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비용으로 넓은 면적에 균일한 나노 패턴 만들어

더 작고 균일한 패턴을 개발하는 것은 반도체를 연구하는 많은 과학자의 꿈이다. 한정된 면적에 더 많은 회로를 집약할수록 반도체의 성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신소재공학과 김상욱 교수팀은 스스로 나노구조를 형성하는 고분자의 분자자기조립(molecular self-assembly)을 이용해,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패턴을 나노미터 크기로 효율적으로 전환하는 공정을 개발했다. 기존 어떤 기술보다도 적은 비용으로 넓은 면적에 초미세 나노패턴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빛으로 반도체 깎아 회로 만들다

현재 반도체 회로 제작에서는 광 리소그래피(Optical Lithography) 공정을 널리 이용한다. 리소그래피는 원래 석판 인쇄란 뜻으로, 광 리소그래피는 빛을 이용해 반도체 회로를 깎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기존의 반도체 공정은 탑-다운(top-down) 방식의 일종인데, 이는 마치 큰 돌덩이를 조각해 원하는 형태의 조각상을 얻는 것과 같다. 하지만, 회로의 크기가 작아지면 빛이 회절, 간섭해 원하지 않는 부분까지 깎여나간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탑-다운 공정은 30나노미터 보다 작은 회로 제작에는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탑-다운 방식과 반대되는 개념인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이 문제에 새롭게 접근했다.

바텀-업 방식은 작은 벽돌을 모아 원하는 형태의 벽을 쌓는 것과 같다. 이는 원자나 분자를 조작해 원하는 구조체를 형성하는 것을 말하는데, 생명 현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과학자들은 단백질과 RNA  바이러스를 형성하는 것처럼, 분자자기조립으로 미래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개발을 진행중이다.


고분자를  조립해 패턴 형성

분자자기조립이란 무질서하게 존재하던 분자들이 상호작용에 의해 자발적으로 조직적인 구조나 형태를 형성하는 현상이다. 과학자들은 고분자의 종류 중 하나인 블록공중합체(block copolymer)의 분자자기조립을 조절해 나노패턴을 만들었다.

이 나노패턴의 원리는 다음의 예를 통해 상상할 수 있다. 1학년 1반의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은 사이가 좋지 않다. 그들은 같은 반이기에 떨어져 있지 못하지만, 남자들은 남자끼리만, 여자들은 여자끼리만 뭉쳐 다니려 한다.

에틸렌이 중합해 폴리에틸렌이 되듯, 보통 고분자는 하나의 단위체로 이루어져 있다. 블록공중합체는 이와 달리 다른 단위체를 가진 두 개의 고분자 블록이 이어진 물질이다. 이러한 고분자 블록들은 잘 섞이지 않아, 마치 남학생과 여학생처럼 서로 갈라지려 한다. 하지만, 이들은 강한 화학적 결합에 의해 갈라지지 못하고 같은 종류의 고분자 블록끼리만 뭉친다. 따라서 블록공중합체가 상 분리를 일으켜 새로운 구조를 만든다. 이 때, 두 블록의 조성비가 비슷하면 얇은 판 구조가 생성된다. 이를 통해 정렬된 나노 패턴을 새긴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블록공중합체 나노구조는 패턴의 배열이 일정하지 않고 수많은 결함을 가진다. 따라서 넓은 면적에 정렬된 패턴을 만들기 어렵다.


세계 최초로 정렬된 나노패턴 만들다

김 교수는 선행 연구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광 리소그래피 공정과 블록공중합체 분자조립 나노구조를 융합해 새로운 방식으로 나노 패턴을 형성했다.(그림 1)

먼저, 광 리소그래피 공정으로 반도체 기판에 미리 미세한 나노패턴을 새긴다. 그 후, 블록공중합체 필름을 코팅하고 열을 가해 분자가 기판상의 패턴을 따라 스스로 정렬하도록 했다. 각목을 격파하기 전에 톱질을 해놓으면 그 방향대로 나무가 쪼개지는 것처럼, 미리 패턴을 새겨놓으면 블록공중합체가 패턴을 따라 조립된다.

이 기술은 분자조립 나노패턴을 완벽하게 정렬시킨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아 2003년과 2005년에 네이처 지와 사이언스 지에 관련 논문이 게재되었다.

그러나 초기에 나노패턴을 새길 때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반도체 기판에 미리 나노패턴을 새길 수 있다면 굳이 블록공중합체 코팅을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광 리소그래피 패턴을 틀로 블록공중합체 패턴 증폭

김 교수팀은 이번 연구에서 그동안 제기된 비판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먼저, 기존의 광 리소그래피 공정으로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패턴을 만든다.(그림2 가) 이 틀 사이에 블록공중합체 필름을 코팅하고 열을 가하면 고분자들이 잘 정렬된 형태로 분자자기조립을 하게 된다.(그림2 나) 이 정렬된 형태를 화학공정을 통해 아래의 기판으로 그대로 옮길 수 있다. 이제 표면에 남은 모든 것을 제거하면, 전 과정에서 생긴 기판 상의 패턴이 새로운 틀의 역할을 한다.(그림2 다) 다시 표면 전체를 블록공중합체 필름으로 코팅하고, 같은 과정을 거치면 적은 비용으로도 넓은 면적에 균일한 패턴의 회로를 만들 수 있다.(그림2 라)

김 교수는 “이 기술은 자유로운 형태의 나노회로를 만들기는 어렵지만, LCD 디스플레이의 밝기를 증가시킬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앞으로는 LCD TV 등에 쓰일 큰 기판에 나노패턴을 고르게 형성시킬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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