에게 그마저 면제해주는 제도로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영어 강의는 우리 학교의 국제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 총장이 항상 추구했던 ‘2언어 캠퍼스'에 따라 강의도 두 개 언어로 진행해야 한다. 일단 영어를 못하면 탈락시키는 제도는 학생을 좌절하게 한다. 영어가 부족한 학생들에게는 영어를 영어로 가르치면 된다. 영어 강의로 쓴 맛을 보고 고통을 당하는 학생들이 없다면 정책의 의도가 괜찮은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정책은 교육이 아닌 것이다.


앞으로 우리 학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우리 학교의 정체성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고 본다. 우리 학교를 엘리트를 키우는 사관학교처럼 보는 관점과 여러 학교 중의 하나라는 관점 등이 있는데, 나는 실험 대학이라는 관점을 제시하고 싶다. 즉, 여러 제도를 개발하고, 나라 전체의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앞서서 실험하는 학교다. 목표를 대학 순위 10위권에 진입하는 것으로 잡는 것은 백년대계를 세우는 교육기관이 할 일이 아니다. 이는 우리의 열등의식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실패하는 모델을 계속 만들면 안될 것이다. 지금의 징벌적 등록금 제도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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