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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사라진 세상, 호수가 되어버린 아이의 눈물
안드레이 즈비아진세프 - <러브리스>
[461호] 2019년 04월 30일 (화) 류제승 기자 ryjs9810@kaist.ac.kr

 시끄러운 TV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린다. 더는 서로를 향하지 않는 눈동자는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다. 인사 대신 비난과 질타가, 대화 대신 폭언과 욕설이 쏟아진다. 둘을 하나로 만들어주었던 모든 이유가 서로를 증오하게 만든 변명이 되어버렸다. 사랑이 사라진 곳에서, 아이의 소리 없는 울음이 깊게 가라앉는다.

 사랑이 사라졌다.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나이에 덜컥 임신해버린 제냐에게 보리스가 말했던 행복한 미래는 현실이 되지 못했다. 그때, 그들은 서로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지만, 지금 그들은 서로를 위해 어떤 일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느새 각자의 미래를 꿈꾸게 된 제냐와 보리스에게, 어린 아들 알로샤는 떠맡고 싶지 않은 짐 덩어리가 되었다. 늦은 밤, 부모가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그들이 자신을 돌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알로샤는 이불 속에 숨어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 집 안을 가득 채운 지독할 정도로 차가운 어둠이 알로샤를 짓누른다.

 보리스와 제냐에게는 사랑이나 가정보다 타인의 시선이 더 중요하다. 보리스는 이혼한 사실이 알려지면 직장에서 해고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정을 유지해왔다. 제냐와의 관계가 극에 치닫자, 그는 어떻게 하면 빠르게 이혼한 후 바로 내연녀 마샤와 재혼할 수 있을지 궁리한다. 그는 예전에 제냐에게 그러했듯, 임신한 마샤에게 사랑을 속삭인다. 제냐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온종일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제냐의 삶은 SNS에 보여주기 위해 존재한다. 부유한 사업가 안톤과 재혼을 결심한 제냐는 자신의 아들인 알로샤를 악마라 부르며 그의 얼굴을 마주 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두 사람이 모두 집을 비운 날, 알로샤가 사라진다.

 사랑이 사라진 세상은 영화 속에서 기분 나쁠 정도로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사랑의 빈자리는 허영심과  쾌락으로 채워진다. 보리스와 제냐는 이혼만 한다면 진실된 사랑을 할 수 있을거라 믿지만, 동시에 그 짧은 쾌락의 끝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보리스와 제냐 사이의 뿌리깊은 감정의 골과 불신은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들은 부모로서 사라진 아이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며 실망한 관객들에게는 그 마저도 가식으로 느껴진다. 사랑이 사라진 세상의 모습은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느껴지기에, 차갑고 불쾌한 분위기는 관객들에게 빠르게 전염되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영화는 주인공들의 이야기 외에도 많은 장치를 통해 사랑이 사라진 사회를 경고한다. 사람들은 SNS상의 행복한 자신을 연기한다. 진실한 인간관계보다는 겉보기에 아름다운 관계를 원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TV와 라디오를 통해서 들려오는 뉴스에는 우크라이나 폭격과 뇌물 수수 혐의를 받은 정치인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개인의 이익이 인간애를 잃게 만든 사건들이지만, 뉴스를 듣는 누구도 이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자식 잃은 부모의 아픔에 차갑게만 반응하며 자선단체에 일을 떠넘겨버리는 경찰의 모습도 메마른 세상을 보여준다.

 무관심과 증오가 번진다. 보리스와 제냐는 알로샤의 실종을 통해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각자 다른 위치에서, 타인의 사랑을 좀먹고 증오를 퍼뜨리는 존재가 되었다. 사라진 알로샤는 안타깝게도 어떤 것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아이의 텅 빈 눈에 비쳤을 차가운 호수 속에는, 어쩌면 사랑이 사라진 우리 사회가 비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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