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애리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시 부문

  올해는 예년보다 많은 시들이 응모작품으로 들어왔으며 시의 수준 역시 향상되었다. 이것은 시 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여서 심사위원 모두에게 올해의 심사는 즐거운 일이 되었다. 틀에 박힌 일상 너머로 새로운 하늘, 새로운 바람, 새로운 햇살, 새로운 인간, 새로운 세계의 모습을 펼쳐 보여주는 것이 시의 본령이라면 이번 응모작품들은 작지만 새로운 세계를 펼쳐보여 준 점에서 높이 살 만하다. 30여편의 응모작 중에서 진지하게 고려했던 작품은 김예은, 오현진, 맹수연, 김평, 백광열의 시였다. 맹수연의 작품에서는 비루한 삶을 껴안는 따뜻함과 자유자재로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돋보였다. 백광열의 시는 하나의 이미지에 집중하여 세밀하게 그려나간 점을 높이 샀다. 김평의 시 역시 세심한 한 순간에 집중하여 그 순간을 더 풍성하고 충만하게 동심원적으로 확산시켜나간 점이 놀랍다. 김평과 맹수연은 작년의 당선자인 점에서 올해 수상에서 제외하기로 하였으나 특히 김평의 시의 발전에 칭찬을 보낸다. 가작으로 선정한 오현진의 시는 관념적이며 동시에 생생하게 이미지를 포착해낸 점을 높이 샀다. 현실과 그 현실을 넘어서려는 욕망에 대한 통찰, 그것을 구체적 이미지로 재현한 점, 색채의 대비와 같은 대상에 대한 다른 단어의 치환 등에서 보이는 뛰어난 언어 감각, 이 모두가 오현진의 장점이다. 이 시를 가작으로 선정한 이유는 이따금 생경한 이미지와 언어가 돌출되어서이지만, 그의 잠재적 힘에 기대하는 바 크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김예은의 시는 여러 감정의 결을 거두어들이고 정제된 표현으로 출렁이는 새로운 세계를 펼쳐보인 점을 높이 샀다. 새가 나무에 앉았다 날아가는 평범한 장면이 김예은의 시선으로 인해“살짝이는 바람”도, 휘청이는 가지도, “지친날개 쉬다” 사라져가는 새도 새롭게 탄생한다. 이 자체가 새로운 풍경이며 동시에 이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의 일렁임으로 인해 새로운 내면 풍경이 빚어지기도 한다. 결국 새와 나무의 만남 그리고 그로 인한 세계의 변화는 인간과 인간의 만남과 그로 인한 인간의 변화로 이어진다. 당선작 ‘친구라면’ 이 말끔한 백자처럼 완결된 작품이라면,‘갈증’은 거친 표면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일부인 세계를 형상화해내는 시인의 힘을 보여준다. 당선자와 응모자 모두에게 격려를 보낸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지만, 바로 그대들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김영희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수필 부문

  올해는 수필 응모 분야에 평론이라는 장르가 더해졌다. 그렇더라도 대개 10편에도 훨씬 못 미치던 예년에 비해 올해는 필자로는 25명, 작품으로는 30편이 투고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거기다 일정한 수준에 오른 작품들이 상당수 있어서 질적으로도 도약이라고 할 만하다. 응모작이 늘어나기를 희망하며 지난 해 심사평을 마무리했던 선자로서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낭보다. 더구나 지난해 눈여겨 보았으나 뒤로 밀렸던 작품의 필자가 새로운 글로 당선자가 되었으니, 선자로서도 기쁘지만 이번에 아쉽게 탈락한 필자들에게도 격려가 될 법하다.


  여러 수준작들 가운데 선자가 특히 주목한 작품은 임성민의 ‘물을 거스르는 물고기’ 진용진의 ‘주택가를 걷다’ 오세범의 ‘무개성의 애정시대’ 전종욱의 ‘장난감과 투 포톤’등 네편이다.

당선작으로 뽑은 임성민의 작품은 관찰과 묘사의 힘이 돋보이는 글이다. 개천에서 잡 아온 물고기를 어항에 넣고 기르다가 다시 방생하게 된 경위를 찬찬이 서술하는 가운데, 무료한 일상의 느낌이 함께 묻어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작은 깨달음도 동반된다. 자신이 안고 있는 고민을 토로하는 부분이 좀 추상적으로 여겨지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이야기만을 하겠다는 엄격함이 돋보였다. 진용진의 작품을 가작으로 선하면서 높이 산 것은 실험성이다. 수필임에도 3인칭으로 서술하여 소설적인 요소를 활용하였고 인물들, 상황들을 스케치하는 필법이 활달하다. 패기도 있고 관찰과 서사의 기본기도 갖추고 있으나, 한 편의 글에 너무 많은 것을담으려다보니 산만해졌다. 하나로 꿰는 큰줄기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겠다.


  오세범의 작품은 2년 전 당선작 없는 가작에 선정되기도 한 투고자의 신작으로,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진솔한 고민을 이번에도 역시 발랄한 문체에 담았다. 말미에 가서야 이 글이 ‘애인’에게 보내는 ‘연애편
지’임이 드러나게 한 것도 재미있는데, 다만 이런 형식을 뒷받침하기에는 ‘연애’의 구체적인 내용이 잘 잡히지 않는다. 전종욱의 작품도 흥미롭게 읽혔다. 과학도이자 아버지로서 부딪친 과제 해결과정을 연결하여 풀어내는 방식이 자연스럽고 이를‘장자’의 가르침으로 연결해내는 솜씨도 좋았다. 그러나 조급하게‘메시지’로 달려간 것은 아쉽다. 그 외 임현수, 윤송이, 정혜윤의 글도 나름의 개성과 특장을 갖고 있으나, 여기서는 이름을 거론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수필을 흔히 붓 가는대로 쓰는 글이라고들 한다. 주어진 틀이 없다는 점에서는 맞지만, 그야말로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맞춤법과 어법에 맞게 쓴다는 것은 글의 기본인데 이 기본이 부족한 글들도 꽤 있었다. 글 쓰는 이에게 퇴고는 일차적인 의무가 아닐까. 수필 특유의 자유로움을 제대로 꽃피우는 일에는 나름대로의 기율이 필요한 것이다. 정해진 틀이 없는 대신 글에 맞는 자연스러운 얼개를 그때마다 새로 찾아내야 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와 기율의 조화라는 어려운 과제에 용기를 낸 모든 필자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사족 하나. 낯익은 이름들이 꽤 있었지만, 선정 자체는 그와 무관하게 이루어졌음을 밝혀둔다.

 


이상경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소설 부문

  이번 제14회 문학상 소설 부문에는 15명이 15편의 소설 작품을 응모했다. 시나 수필과 비교해서 아무래도 물리적으로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을 요구하는 소설 장르의 특성상 우리 학교의 학생이 소설 창작에 마음을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이렇게 소설의 모습을 갖추어서 응모에까지 이른 15명 학생에게 감사와 격려의 말을 전한다.


  응모작 중에는 가상의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현실의 알레고리를 설정하는 작품이 많았다. 이는 전통적으로 카이스트 문학상 응모작들이 매우 애용하는 방식이다. ‘과학기술’ 연구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야 하는 카이스트 학생들의 특성에 컴퓨터 게임 속에서 만나는 가상현실에 그만큼 익숙해진 세대적 특성이 부가되었을 수도 있겠다. 다만 이것이‘소설’의 모습으로 독자와 만나고자 할 때는 그런 가상의 시공간을 상정할 수밖에 없는 어떤 필연성을 가져야 하며, 가상의 시공간 안에서의 인물의 성격과 사건의 진행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그럴듯하게’전개되면서 문명비판의 모습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15편의 응모작 가운데서 나름대로 소설의 모습과 의미를 가지고 있는 네 작품을 우선 골라보았다. 여미주의‘강연회에서 생긴 일’은 특수한 소리를 내도록 고안된‘군가 로봇’이 어떻게 전쟁에 이용될 수 있으며 그것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를 상상하고 비판하는 내용이다. 가능한 상황을 설정하고 그 속에서 주제를 드러내고 있지만 단지 상황을 서술하는 데 그쳐서 아쉬웠다. 다듬고 살을 붙이는 과정을 거친다면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진용진의‘가리봉 청년, 시카고에 취업하다’는 한 청년이 시카고 미시간호에 면한 수족관을 폭파하여 고래를 타고 북극해인지 4차원의 세계로인지 가고자 한다는 이야기이다. 응모작 중에서 제일 긴 작품으로 일단 이 정도를 써내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과 써내려가는 필력이 필요하기에 기본기를 갖추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행동 사이의 내적 연관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여 주제가 모호하고 디테일에서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눈에 많이 띄어서 좀 더 연마를 기다리기로 했다.

강보라의‘스탠바이’는 언론사 취업 시험을 준비하는 유예된 인생에 대한 성찰이다. 글을 많이 써본 솜씨며,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소설을 창작하기로 했는지에 대한 의식이 뚜렷하다. 취업 면접을 하는 반나절 동안의 사건과 의식의 흐름을 통해 자신만만했던 학부생부터 눈총 받는 백수에 이르는 과정을 제시하는 기량과“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세대”에게“매번 규격에 맞는 대답을 요구”하는 것은‘고문’이라고 외치는 용기를 높이 사 당선에 올렸다. 이재기의‘도루묵’은 학부 2학년 학생의 작품으로 카이스트의 빡빡한 학사일정에 쫓기는 학생이 타임머신을 타고 입학 시기로 되돌아가 공부 빼고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해 본 뒤 약간의 후회를 안고 현실로 되돌아온다는 내용이다. 타임머신을 통한 시간여행이란 설정이 지극히 상투적이고 인물의 성격이나 디테일의 묘사가 너무 소략하기는 하지만, 모든 문학 작품이 기본적으로 현실 비판에서 출발하여‘소망’을 담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카이스트 학생의 현실과 소망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시험하고 그 절실함을 담아내었다는 점에서 가작에 올렸다. 자기 생활 속에서 진짜 하고 싶은 말로부터 소설 창작을 출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시정곤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시나리오 부문

  이번 문학상에 응모한 시나리오는 총 3편이다. 장성제의‘꿈’과 진용진의 ‘민영아’, ‘moment musical’ 등이다. 장성제의‘꿈’은 사랑과 희망, 그리고 이별의 아픔을 꿈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린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다. 진용진은 2편의 시나리오를 냈다. 두 편 모두 젊은 남녀의 사랑과 갈등에 대한 이야기다. ‘민영아’에서는 남녀가 서로 호감을 가지고 사랑을 느낄 때, 어떤 심리적인 반응을 보이는지, 그리고 또 어떤 비이성적인 행태를 드러내는지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moment musical’은 동거하는 두 남녀의 심리를 그린 것으로, 절대적 사랑을 갈구하지만 좀처럼 마음속에 담아둘 수 없는 갈등을 삼각관계를 통해 펼쳐보이고 있다. 상호 신뢰라는 굳건한 바탕 위에서만 사랑이 존립할 수 있지만,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해주는 이야기다.
 

  이 가운데 심사자가 주목한 것은 장성제의‘꿈’이다. 진용진의 2작품은 전체적으로 이야기 구성의 완결성이 부족하여 극적인 맛을 주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았다. 또한 전개과정이 너무 거칠고 묘사가 자연스럽지 않은 면도 나타났다. 그렇다고 진용진의 작품이 관심 밖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소재가 참신하고 실험정신이 강하다는 점, 그리고 심리적 갈등에 대한 내부 전개가 돋보인다는 점은 높이 살 만 했다. 심사위원들은 굳이 선정을 한다면 가작 정도는 줄 수 있을 것이라 의견을 모았지만, 이미 다른 분야에서 진용진의 작품이 입상권에 올라왔기 때문에 시나리오 부분에서는 입상을 고려하지 않았다. 진용진은 시나리오 이외에도 소설과 수필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많은 작품을 응모했다. 그의 왕성한 창작력을 치하하면서 앞으로 좀더 치밀하고 탄탄한 작품을 기대해 본다.


  장성제의 작품‘꿈’은 작품성에서 나머지 작품보다 더 탄탄함을 보였다. 특히 이야기 전개의 수월함은 흥미를 유발하고 작품의 흡인력을 증가시키는 요소라 생각한다. 다만 사랑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기를 가지고 꿈을 잃지 말자는 이야기의 소재가 너무 소박하고 일반적이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특히, 안타까운 죽음으로 꿈을 극대화하려는 마지막 부분의 전개방식은 좀더 치밀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쉬운 점은 많지만 전체적으로 매끄러운 구성을 높이 사 가작으로 선정하였다. 앞으로는 더욱 다양한 소재를 발굴하고 더 참신한 시도를 해본다면 작품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내년에는 더 다양하고 참신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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