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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함께 몰락하다
벤 웨틀리 - <하이 라이즈>
[454호] 2018년 10월 30일 (화) 하예림 기자 yerimha13@kaist.ac.kr

 1975년 런던,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40층 건물 ‘하이라이즈’가 세워진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한 이 아파트에는 마켓, 학교, 수영장 등의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거주자들이 외부로 나갈 필요가 없다. 정신과 의사 랭은 25층에 입주하며 하이라이즈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꾼다.

 엘리베이터는 소통의 수단이다. 엘리베이터가 있기에 하층의 사람들도 상층의 파티에 참석하고,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설계자인 로열의 의도가 하류층과 상류층의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공간이었던 것과 반대로, 엘리베이터는 가장 먼저 고장난다. 전력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자, 고층 거주자들은 당연히 대부분의 전기를 고층에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젖병을 데우지 못해 아기를 굶겨야 하는 하층과 아랑곳하지 않고 화려한 파티를 여는 상층의 모습이 대비된다. 하지만 하이라이즈를 통해 ‘새 삶’으로의 탈출 수단을 찾은 저층 거주자들은 고층 수영장을 습격하는 것으로 그들의 ‘폭동’을 선언한다. 고립된 건물 안에서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쾌락과 혼돈뿐이다.

 고층 거주자 먼로 역시 상류층의 ‘특권’을 지키려 한다. 하지만 랭으로부터 자신의 뇌에 이상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된 그녀는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먼로의 투신과 교차되며 깨지는 유리잔은 상류층도 나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반면 그가 건방지다는 이유로 이상이 없던 검진을 왜곡한 랭은 담담한 태도를 유지한다. 고층과 저층 중간에서 중립을 유지하는 그는 섬뜩할 정도로 무심하다.

 모두가 미쳐가는 하이라이즈에서 랭만이 평소와 같은 생활을 유지한다. 쌓여있는 시체에도 동요하지 않고 운동을 하며, 출근한다. 생존을 위해 싸움이 일어나는 건물에서 랭은 회색 페인트를 칠하며 하이라이즈에 속해간다. 상류층에게는 성에 안 차고 하류층에게는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었던 중류층 랭은 건물의 관찰자로서 담담한 어조로 그들의 몰락을 묘사한다. 그는 하이라이즈에 적응하지 못했던 초반과 달리 시스템이 붕괴되어 갈수록 소속감을 느낀다.

 로열은 하이라이즈에서 빠진 요소를 찾고자 했지만, 그의 실수는 너무 많은 요소를 집어넣은 것이었다. 종국에는 의미 없는 살인으로 변질된 폭동을 일으키며, 거주자들은 건물 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계급사회는 무너지고, 여성과 아이들이 살아남은 하이라이즈에서는 생존을 위한 전쟁이 시작된다. 평화로운 혁명의 끝에서, 랭은 두 번째 하이라이즈의 실패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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