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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해링展>, 벽 위에 세상을 그리는 예술가
[457호] 2019년 02월 12일 (화) 오현창 기자 hyunchang@kaist.ac.kr

 1983년 뉴욕의 어느 지하철역, 한 남자가 비어있는 광고판에 분필로 재빠르게 그림을 그린다. 검정 바탕에 흰 선으로 그려진 이목구비도 없는 단순한 사람들. 그림이 완성된 후 남자는 곧 공공기물 훼손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다.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던 천재 화가, 키스 해링의 이야기다.


   
▲ Radiant Baby from Icons series, 1990 (©Keith Haring)

 

지하철 낙서에서 시작된 작품 세계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줄이는 방향으로 경제 정책을 바꾼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멈추고 GDP 성장률이 높아지는 등 여러 경제 지표는 긍정적으로 돌아섰으나, 사회의 양극화는 심해져 저소득층의 생활은 더욱 힘들어졌다. 뉴욕의 뒷골목은 사회를 향한 비판이 가득한 그래피티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뉴욕의 시각 예술학교에서 공부하던 해링은 뒷골목의 낙서를 보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는다. 갤러리에 걸린 부자만을 위한 예술이 아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예술을 하기로 한 그는 분필 몇 자루와 함께 지하철로 발길을 옮긴다. 경찰에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빠르게 작업을 마쳐야 했고, 이에 해링 특유의 간결한 그림체가 탄생했다. 해링이 유명해진 후, 그의 그림이 그려진 광고판은 통째로 떼어져 전문 갤러리에 전시되었다. 이 중 몇 작품은 본 전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검은 나무판에 멈추지 않고 강렬하게 그어낸 선, 그런데도 선의 두께가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것이 인상적이다.


보드카, 티셔츠, 장난감 위에서

 지하철역에 그린 작품이 갤러리에서 거래되기 시작하자 해링은 더는 지하철에서 작업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작업의 방향을 바꾼다. 그중 하나로 1986년 그는 자기의 멘토이자 친구 앤디 워홀과 함께 앱솔루트 보드카의 광고에 참여한다. 그리고 같은 해, 직접 팝 가게를 열어 자신의 작품을 티셔츠나 장난감 등에 담아 판매한다. 

곧바로 예술을 상업화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해링의 목적은 돈이 아니었다. 한두 편의 값비싼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수많은 미술품을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실제로 그는 벌어들인 돈 대부분을 아이들과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기부했고, 그가 죽은 뒤 유산으로 세워진 키스 해링 재단 역시 그 유지를 이어나가고 있다.


 

   
▲ Story of Red and Blue, 1989 (©Keith Haring)

무제(Untitled)

 키스 해링의 작품 중에는 제목이 없는 것이 많다. 생전 작품에 대한 설명을 부탁받았을 때도 그는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일 뿐 그림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그림 21점으로 이루어진 연작 <스토리 오브 레드 앤 블루>는 제목이 있는 작품이다. 해링은 아이들에게 그림들을 순서대로 보여주며 이야기를 지어내라고 제안했고,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보내 준 아이에겐 개인적으로 선물을 보냈다고 한다. 해링은 사람들의 생각이 제목에 얽매이지 않길 바랐다. 그는 “어떤 작품도 정해진 의미는 없다”며 “작품의 현실, 의미, 개념을 창조하는 것은 바로 관객”이라고 덧붙였다.

해링은 단순한 기호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하트나 느낌표와 같이 모두가 알아볼 수 있는 기호들은 해링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해링은 단순한 그림을 반복해서 그려 관객이 자신의 작품을 그림보다는 글로써 읽으며 상상하길 바랐다.


평화와 평등, 단순하지만 강한 메시지

 해링은 작품의 의미를 정해놓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예술가로서 사회의 발전을 꿈꿨고 그가 믿는 가치를 사람들과 나누려 했다. 해링은 작품 속에서 사람을 오직 선으로만 표현한다. 따라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성별이나 인종으로 구별할 수 없다. 하지만, 1985년에 그려진 작품 <남아프리카에 자유를>에서는 흑인과 백인이 구별되는 예외를 보인다. 남아프리카의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의미를 담은 그림 속에서는 작은 백인이 큰 흑인을 끌고 가다 결국 밟힌다. 미술 평론가 오코 요노는 “앤디 워홀은 굉장히 가벼운 주제를 무겁게 표현했고, 키스 해링은 굉장히 무거운 주제를 단순하고 밝고 명쾌하게 표현했다”고 말했다. 인종 차별, 평화, 에이즈와 같은 주제에 대해 키스 해링은 특유의 간결함으로 생각의 물꼬를 터준다.


 키스 해링은 에이즈로 인해 31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만다. 하지만 그가 죽은 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의 작품은 우리 생활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예술은 모두에 의해 소비되고, 다시 상상을 통해 재생산되고 있다. 그는 화가이자 디자이너였고, 작가이자 사회 운동가였다. 세상 속 복잡한 문제들을 잠시 내려놓고 그의 작품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 보자. 어느새 해링이 우리 마음속에서 해답을 찾아줄지도 모른다.


장소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기간 | 2018.11.24.~2019.03.17.

요금 | 13,000원

시간 | 10:00~20:00

문의 | 02-325-10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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