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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회 카이스트 문학상] 시나리오 부문 가작 | 실조
[457호] 2019년 02월 12일 (화) 카이스트신문 kaisttimes@gmail.com

 

 

<실조(失調)>

생명과학과 17

김정현


#1. 골목길

아직은 차가운 늦겨울의 날씨. 바람 부는 골목길 사이로 민수가 걸어간다.


민수 (내레이션) : 지난겨울, 대학교 후배 놈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졸업할 때 만났으니 벌써 6년만인가? 녀석과는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고, 긍정적이고 성실한 구석이 있어 기억에 오래 남는 친구였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연락을 한 녀석이 괘씸하기도 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좋은 게 좋은 거지. 오랜만에 녀석 얼굴이나 보고 술이나 마실 생각이었다. 


#2. 음식집 안.


민수,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러고 나서 후배 윤석에게 손을 들어 웃으며 인사한다.


민수 : 윤석아!

윤석 : (자리에서 일어나며) 안녕하세요. 선배.

민수 : 정말 오랜만이다. 6년 만인가? 

윤석 : (웃으며) 네. 그러네요.


윤석과 민수, 자리에 앉는다.


민수 : 뭐하고 지냈길래 연락한번 없는 거야?

윤석 : 그냥... 이것저것 하느라 바빴어요...

민수 : 넌 예전 그대로다.

윤석 : 선배도요.

민수 : (윤석을 웃으며 바라보면서) 옛날 생각도 나고 좋네.


대화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둘의 모습.


민수 (내레이션) : 윤석이는 대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원에 갔다고 했다. 취업을 할 생각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연구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어 그렇게 결정했다고 한다. 학부 때에 잘 알던 교수님이 있어서 그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대학원 생활을 시작했다고 윤석이는 말했다.


   
▲ (ⓒ노제일 기자)

#3. 학교 안 가로수 길. (과거)


벚꽃이 흩날리는 거리. 윤석의 뛰어가는 뒷모습.

아침이라 붐비는 사람들 사이로 힘차게 뛰어간다.



#4. 윤석의 연구실 

윤석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윤석 : (몸을 수그려 인사하며) 안녕하세요.


몇몇 사람들이 간단히 손을 들어 인사를 한다.


화정 : (밝은 표정으로) 윤석 씨! 왔어요?

윤석 : (고개를 숙이며) 안녕하세요.

화정 : 이리 와서 좀 도와줄래요? 

윤석 : 네.


윤석은 화정을 따라간다.


실험장비 앞에 서있는 화정과 윤석.

화정 : 이건 여기를 누르면 시료 분석이 시작되는 거예요.

윤석 : (손을 앞에 모은 채로) 아! 네.

화정 : 그럼 일단 한번 해볼래요? 저는 다른 일 좀 하다가 와서 봐줄게요.

윤석 : 아(망설이다가).....네. 해볼게요(살짝 웃으며).

화정 : 그럼 이따가 한번 와볼게요.


화정은 화면에서 사라진다. 윤석은 기계를 작동시키고 뭔가를 적고를 반복한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 곁으로 다가오는 화정


화정 : 잘 됐어요?

윤석 : 아! 네.

화정 : 어디보자........ (윤석이 써놓은 종이를 유심히 본 후) 오. 잘 됐네요! 다만, 여기서 이 결과 값을 날려버리지 말고 여기서 다시 써주면 더 빨리 할 수 있어요.

윤석 : (웃으며)아.. 네!

화정 : 수고했어요. 시간 괜찮으면 지금 밥 먹으러 갈까요?

윤석 : 네!

화정 : (연구실 전체를 둘러보고 손뼉을 한번 크게 치며) 자! 여러분 지금 밥 드실 분들 같이 밥 먹으러 가요.


#5. 어느 음식점.


테이블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 윤석의 연구실 연구원들. 제육볶음이 메인인 백반집이다. 


화정 : (곁들임으로 나온 된장찌개를 푸며) 윤석씨는 대학원온지 얼마 안됐는데 힘든 일 없어요?

윤석 : 음...(천장을 쳐다보다, 옆을 보다 하며)학부 때에도 자주 와서 익숙한 부분도 있었지만, 대학원은 대학원이라 그런지 처음 입학했을 때는 이게 뭔지, 저게 뭔지 정신이 없었어요. 이제 조금은 감도 잡히는 것 같아요. 교수님도 열정적이시고.. 선배들도 잘 챙겨주시고..

화정 : (웃으며) 교수님은 너무 열정적 이여서 문제지. 맨날 방에서 나오시지도 않고.

윤석 : 맞아요. 교수님 지금도 밥 드시러 안 오고..

화정 : 그러니까요. 교수님도 정말 대단하시지...


화정, 음식점 창밖을 쳐다본다. 


화정 : 그나저나, 이제 여기도 이번학기만 지나면 안녕이네..

윤석 : 선배 이번에 졸업이라고 했죠?

화정 : 맞아요. 이번에 논문만 잘 통과되면 끝!

윤석 : 정말 부러워요.. 저는 이제 시작인데.

화정 : (웃으며) 금방 끝날 거예요! 저도 처음에는 이게 끝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금방 지나가더라고요..


윤석과 화정, 잠시 소리 내어 웃는다. 그러고 나서 윤석은 마저 밥을 먹고 화정은 창밖을 계속 쳐다본다. 햇살이 화사하게 그들을 비춘다. 

태양 클로즈업.


#6. 학교 안 가로수 길


파란 하늘 위, 작렬하는 태양

태양에서 거리를 걷고 있는 윤석의 모습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어느새 무더운 여름. 윤석은 반바지, 반팔 차림이다.

태양빛은 유난히 뜨겁고 윤석은 더운지 옷 앞섬을 잡고 바람을 낸다.

윤석은 계속해서 걸어간다.


#7. 연구실

윤석은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아무도 없는 연구실.

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다.  

윤석은 에어컨을 켜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쓰레기통을 비운다. 모든 사람의 쓰레기통을 비운 뒤 교수님이 계신 방에 노크를 한다.


윤석 : 교수님. 안에 계세요?


잠시 몇 초 동안 정적이 흐른다. 

인기척이 없자, 윤석은 문을 열고 들어간다. 들어가자 교수님은 의자에 드러누워 있다. 

윤석은 아무렇지 않은 듯 교수님 방에서 쓰레기통을 들고 나와 그 쓰레기통을 비운다. 

그때 연구실로 화정이 들어온다.


화정 : 윤석 씨 먼저 와있었네요. 

윤석 : 아 교수님도 계세요.

화정 : 교수님? 아 주무시고 계시는 구나?

윤석 : 네.

화정 : 근데 이따 9시에 랩미팅 시간이라 깨우는 게 좋지 않을까요?

윤석 : 아.. 그러네요. 제가 이따 가서 깨울게요.


#8. 연구실 내 회의실


윤석을 제외한 연구실 모든 구성원들이 탁자에 둘러 앉아있다. 그때 윤석이 들어선다.


화정 : 교수님은?

윤석 : (놀란 표정으로) 아 맞다.


윤석은 다시 나간다. 

#9. 교수님 방.


윤석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윤석 : (교수님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교수님!


교수는 아무 미동이 없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교수.


윤석 : (교수님의 양 어깨를 잡고 더 세게 흔들며) 교수님!


교수는 아무 움직임이 없다.

윤석, 교수를 털썩 내려놓는다. 교수는 힘없이 다시 눕혀진다.

윤석, 교수의 가슴에 귀를 갖다 댄다. 놀란 표정을 짓고 다시 귀를 가져다대 본다.

윤석, 교수님 방 문 쪽으로 뒷걸음질 친다. 그리고 방을 나오며 문에 알림판을 뒤집어 놓는다. 

윤석이 나온 방 문에 걸려있는 알림판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 ‘급한 용무 외 출입금지’


#10. 연구실 안 회의실


윤석 뛰어 들어온다. 


화정 : 교수님은?

윤석 : (어색한 표정으로)아 ..  많이 피곤하신지 안 일어나시더라고요.

화정 : (화난 말투로) 뭐라고? 


화정, 잠시 고민한다.


화정 : 오늘은 교수님 없이 진행하는 걸로 하고. 윤석씨도 와서 앉아요. 한달에 두 번 밖에 없고... 연구실 모두가 의견과 연구 진행을 공유하는 중요한 자리인 만큼 다음에는 교수님도 꼭 참석하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럼 연희 씨부터 발표해주세요....


점점 작아지는 소리. 그리고 페이드아웃(F.O)


#11. 윤석과 민수가 있는 음식점. (현재)


민수 : 그래서 교수님이 죽었다고? 갑자기?

윤석 : 네.. 저도 정말 놀랐긴 했는데..

민수 : 아무리 그래도 모른 체 할 건 또 뭐야?

윤석 : 그때는 저도 모르게 그랬던 것 같아요. 그 선배가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민감했었는데, 괜히 더 자극하면 안 될 것 같고... 왠지 그 선배가 그걸 알게 되면 큰일 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민수 : 그래도 결국 알게 됐을 것 아냐.

윤석 :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그렇긴 해도... 그때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제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이상한 행동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모르게...

민수 : 아냐 너를 혼내려는 게 아니야.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당황했을 거야. 아무튼, 그래서 언제 그 사실이 밝혀지게 되는 거야?

윤석 : 그게 아마도... 1시간 후요,

민수 : 그래? 

윤석 : 평소 선배 성격이라면 일주일 정도 까지 참았을 법한데, 당시 상황이 선배가 급한 상황인지라.

민수 : 그래서 어떻게 됐어?



#12. 연구실 (과거)

텅 빈 연구실. 아무 짐도 없다. 화정은 짐을 들고 나간다.


화정 : (차가운 표정) 수고했어요. 잘 지내요.

윤석 : 네. 선배도 잘 지내세요.


둘은 뒤돌아 가려는 도중,


화정 : (다시 뒤돌아보며) 혹시, 교수님 돌아가신 거 깨우러가면서 이미 알고 있었어요?

윤석 : 그게..

화정 : (짐을 잠시 창가에 놓으며) 진짜 알고 있었던 거예요? 어떻게 그걸 모른 체 할 수 있어요?

윤석 : 저는 선배가 너무 충격 받을 까봐...

화정 : (한 손을 이마에 짚으며)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윤석 : 선배가 졸업이 얼마 안남기도 하고...선배가 충격 받을 까봐..

화정 :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요.


화정,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그리고 살짝 흐른 눈물을 손으로 닦는다. 이내 내려놨던 짐을 다시 든다.  


화정 : 내가 괜한 걸 물어봤네. 잘 지내요.


화정은 뒤돌아 나간다.  


#13. 윤석과 민수가 있는 음식점. (현재)


윤석 : 정말 선배한테 미안했어요. 내가 그때 그러지만 않았어도 교수님은 살았을까? 하는 생각에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그 랩(laboratory, 연구실)이랑 비슷한 연구를 하는 랩이 없어서 그 선배도 막막했을 거거든요. 비슷한 곳을 굳이 따져보자면 ...음..

민수 : 너는? 너는 상관없어?

윤석 : 아...(잠시 정적)

민수 : (웃으며) 교수님이 죽은 건 너 잘못이 아니라는 거 너도 잘 알잖아. 그래서 네가 그렇게 미안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너는 그것 때문에 힘든 것 없었어?


윤석. 아무 말이 없다. 

막걸리 잔을 들고 있는 윤석. 점점 클로즈업. 윤석은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신다.


#14. 새로운 연구실. (과거)


윤석은 자리에 앉아있다. 예전보다 훨씬 넓고 사람이 많은 연구실. 그러나 윤석은 완전히 굳어있는 표정. 지루해 보인다.

연구원A가 교수님 방을 열고 나온다. 


연구원A : 윤석씨! 교수님이 부르시는데?

윤석 : (놀란 표정) 네?


윤석은 일어나 교수님 방으로 향한다.


#15. 새로운 교수님 연구실


교수님은 자기 자리에 앉아있다. 윤석은 교수님 책상 앞 작은 의자에 앉는다. 마치 병원에 진료 받으러 온 느낌. 여전히 윤석의 표정은 굳어있다.


교수 : 연구실에서는 잘 지낼만해요?

윤석 : (두리번대며) 네.. 

교수 : 온 지 3일 쯤 됐죠? 

윤석 : 네.

교수 : 이제 다시 연구 시작할 때가 된 것 같아서 불렀어요. 괜찮죠?

윤석 : (끄덕이며) 네.

교수 : 언제든 힘들면 이야기해요. 안 좋은 일 있기도 했고.

윤석 : 아 감사합니다.

교수 : 아닙니다. 아무튼....거두절미 하고. 윤석씨가 지금까지 해온 주제...미안하지만 이 연구실에서는 어려울 것 같아. 이게 비슷해 보여도 완전 내 분야 밖인데 내가 지금 그런 것 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네. 미안해요.


윤석은 말없이 교수를 쳐다본다. 힘은 없지만 약간은 놀란 표정.


교수 : 그래서 이 주제는 어떨까 하는데(교수, 종이를 건넨다.). 너무 딱딱하게 생각하지 말고 한번 해봐요.


윤석 : (종이를 받고 종이를 내려다보며) 교수님.. 그래도 한번만 다시 생각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연구였거든요..


교수 : 윤석씨. 그러지 말고 한번 해봐요.


그때 연구원A가 들어온다. 


연구원 A : 교수님. 어떤 분이 찾으시는데요?

교수 : 아 맞다. (일어서서 나가며) 암튼 윤석씨 하는 걸로 알고 있을게

윤석: 교수님!


교수는 이미 문을 나서고 난 뒤였다. 


윤석은 터벅터벅 힘없이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간다. 


#16. 새로운 연구실, 윤석의 책상.


윤석은 책상에 앉아 열심히 종이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갸우뚱대다, 이리저리 종이들을 둘러보다가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윤석은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본다. 

윤석은 멍하니 자리에 앉아있다. 그런 윤석 주위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아무도 윤석을 바라보지 앉는다. 

윤석은 가만히 창밖을 바라본다. 앙상한 나뭇가지사이로 눈이 내리는 모습. 하늘은 우중충한 회색빛이다. 

윤석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지쳐 보이는 표정. 천천히 걷는다. 그리고 유유히 연구실 밖을 걸어 나간다. 


#17. 거리. 코인노래방. 식당(몽타주)

- 거세게 부는 눈바람 속 걸어가는 윤석. 좁은 보폭으로 천천히 걷는다. 진눈깨비가 윤석의 얼굴을 때린다. 

- 코인 노래방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윤석. 밖에서 보아 유리창 건너로 보이는 윤석의 모습. 절규하는 듯 한 목소리.

- 다시 길거리의 눈바람 속을 걸어가는 윤석. 조금은 빨라진 발걸음.

- 아늑한 분위기의 식당. 윤석은 맛있게 국물을 마신다. 국물이 따듯한지 그릇을 꼭 붙잡고 손을 녹인다. 

- 눈바람 속을 걸어가는 윤석.


#18. 윤석의 방.

윤석은 침대에 드러눕는다. 윤석은 한참을 소리 내어 웃는다. 웃다가 이불을 뒤집어쓴다. 웃음소리와 함께 페이드아웃(F.O)


(F.I) 침대위에 누운 윤석의 모습. 윤석은 겨우 일어나 창밖을 본다. 아침이 아닌 저녁이다. 윤석은 시계를 본다. 황급히 옷을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한다. 


#19. 길거리

윤석은 미끄러운 눈길을 조심조심히 걷는다. 아래를 보며 조심조심히 걷다가, 앞을 다시 본다. 

그 앞에 있는 화정. 윤석은 뒤돈다. 그리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조심조심 왔던 길을 재빨리 뛰어간다. 그러다가 넘어지는 윤석. 저 멀리 화정은 멀리 있는 사람이 넘어지자 걱정되어 다가오려 한다.

그러자 윤석은 다시 일어나 도망간다. 더 빠른 걸음으로 뛰어간다.  


#20. 윤석과 민수가 있는 음식점. (현재)


약간은 벌게진 윤석의 얼굴. 


민수 : 그러면 그때부터 연구실을 안 나간 거야?

윤석 : (고개를 끄덕이며) 네... 모든 게 하기 싫기도 했고.... 내가 왜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모든 게 내 잘못인 것 같고....


윤석은 잔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떨어트린 채로 있다.    

민수는 그런 윤석의 가만히 모습을 말없이 바라본다. 


민수 (내레이션) : 나는 아직도 윤석이를 처음 만난 날이 기억난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학기에, 내가 재작년까지 회장을 하던 영상 제작 동아리에 마지막으로 한번은 찾아가야 할 것 같아서 간적이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누군가들이 열심히 영상을 편집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21. 영상제작동아리 동아리방 (윤석과 민수의 첫만남, 과거)


컴퓨터에 모여앉아 동아리 사람들이 편집을 하고 있고 그 뒤에 테이블에서 다른 동아리 원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동아리 사람들 : 아니 자막 시작을 좀 더 뒤로... - 이 부분을 자를까? -아니 좀만 더 앞으로 ..


그때 민수가 동아리 방에 조용히 들어왔다. 

후배B : (손을 들며)선배! 왔어?

민수 : 어.

민수는 자리에 조용히 앉아 동아리 방을 둘러본다. 

민수 : (웃으며) 역시 아무도 모르겠네.

후배B : (민수를 툭 치며)몇 년이 지났는데. 그래도 동아리방은 그대로지..


갑자기 모든 불이 꺼진다. 컴퓨터도 꺼진다.

동아리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고 있다. 

 

민수 : (크게 웃으며) 이런 것 마저도 그대로네.

후배B도 크게 웃는다.


잠시 후 불이 다시 들어온다. 컴퓨터가 재부팅 되는 소리. 


동아리원1 : (놀란 표정으로 뒤돌아보며) 선배! 파일 다 날라갔어요!

후배 B : (자리에서 일어서며, 긴박한 목소리로) 뭐라고? 다시 확인해봐.

동아리원1 : (마우스를 움직이면서 모니터를 둘러보며) 없어요.

후배B : (한숨을 쉬며) 저거 한 달 동안 찍은 건데.

동아리원2 : 와 다시 찍어야 되는 건가? 윤석야 너 어떡해? 저거 니가 찍은 부분이잖아?

윤석 : 뭐 다시 찍으면 되지.


그런 윤석을 바라보는 민수. 밝게 웃는 윤석의 얼굴. 클로즈업.


#22. 윤석의 부모님 차 안. (과거)

밝게 웃던 윤석의 얼굴과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윤석의 얼굴이 오버랩.(O,L)

윤석은 창밖을 멍하니 쳐다본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좁은 차 안을 가득채운 윤석의 짐들. 서랍장, 많은 전공 서적들. 옷 등의 생활의 흔적들. 


윤석의 엄마 : 윤석아. 딱 한 학기만 쉬는 거다. 니가 너무 힘들어하니깐 안 되겠다. 한 학기만 집에서 푹 쉬고 지내렴. 


윤석은 여전히 창밖을 바라본다.  

곧 도착하여 짐을 내리는 윤석의 모습. 


#23. 넓은 다리 위 인도. 술집. 수영장. 윤석의 집 (몽타주)

- 넓은 다리 위 인도를 뛰어가며 운동 중인 윤석. 힘차게 뛰어간다.

- 술집에서 웃으며 친구들과 술을 따르고, 건배하고, 마시는 윤석의 모습. 

- 수영장에서 열심히 수영을 한 뒤 수영모를 벗는 윤석. 

- 윤석의 집 식탁에서 가족들과 밥을 먹는 윤석. 그 때 윤석에 핸드폰에 문자가 온다. 

윤석은 웃으며 문자를 본다. 


(문자내용)

민수선배 

윤석아! 오랜만이다. 언제 한번 만나자! 편한 시간 알려줘~


윤석은 핸드폰을 보며 싱긋 웃는다. 어느 때보다 기쁜 표정.


- 다시 다리 위를 뛰어가는 윤석. 지나가는 행인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가볍게 웃는다.

- 술집에서 친구들과 이야기 하는 모습.


윤석 : 그런데 자꾸 나한테 하기 싫은 거를 시키는 거야.. 그래서 너무 짜증이 나고....


친구들은 걱정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모습. 더 힘차 보이는 발길질. 그 후 수영을 마치고 수영모를 벗는 모습.

- 집에서 밥을 먹는 윤석의 모습. 조금씩 웃음이 새어나온다. 부모님은 그런 윤석을 무표정하게 쳐다본다.

- 똑같은 곳을 뛰어가는 윤석. 윤석은 활짝 웃는 얼굴이다.



   

#24. 어느 술집 

추운 길거리, 윤석이 술집 앞에 홀로 서있다. 그때 친구 C가 다가와서 어깨를 두드린다.

친구 C는 위에서 윤석과 여러 번 술을 마신 친구 중 한명이다. 


친구C : 안에서 기다리지 그랬냐. 추운데.

윤석 : 들어가자.


술집 안 마주 보고 앉은 친구C와 윤석. 둘은 서로의 잔에 술을 따른 후 건배를 하고 술을 마신다. 돼지껍데기 익어가는 소리.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 


윤석 : 아. 너무 힘들다..

친구C : (웃던 표정을 갑자기 찡그리며) 왜? 또 대학원 얘기냐? 


잠시 정적. 윤석은 당황한 표정이다.  


친구C : 맨날 너는 너 힘든 것만 이야기만하냐? 너만 힘드냐? 다른 사람들은 살려고 싫어하는 일 매일 같이 억지로 하고, 나는 교수가 아니라 작년에 부모님 돌아가셨어. 너는 부모님도 살아계시고, 니가 하고 싶어 하는 공부 하는 거잖아, 너는 왜 이렇게 욕심이 많아. 어? 


윤석은 놀란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본다. 이내 고개를 떨어뜨린다. 


윤석 : (고개를 숙인 채) 미안해..

친구C : 됐어. 너는 어차피 너밖에 모르잖아. 너가 아픈 게 전부고, 평생 너는 니 아픔에만 갇혀 살아갈 거야.


친구C는 계산을 하고 나간다. 윤석 머리를 잡고 고통스러워하며 엎드린다. 점점 커지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돼지 껍데기 굽는 소리.


#25. 윤석의 집. 

윤석은 빨개진 얼굴로 집에 들어선다. 그 앞에 서있는 윤석의 아버지.


윤석 부 : 이 녀석아. 뭐하고 이제 들어오냐. 기껏 공부하고 싶다고 했더니 힘들다고 돌아와.  밤늦게 맨날 놀러 나가. 너는 일부로 그러는 거냐? 부모 엿 먹으라고?

윤석 : (작은 목소리로) 죄송해요...

윤석 부 : (큰 목소리로) 뭐 인마?

윤석 : (울면서) 죄송해요...

윤석 부 : 우리가 너에게 못해준 것이 뭐니? 공부 할 수 있게 생활비도 주고, 반찬도 보내주고, 한 학기에 1000만원씩 등록금에, 힘들다고 휴학하고 집에서 쉬고.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니?

윤석 : (울먹이며) 저도 모르겠어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제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윤석, 한참을 서럽게 운다. 

울다가 문을 열고 집을 나간다. 자고 있던 윤석의 엄마가 일어났는지 윤석의 아빠 옆에 선다. 넋이 나간 듯 한 윤석의 아빠.


#26.  윤석과 민수가 있는 음식점. (현재)


윤석의 고개를 숙인 채 흐느껴 운다. 

민수, 윤석의 어깨를 두드려 준다. 

윤석, 계속해서 운다. 손으로 눈물을 닦는다. 


민수 : 괜찮아 괜찮아....


그때 벌써 아침이 되려는지, 밝은 빛살 한줄기가 민수의 눈을 찌른다. 


민수 : 윤석아... 바깥 햇볕이 참 예쁘다.... 


윤석은 점점 울음을 멈춰간다. 


민수 ; 윤석아, 오늘 너무 많이 마셨지? 잠시 걸을까? 


윤석은 아무 말도 없다. 민수는 점원을 불러 카드를 주고 계산한다. 그리고 윤석을 부축해 일으킨다.


민수 : 윤석아.. 그래 나 잡고 일어서봐.


민수는 윤석의 오른팔을 잡아 자신에게 두른 뒤, 밖으로 나간다.

바람이 부는 골목길. 그러나 떠오르는 아침의 태양이 그들 앞에 있다.

윤석을 부축하는 민수. 그들의 뒷모습. 그 앞에 떠오르는 태양. 

윤석은 계속해서 비틀거린다. 그런 윤석을 꼭 붙잡은 채 민수는 걸어간다. 민수도 덩달아 조금씩 비틀거린다. 조금씩.. 천천히.. 한 발짝씩 나아간다. 


민수 : 그래.. 그렇게...  걸어가자....


민수와 윤석의 뒷모습.

비틀거리는 발이 클로즈업 된다.


민수 (내레이션) : 똑바르게 걷기 위해서는 모든 근육이 하나도 빠짐없이 제 기능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일부 근육에 문제가 생길 때 우리는 마음대로 걸을 수 없게 되고 이를 실조(失調)라고 한다. 가끔 우리도 알 수 없는 어딘가 무너져 비틀거리곤 한다, 그럴 때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대신 걸어줄 수 는 없어도, 작은 근육 하나가 되어주곤 한다. 


민수에게 의지하고 있는 윤석의 팔. 민수의 어깨에 걸려 있다. 그 팔을 곧게 지탱하는 민수의 손. 하나의 유기체처럼 꼭 붙어있다.


민수 (내레이션) : 그래... 걸어가자.. 비틀거리더라도.. 너무 느리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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