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는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정책에 대한 기사를 썼다. 시험이 끝나고 1주일 만에 신문을 만들기 때문에 취재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적었다. 게다가 논술 숙제로 7페이지 정도의 논문을 써야 했던 터라 시험 때보다 더 정신없는 일주일을 보냈다. 결국 논술 논문 제출일인 목요일부터 제대로 된 취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우선 튜터링 프로그램과 학습법 세미나, 학습스타일 검사 및 컨설팅을 주관하는 교육혁신팀에 연락했다. 교육혁신팀 직원 분께서 알려주신 교수학습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 기본적인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또 튜터링 프로그램과 학습스타일 검사 및 컨설팅에 참여했던 학우들의 경험담을 듣고 싶어 몇 분께 연락을 드렸다. 모두 아주 친절하게 답변해주셔서 기사 쓰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친절하게 많은 도움을 주신 심재영 박사님과 윤준호 교육혁신팀 팀장님을 비롯한 교육혁신팀 직원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이번 기사는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힘든 줄 모르고 열심히 쓸 수 있었다.                               / 윤호진 기자

○… 기회가 닿아 평소 즐겨보던 웹툰 ‘이말년 씨리즈’의 작가 이말년 씨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학우와 주변 사람을 통해 질문을 받고, 이젠 대사를 외울 정도가 된 이말년 씨리즈를 다시 한 번 정주행하며 첫 외부 인사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한 준비를 했다. 중간고사가 끝난 지난달 27일, 우리 학교에서 팬 미팅을 주선해달라고 아우성치는 수많은 이말년 추종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안산으로 향했다.

인터뷰는 작가님을 만나 점심을 함께하며 시작되었다. 이말년 씨는 병맛 넘치는 개그와 노련한 터치감이 살아있는 그의 작품만 봐서는 쉽게 상상하지 못할 젊은 ‘훈남’이셨다. 나는 기자인 이전에 한 명의 팬이었기 때문에 인터뷰 내내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온 것 마냥 즐거웠다. 동행한 배수정 기자와 함께 평소 궁금했던 질문을 쏟아내는 와중에 어느새 인터뷰는 수다의 장이 되어 있었다. 긴장해서 아무 말도 못하면 어쩌나 하는 애초의 걱정과는 달리, 이말년 씨리즈 만큼이나 빵빵 터지는 작가님의 멘트 하나하나에 웃고 떠들다 보니 금세 준비한 질문 목록이 동났다.

다른 웹툰 작가에 대한 이야기, 만화 ‘원피스’의 연재방향에 관한 고찰, 그 외 각종 ‘뻘’한 잡담과 주옥같은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지면에 그대로 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말년 웹툰을 즐겨보는 독자분이라면 추후 카이스트신문사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될 인터뷰 전문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인터뷰 전날 과음으로 함께하지 못한 이민우 기자는 이 순간에도 애통해하고 있다. 바쁜 와중에 기꺼이 시간을 내주신 이말년 작가님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날 가져요, 이말년!’을 외치던 모 신문사 선배의 열렬한 팬심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 조민지 기자

○… 기자 생활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바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시험이 끝나고 처음 가게 된 르포는 ‘즐거움’ 그 자체였다. KTX를 타고 부산을 내려가는 길은 추석 때 고향을 방문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오랜만의 본 부산역의 모습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신축된 부산역사,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던 한적한 광장에서 비둘기 모이를 주던 할아버지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부산도 많이 변해있었다. 추억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리 일행은 장영실 과학동산이 있는 동래를 향했다. 부산의 지하철은 서울의 지하철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승객들 사이에서 살그머니 들려오는 구수한 사투리만이 내 귀를 자극했다. 초등학교 친구들이 생각이 났다. 혹시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있을까 싶어 주위를 둘러봤다. 정말 있더라도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그렇게 기억 속의 메타포를 뒤로한 채 동래 장영실 과학공원에 도착했다. 동래 주변의 동네는 사람 하나 없이 정말 공허하고 수수했다. 동래읍성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동네의 모습은 퍼런 지붕 때문인지 파란색 도화지를 깐 듯했다. 어렸을 때 살던 그 동네도 바다를 끼고 있던 푸른 모습이었다. 정말 꿈을 꾸는 듯, 하늘에서 이곳에 뚝 떨어진 듯 했다. 같이 온 선배에게 시간도 남으니 좀 더 산책을 하자고 했다. 마냥 즐거웠다. 도시 속 한적한 동네의 고요한 적막 속에서 느끼는 추억의 메타포.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세상 어떤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그런 추억을 르포를 통해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미래에 어디에선가 기자생활을 떠오르게 하던 매개체를 만나게 된다면, 그날 느꼈던 감정처럼 신문사의 추억으로 그때에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도 자판을 두드린다.    / 박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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