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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망과 현실 사이
[455호] 2018년 11월 13일 (화) 양경록 학우 (새내기과정학부 18) kaisttimes@gmail.com

 나는 대학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진정한 내 삶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주변 사촌 누나, 형, 선배들이 아무리 아니라고 별거 없다고 말해도 그 별거 없는 일상이 내 눈엔 멋지고 아름다웠다. 여행, 동아리, 연애, 지식, 그리고 자유가 있는 천국을 꿈꾸며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문제를 풀었다. 반복되는 하루 끝에 마침내 나는 카이스트에 합격하고 꿈에 그리던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게 지난 봄학기와 여름방학 기간은 내 삶에서 가장 길었던 반년이었다. 정말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 좋은 경험, 훌륭한 성과를 낸 일도 많았지만 반대로 미숙한 실수도 많이 하고 별로 신통치 않은 결과를 얻은 일도 많았다. 그러나 내가 고등학교 때 꿈꾸었던 대학 생활과는 확실히 다른 점이 있었다. 특히 의욕에 앞서 했던 많은 일들이 현실에 부딪혀 꺾이는 때가 있을 때마다 내가 대학생활에 가졌던 로망은 조금씩 퇴색되어갔다. 로망 속 나는 수업을 듣고 교수님과 대화하며 끊임없이 의문을 품는 학생이었다면 현실은 진도를 따라가기도 벅찬 모습이었다. 또 여유롭게 동아리 활동을 즐기고 취미를 공유하는 게 로망 속 모습이었다면 과제와 시험에 지쳐 온전히 동아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는 게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을 계속 마주하며 나는 점점 그 현실에 익숙해지고 그것이 나의 생활이 되고 내가 되어갔다. 

 가을학기가 시작되기 전 잠시 부모님과 대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 나의 말과 행동을 보니 마치 내가 대학에 들어오기 전 부러워했던 그 형, 누나들의 모습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반년 만에 대학의 로망을 꿈꾸던 한 남고생이 로망은 빛이 바래고 그저 현실에 안주하는 대학생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로망은 그저 허황된 것이고 현실을 빨리 알고 적응하는 게 맞는 건가? 로망이란 기대인데 계속 기대와 어긋나는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무기력해지는 경험을 해야 하는지, 그냥 처음부터 현실을 보고 거기에 맞는 삶을 적당히 사는 게 맞는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꿈에 그리던 일들도 대학 생활을 하며 종종 경험할 수 있었다. 제주도 풀빌라에서 호화 생활을 해보기도 하고 정장에 무전기까지 장착하고 내가 초청한 연사분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또 비록 나의 로망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재미있는 경험으로 남은 일들도 많다. 잔뜩 술 마시고 놀았던 것도 다음날 숙취에 아무것도 못 했던 것도 시험을 코앞에 두고서야 부랴부랴 밤새 공부하고 뜨는 해를 바라보며 귀가했던 것도 돌이켜보면 다 추억으로 남아있다. 

 만약 내게 로망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열심히 생활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될 거 무엇 하러 도전하고 무리를 할까. 동시에 적당히 현실을 바라보는 삶 속에서 위와 같은 경험들은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현실을 알고 그 한계를 아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높은 하늘만 바라보다 정작 내가 가는 길이 어딘지 몰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현실에 맞추어 길을 가는 것은 싫다. 그것은 다른 길의 가능성을 모두 무시한 채 쉬운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던 로망이 깨지면 그 자리에는 새로운 로망이 들어와야 한다. 그 자리가 비어지는 순간이 바로 내가 늙는 순간이자 현실에 안주하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빈자리를 채우는 새로운 로망은 전의 것보다 성숙하다. 남고생의 순진한 로망이 술도 마시고 동아리에서 멋진 경험도 해보는 것이었다면 지금 2학년을 앞두고 있는 대학생의 로망은 해외로 교환학생을 가서 새로운 문화와 삶을 즐기고, 다양한 대외활동에 참가하여 좋은 사람들을 만나, 보다 넓은 안목을 기르는 것이다. 물론 이 로망도 언제 현실을 만나 깨질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때까지 이것을 내 안에 소중히 품고 다닌다면 분명 나는 또 열심히 살 것이고 나의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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