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류근철 교수님, 교수님께서는 우리 교수진에게는 아버님 같은 분이었고, 학생들에게는 자상한 할아버지였습니다. 또한, 교수님께서는 혼을 다해 우리 학교를 사랑하셨습니다. 마지막 남은 모든 것을 다해 이 땅에 과학 기술이 꽃피우기를 염원하셨습니다.                      

류근철 교수님, 이 어찌 황망한 일입니까? 지난 연초까지만 해도 우리 학교 캠퍼스에서 가장 젊은 교수라고 자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언제나 웃는 얼굴로 ‘사랑의 바이러스’를 전파하시던 교수님이 갑자기 떠나셨다는 소식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입원하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곧 나오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 젊은 교수로서 손색없는 걸음걸이였기 때문입니다.

교수님께는 많은 칭호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한의학박사 1호, 모스크바공대 의공학박사 1호, 기부왕, 우리 학교 명예공학박사 등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교수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교육자이셨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일하고 재산을 모았어요. 재산이 100억 가까이 되자 문득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이제 나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KAIST에 기부하니 홀가분했습니다”

이보다도 더 확실한 교육이 더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보다도 더 확실한 사회통합의 실천이 어디 있겠습니까.

교수님은 우리 캠퍼스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베푼 ‘러버(Lover)’였습니다. 항상 어린이 같은 해맑은 웃음으로 ‘사랑 바이러스’를 전파하셨습니다. 우리 학교와 인연을 맺은 약 3년간 류 교수님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생들과 교수들을 치료하고 상담해 주셨습니다. 신체적인 치료에서 그치지 않고 사랑으로 정신의 아픔도 고쳐주셨습니다. 신체가 불편한 학생을 찾아내 진료를 시작해 용기를 갖게 하고, 유학까지 갈 수 있게 해주신 사례가 한 예입니다.

교수님은 캠퍼스 내에서 가장 열심히 탐구하는 교수였습니다. 평생 끊임없이 새로운 장비를 고안해 내셨습니다. 단순한 한의사가 아니었습니다. 완전한 발명왕 공학자였습니다. 당신이 발명한 헬스 부스터 장비를 끊임없이 개량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마지막까지 부작용 없는 고성능 항생제를 개발하겠다는 열정을 불사르고 계셨습니다. “나는 부작용 없는 항생제를 완성하지 못하면 저 세상에 갈 수 없어요. 신약을 개발하여 엄청 수익을 올려, 교수 학생들에게 연구비를 듬뿍 줄 수 있게 해놓고 갈 겁니다”

류근철 교수님, 교수님께서 떠나신 우리 학교 캠퍼스는 황량한 시멘트 건물로 변해버린 느낌입니다. 여전히 일만여 명의 학생 교수진이 움직이고 있지만 허전함이 곳곳에 검은 연기처럼 스며 있습니다. 머리가 아프면 언제든지 찾아가 엄살을 피울 곳이 있었습니다. 걱정거리가 있으면 찾아가 상의할 수 있었습니다. 동료와 서먹해지면 어떻게 풀지 상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사라진 캠퍼스에는 교수님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큽니다.

교수님, 그토록 사랑하던 우리 학교 캠퍼스, 학생, 교수를 뒤로하고 어떻게 떠나시렵니까? 이제 그 빈자리를 저희가 채우도록 하겠습니다. 받은 사랑을 더욱 크게 키워서 후배들에게 전해주겠습니다. 그렇게 염원하시던 과학기술 선진화와 노벨상 수상도 저희가 해내겠습니다. 부디 가시는 걸음 편히 하시고 편안히 잠드십시오. 삼가 교수님의 명복을 가슴속 깊은 마음으로 간절히 간절히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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