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우리 학교 창의학습관 터만홀에서 '총장과의 대화' 라는 이름의 간담회가 열렸다. 400명 정원의 간담회장은 참석 학우들로 가득 차고도 넘쳤다. 간담회는 자유토론으로 진행되어 심도 있는 토론이 이루어지지는 못 했지만 여러 학우들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었다. 이루어진 논의 중 굵직한 내용을 위주로 지면에 담았다 


오후 7시에 시작하기로 했던 간담회는 약 1시간 30분이 지연되어 오후 8시 30분이 되어서야 진행되었다. 서남표 총장이 간담회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 총장을 대신해 이승섭 학생처장이 총학생회와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라며 외부 언론사를 내보내고 비공개로 이야기할 것인지, 공개로 서 총장이 참석치 않은 채 이야기할 것인지 학생들에게 물었다.

이에 곽영출 총학 회장은 “공개로 진행해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학우 여러분이 원한다면 공개로 하지 않고 진행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외부에의 공개, 비공개 여부보다 총장과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금을 내는 국민들에게 알 권리가 있다는 등의 다양한 의견이 나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1시간 가량 이어졌다.

이어 보직 교수들의 10여 분 동안의 회의 끝에 서 총장이 간담회장에 입장했다. 서 총장은 ‘가족'끼리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좋겠다며 “외부 언론사 기자들이 있는 한 (학생들의 질문에)답변하지 않겠다"라고 못박았다. 이에 ‘기자들은 나가달라’는 학생들의 외침에 취재진이 우르르 퇴실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장내가 정리되자 간담회가 시작되었다. 늦었다는 것에 대한 서 총장의 사과는 없었다.

 

▲ 서남표 총장이 지난 8일 열린 간담회에서 학생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한 학교에서 연쇄적으로 자살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학교 측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것이 학우들의 대체적인 여론이다. 최인호 부총학회장이 학우들을 대표해 간담회 초반 서 총장에게 사건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서 총장은 “우리 학교는 훌륭한 학생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고 경쟁한다. 서로 더 잘하려고 하다 보니 경쟁이 자연히 심해지고 여러 압력이 생겼다"라며 “학생들이 스스로의 욕망을 자제하고 좀 편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라고 바람을 내비쳤다. 이어 서 총장은 여러 교육 제도의 개선안을 준비 중이었다며 “오는 5월에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준비를 하던 중 이런 일이 벌어져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뒤이어 단상에 오른 이균민 교무처장은 등록금 제도에 대해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두 가지 안을 발표했다. 첫 번째는 성적과 수업료를 연관시키는 차등수업료 제도를 폐지하고 8학기 동안에는 수업료를 징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학교에 8학기 이상 재학해 연차를 초과할 시에도 일반 국립대 수준의 등록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이 교무처장은 또한, 1, 2학년에게는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고, 3학년부터는 자연스럽게 함께 교육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후 한 학우가 서 총장에게 무엇이 문제라 생각하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다시 물었을 때, 서 총장은 학생들의 고민을 학교에서 조직적으로 도와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울증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이어 서 총장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우 한명 한명을 학교에서 관리토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소통의 창구 제도화 필요 vs 학생들과의 창구는 학생처장

지난 4년간 ‘서남표식 개혁안'에 대해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문제인, ‘소통'의 부족에 대한 지적이 이번 간담회에서 또다시 대두되었다. 학우들은 “모든 결정이 이루어진 후 학생들에게 공지를 하고, 심지어 정책의 대상자임에도 외부 언론을 통해 정보를 제공받는 때도 있는 상황이 학생들에게 심리적 박탈감을 불러 일으킨다, 소통의 창구를 제도화시켜 학생 대표가 결정권자의 범위에 참여토록 해야 한다"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서 총장은 우리 학교에서 학교를 대표하는 ‘학생들과의 창구’는 학생처장이라고 밝히며 자신이 직접 학우들을 만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과거 학우들과의 만남이 잘 성사되지 않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했다. 수리과학과 박사과정의 한 학우는 총장과의 만남의 자리에 학생이 적은 것은 그들이 정치에 불만이 없다는 것이라며 “(총장이 하나하나의) 학우들을 직접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럴 것이라면 학생회가 존재할 이유도 없다. 대신 학생 단체들이 대표성을 가질 수 있도록 힘을 실어달라"라고 당부했다.

한편, 기계공학전공 08학번 학부생은 가장 큰 문제점으로 서 총장의 정책이 처음 시행되었을 때 학우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그대로 밀어붙인 것을 꼽았다. 그러면서 지금 대안으로 내어놓은 정책들이 학우들의 반발을 살 경우 어떻게 대처할지 물었다. 서 총장은 “많은 정책에는 항상 반대하는 사람과 찬성하는 사람 두 편이 다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한쪽으로 결정을 해야 한다"라며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서 총장은 또한 결정권자의 범위에 학생들과 교수는 포함되지 않는 것이냐는 질문에, 우리 학교는 법인체이므로 서 총장 본인도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라며 “마지막 결정권자는 총장이 아닌 이사회"라고 밝혔다.

이어 서 총장과 최 부회장, 이 학생처장, 최병규 교학부총장, 주대준 대외부총장 등이 학우들이 학사연구심의회(이하 학연심)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학연심은 학우들과 관련된 정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리를 가진 기구다. 서 총장은 학우들의 요구에 확답을 주기 어려워해 학생들과 대립했으나, 논쟁 끝에 학연심에 학생들이 의결권을 갖지는 못하더라도 참석은 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 '총장과의 대화' 간담회에서 한 학우가 발언하고 있다

교육철학의 부재?

물리학과 박사과정의 한 학우는 “2007년에 수행된 정책을 4년이 지난 지금 사건이 생기고 나서야 수정한다. 이는 교육자로서의 철학의 부재 때문으로 보인다"라며 서 총장에게 교육자로서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물었다. 서 총장은 자신의 대학 재학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학교에 오래 있는 것이 학생들에게 좋지 않다”는 기존의 입장을 반복했다.

수리과학과 07학번의 한 학우는 “2008년 3월 12일의 공청회와 매우 유사한 말씀을 하시는 것 같다. 지금까지 서 총장의 취임 이후 모든 정책의 재검토를 요청한다"라며 서 총장의 교육 철학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 되물었다. 이 학우는 이어 “이번에 차등수업료 폐지라는 면피를 하는 것이 총장님의 철학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라고 발언했다. 서 총장은 이에 “이런 질문은 대답할 수 없다"라고 답했다.
 

정책 시행 시 준비 안돼 vs 새로운 정책의 과도기

2006년 서 총장이 취임한 이래로, 이른바 ‘서남표식 개혁'이라고 불리운 정책들에는 성적에 따른 차등 수업료 부과, 전과목 영어 강의 실시 등이 있다. 이들 정책에 대해 전기및전자공학과 박사과정의 한 학우는 학교 측에서 정책을 시행할 때 준비가 채 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학우는 “신입생 수를 1000명으로 늘릴 때 기숙사 부족 사태가 있었다. 식당은 현재까지도 부족하다"라며 당시 준비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이 학우는 또한 학부와 대학원 연차초과자의 등록금 납부에 대해 4년 안에 졸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우선 구축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서 총장은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준비가 없었다기보다는 새로운 정책이 적용되는 과도기로 보는 것이 바르다고 답했다.

10학번 한 학우는 의사 전달이 어려운 영어 강의에 대해 지적했다. 서 총장은 이에 “과학기술 비즈니스에서는 공통 언어가 영어이므로 영어는 중요하다. 세계가 영어를 공통어로 쓰므로 우리만의 초이스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 총장은 MIT 교수의 50%가 외국 교수라며,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경쟁하는지 봐야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줄세우기식 평가 아닌 학생 스스로 느끼는 성취감 평가해야

우리 학교는 줄곧 전 과목 영어 강의와 연습반 등으로 학습량이 과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무학과 10학번의 한 학우는 “교양 수업에서라도 전공 수업에서는 얻을 수 없는 즐거움을 얻어야 한다"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일부 과목에 한해서라도 학점을 매기는 줄세우기식 평가가 아닌 스스로 느끼는 성취감을 평가하는 새로운 평가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서 총장은 “학생들에게 이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게 정말 알아야 할 것만 가르치겠다"라면서도 “그렇게 하려면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학습량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신소재공학과의 한 학우는 학습량에 있어서 완급과 강약을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11학번 신입생은 인문학 교육의 확대를 요구하기도 했다. 서 총장은 “지금의 문화과학대학 규모로는 과학 기술 이외의 교육이 충분치 않다"라며 문화과학대학 전반을 재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리 학교 학생 문화는 ‘무한 비 하향 경쟁'

학내 분위기나 공동체 문화를 문제 삼는 학우들도 있었다. 전산학과 07학번의 한 학우는 “환경이 문화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 중 하나가 제도이다. 2007년부터 우리 학교의 학생문화는 무한 비하향 경쟁을 촉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라고 말했다.

서 총장이 대학은 학문적 지식을 가르치는 것과 학우들의 창의성을 계발하는 것, 두 가지를 다 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자 질문을 던진 학우는 균형을 강조하며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질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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