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거스르는 물고기

  임 성 민
로봇공학학제전공 석사과정

 



  집에 꽃게를 잡기위한 통발이 있어 마을 앞 개천에 놓곤 했다. 통발 중앙에 있는 미끼 주머니에 된장을 담고 개천을 따라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다니는 곳에 던져 놓는다. 서너 시간이 지난 뒤 꺼내보면 붕어와 피라미가 그럭저럭 서너 마리씩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된장의 위력을 반신반의했지만 막상해보면 된장만한 것도 없었다. 재미로 시작하여 몇 번 매운탕도 끓여 먹었지만 며칠 하다 보니 점점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이것도 경험이고 추억이 될 듯해서 마지막 통발에서 기념으로 손가락만한 붕어 한 마리를 가져왔다. 작은 플라스틱 어항 하나와 금붕어 먹이 하나를 사서 밥 주고 물 갈아 주고 하니 벌써 2년이나 되었다.

  그놈의 물고기는 여전히 야생성이 남아있다. 2년이 지났지만 아직 사람을 꺼린다. 밥을 줘도 인기척이 없거나 멀찌감치 떨어져서 있어야 재빠르게 먹고 다시 숨어버린다. 놀라게 할 요량으로 갑자기 나타나면 내가 미안해 질 정도로 어쩔 줄 몰라 하며 이곳저곳에 몸을 부딪친다. 곧 제풀에 지쳐 구석에 숨어 버리고 이젠 밥을 줘도 웬만해서는 올라오질 않는다. 그러면서도 가끔 밥 주는걸 잊어버리면 자기도 배가 고프다며 꼬리로 물을 튀겨 책상 위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이럴 때는 파리라도 한 마리 잡아 간식거리로 던져 주어야 미안함이 가시곤 한다.

  녀석도 가끔은 심심해 할 때가 있다. 사람만 보이면 구석으로 숨어들어들지만 혼자 있을 땐 좁은 어항 속을 수색하듯 이곳저곳 꼼꼼하게 살펴보며 다닌다. 작은 어항이지만 숨기를 좋아하는 녀석을 위해 바닥에는 자갈을 깔고 제법 가려 질만한 돌을 몇 개 넣어주었더니 이젠 사이사이를 잘도 돌아다닌다. 물을 갈아줄 때에도 녀석이 머물기 좋아하는 평평한 돌은 항상 그 자리에 놓아두고 큰 돌들로는 숨어들 수 있도록 고인돌마냥 쌓아준다.
 

  하루는 형이 새로 발행된 동전이라며 백 원짜리를 하나 보여준다. 말없이 동전을 받고 유심히 살펴본다. 방금 프레스에서 찍어낸 듯 정말 티 하나 없이 깨끗하다. 유난히 깨끗하게 빛나는 동전을 어항에 빠뜨린다. 창가의 햇살을 받아 어항 바닥에서도 예쁘게 빛이 났다. 처음에는 물고기 녀석도 깜짝 놀라 숨지만 곧 반짝거리는 동전이 새로운 흥밋거리가 될 것 같다.

  다음날 늦잠을 자다가 해가 중천에 떠서야 눈을 뜬다. 눈은 떠졌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다. 동물원의 원숭이 마냥 무기력한 하루이다. 점심때가 넘었지만 배가 고프지 않다. 그래도 겨우 밥통에서 밥을 뜨고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낸다. 이제야 식용이 생겨 먹다보니 무언가 허전함을 느낀다. 냉장고를 열어 계란을 하나 꺼낸다. 다시 냉장고를 열어 하나를 더 꺼낸다. 소금을 조금 뿌리고 계란 후라이를 한다. 계란 후라이를 하는 도중 밥을 먹고 밥은 다 먹고 계란 후라이만 남는다. 다시 식탁에 앉아 계란 후라이만 먹는다. 생각을 한다.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만 반복한다.

  방으로 돌아와 물고기 녀석의 유별난 반응에 눈길이 간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온통 붉게 충혈 되고 부어 있었다. 아차! 동전이 물고기에게 해로울 수 있는 건가. 밤새 벽과 돌에 자신의 몸을 비비고 부딪친 것 같다. 숨어있길 좋아하던 녀석이 내가 가까이 가는데도 불구하고 수면 위에서 몸을 뒤틀고 있다. 당혹스러움에 잠시 생각이 멎는다.
 

정신을 차리고 깨끗한 생수를 좀 데워 따로 세숫대야에 붓고 물고기를 옮겨 놓은 뒤 어항청소를 시작한다. 자갈 하나하나를 수세미로 닦고 어항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어젯밤까지 깨끗하게 빛나던 동전은 하루 만에 파랗게 녹이 슬어 있고 어항 군데군데에는 물고기의 비늘이 애처롭게 떨어져 있다. 곧 죽을 것 같은 녀석이 세숫대야로 옮겨놓은 뒤에야 조금씩 움직임을 보인다. 대충 청소를 끝내고 보니 어느 샌가 재활 환자처럼 세숫대야를 빙빙 돌고 있다. 사각형 좁은 어항에서 앞뒤로만 움직이더니 세숫대야에서는 빙빙 돌 수 있는 것이 그나마 녀석의 흥미를 끄는 것 같다. 제대로 꼬리치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맴돌기만 했던 녀석이 불쌍하게 느껴진다. 나한테 붙들리지 않고 계속 개천에서 살았더라면 다른 물고기들과 함께 지금보다 더 크게 자랐을 텐데.

  큰 수조관의 물고기들이 여과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을 타던 것이 생각나 가만히 세숫대야 속의 물을 둥글게 저어준다. 구석에 숨어있던 녀석이 휩쓸리지 않기 위해 조금씩 꼬리를 흔든다. 녀석에게 휩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약간 복잡한 생각들이 떠오른다. 조금 더 세게 물을 저어준다. 그러자 구석에서 꼬리만 흔들고 있던 녀석이 점차 물 한가운데로 옮겨와 내가 저어주는 물을 그대로 거스르기 시작한다. 힘을 내어 한곳에 머무르려고 애를 쓴다. 물고기가 물을 거스르는 건 상류층으로 이동한 다기 보다 물을 거스르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건가. 스스로 답을 해보지만 알 수 없다. 나도 녀석의 반응에 신이나 열심히 녀석 쪽으로 물을 저어 준다. 참 용감하게 물을 거스른다. 한쪽에서 열심히 손으로 저어주는데 맘에 차지 않은지 이보다 더 빠르게 거슬러 오르기 시작한다. 얼마나 신이 났는지 물 위로 뛰어 오르기까지 하여 세숫대야의 물이 사방으로 튀어나간다.

  하지만 채 1분도 안되어서 녀석은 지치기 시작한다. 깜짝 놀라 천천히 저어보기도 하고 더 세게 저어보기도 하지만 너무 지쳤는지 물위로 둥둥 떠다니기만 한다. 이미 죽은 물고기처럼 물이 휘도는 데로 휩쓸릴 뿐이다. 평상시에는 살짝만 건드려도 파드닥하며 도망가던 녀석이 가만히 툭툭 쳐 봐도 영 기운을 쓰지 못한다. 가끔 방향을 바꾸려고 허리를 휘청해 보기도 하지만 번번이 실패이다. 안타까워진다.

  물을 젓던 손을 멈춘다. 물고기를 바라보던 안타깝던 눈이 이제는 세숫대야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본다. 초점 없는 눈동자와 반쯤열린 입술, 축 처진 어깨를 가진 내 모습에 서글픔이 복받쳐온다. 참 못생겼다. 무엇을 해도 안 되는 참 못생긴 얼굴이다. 고인 물속에서 게으르고 무기력하게 그냥 그렇게 목숨만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잘못된 주변 환경 그리고 잘못된 생활의 연속이다. 정적이 흐르고 볼륨을 줄여놓은 라디오의 느린 곡조가 신경에 거슬린다. 골목길을 지나치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멀리서 퍼지는 도시의 소음들이 나와는 별개처럼 느껴진다. 창문가엔 어느새 저녁노을이 지고 내 삶의 한 부분에도 어둠이 깔리는 것을 느낀다. 물을 거스르지 못하는 물고기는 더 이상 물고기가 되지 못하듯 현실을 거슬러 오르지 못하는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뒤틀어진 허리로 아등바등 애를 쓰지만 결국 쓸려가는 현실이다.

  그때 갑자기 파드닥 하면서 녀석이 솟구치더니 온 몸을 흔들며 물을 거스르기 시작한다. 갑작스런 녀석의 반응에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물을 저어주니 마치 화를 내듯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한다. 마치 나에게 도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되지 않을 일에 힘만 낭비하는 것 같아 되래 화가 난다. 녀석에게 불가능한 현실을 인지시켜주고 싶어 물을 더욱 세게 저어본다. 하지만 녀석은 물에 휩싸이면서도 끝까지 자기 자리를 고수하려 한다. 녀석에게 물을 거스르는 의지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오히려 내 팔이 먼저 아파온다. 나도 이제 지쳐 가만히 녀석을 바라다본다. 그제야 녀석도 구석으로 들어가 숨을 헐떡거리고 있다. 어쩐 일인지 녀석이 참 당당해 보인다.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지만 자신이 자신임을 증명한 것처럼 보인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아도 나 자신이 나를 인정하고 그에 충실할 때 그것이 진정한 삶인가. 현실은 현실일 뿐이지 현실이 나를 좌지우지 할 수는 없는데. 한 번의 실패가 나를 결정하진 못하고 나를 결정하는 건 오직 나의 의지일 뿐인데.

  갑자기 녀석에게 자신의 표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 주고 싶다. 비록 물고기이지만 자기 존재의 당위성을 표현했으니 녀석에겐 그만한 포상이 주어져야 정당하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녀석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녀석이 물을 거스르는 것을 원했으니 마음껏 거스르게 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갑작스레 할 일이 생긴다. 마음이 급해진다. 녀석을 유리병에 담고 급히 집을 나서 버스를 탄다. 괜히 급한 마음에 가방도 잠바도 없이 추위에 떨며 버스를 탄다. 손에 유리병을 꼭 붙들고 외진 버스종점까지 간다. 주변의 하천을 따라 좀 더 걸어간다. 좀 더 조금 더. 이젠 제법 주변이 어둑어둑 해지지만 좀 더 시골의 정취가 느껴지는 곳 까지 걸어간다. 어두움이 깔려 제법 물이 깊어 보인다. 하지만 억새풀도 있고 물이끼도 있어 물고기들이 꽤 있을 것 같다. 조심히 병을 물속에 담근다. 찬 물에 손이 시리지만 병속의 물과 개천의 물의 온도가 같아지길 기다린다. 조심히 병뚜껑을 열어 개천 물과 병 속 물이 섞이도록 한다. 그리고 뚜껑을 연채로 물속 깊이 담근다. 천천히 녀석이 병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천천히 사라진다. 혹시 다시 보일까 잠시 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 물 위로 내 얼굴을 비쳐 보인다. 어두워 잘 보이진 않지만 죽은 얼굴은 아닌 것 같다. 조금이나마 미소를 띠고 있으니 생기가 있을 것이다. 확 트인 논을 스친 가을바람이 뼈 속 깊이 느껴진다. 녀석은 어디서나 잘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도 어디서든 잘 살아갈 것이다. 멀리서 비춰주는 가로등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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