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과학관에 혁명을 일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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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과학관에 혁명을 일으키다
  • 박진현 기자
  • 승인 2010.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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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이는 미국의 과학사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머스 새뮤얼 쿤(Thomas Samuel Kuhn)이 그의 저서인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그는 패러다임이란 개념을 통해 인류가 오랫동안 신봉해오던 과학의 본성을 다루는 과학철학에 과감하게 도전했다. 결국, 그는 패러다임이라는 단어 하나로 과학계는 물론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패러다임이란 무엇이고 쿤이 말하는 과학의 본성은 무엇인지 ‘Philosophy of Science’과목을 강의하는 인문사회과학부 이정민 교수에게 들어보았다

기존 과학철학은 논리실증주의를 표방
과학철학은 과학 이론이나 개념, 과학의 방법론 등을 탐구하는 철학의 한 분야다. 그 기원은 과학자이면서 철학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헬름홀츠, 마하, 푸앵카레 등이 활동하던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에 과학철학이 별도의 분야로 확립된 직접적인 계기는 논리실증주의자들과 그 추종자들이 표방한 과학적 철학의 이념에 있다. 그들은 자연과학 이론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프레게-러셀의 새로운 논리학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20세기 과학의 놀라운 진보에 자극받아 철학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개혁하려는 시도를 한다. 안락의자에서 이루어지는 공허한 사고에 반대하는 이들은, 자연과학이 철학의 탐구 대상임을 분명히 밝히고, 철학자들이 그 이론의 구조나 개념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일을 떠맡기를 바랐다. 철학자와 과학자 사이의 긴밀한 협력과 분업을 통한 이러한 작업에서, ‘철학은 과학의 논리적 분석이다’라는 새로운 이념이 생겨났으며, 이것이 20세기 중반까지 과학철학 분야를 주도한 생각이었다.


토머스 쿤, 과학철학에 도전하다
이러한 논리실증주의가 주도하던 과학철학에 새로운 도전을 던진 이가 바로 토머스 쿤(1922-1996)이다. 쿤은 하버드대학교에서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곧 과학사로 연구 분야를 전환한다.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이가 바로 화학자 출신의 당시 하버드대학교 총장 제임스 코넌트이다. 그의 권유로 과학을 전공하지 않는 학부생을 대상으로 고전 위주의 과학 역사를 강의하면서 쿤은 과학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경험을 통해 그가 발견한 것은, 물리학도로서 알고 있던 과학의 교과서적 모습이 역사를 통해 드러난 과학의 모습과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처음 아리스토텔레스를 강의하기 위해 그의 저서를 검토하던 쿤은, 근대의 뉴턴 역학 관점에서 볼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역학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떻게 오랫동안 모든 학문의 권위자로 군림할 수 있었는가? 아마도 당시 사람들이 그의 이론을 이해하는 방식과 우리가 그의 이론을 평가하는 관점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관점에서 그의 저서를 다시 검토한 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나름대로 훌륭한 물리학자라고 느끼게 되었다. 즉, 현대 과학자로서의 관점을 접고 과학사를 검토하니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 역학에서 근대 역학으로의 전면적인 변화가 그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그가 목격한 체계의 변화에서 훗날 패러다임과 과학혁명으로 알려진 쿤 과학관의 중심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과학혁명의 구조, 쿤의 과학관을 담다
하버드대학교에서의 과학사 교육 경험은 쿤의 과학관뿐만 아니라 그의 직업 또한 바꿔놓았다. 과학의 변천, 특히 어떻게 낡은 체계에서 새로운 체계가 나오느냐는 물음은 근대 초의 코페르니쿠스 혁명과 20세기 초 양자론 역사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으며, 방대한 양자물리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을 주도하기도 했다. 쿤의 이러한 역사가로서의 활동은 자신의 분야인 과학사를 넘어 인근 분야, 특히 논리실증주의가 주도하던 과학철학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데 바로 그의 주요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이하 ‘구조’)에서 이러한 영향이 압도적으로 나타난다. 
 

 상세한 과학사 연구로 무장한 쿤이 제시한 과학관은 주로 추상적인 논리적 분석에 의존하던 20세기 중반 과학철학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 과학철학은 주로 쿤에 대한 대응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영향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사회가 과학 지식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가를 연구하는 과학지식사회학이나 과학기술학(STS, science & technology studies) 등 과학학 분야 전반에까지 쿤의 ‘구조’는 학문의 중심이 되는 저서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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