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생산은 사물을 평범하게 만든다. 눈 앞에 있는 사물은 다른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의 쌍둥이이다. 한 사람에게만 귀속될 수 있는 물리적 형질은 없다. 한편, 분류는 사람을 평범하게 만든다. 누구나 어딘가에 소속되며, 집단이 주는 동질성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하지만 집단에 속하게 되는 것은 곧 자신의 고유한 특징을 하나씩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들추게 되면 불편해질 현실을 애써 감추며, 개성 없는 인간이 된다.

 패션 산업은 대량생산과 분류의 수발을 든다. 병적으로 계급을 분리하는 체계 속에서 옷은 한눈에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게 만드는 장치이다. 기술발전과 대량생산은 패션 시장을 넓힌다. 패션은 광고를 만들고 사람들의 기호를 조절해 패션 속에 탐닉하게 만든다. 스스로의 몸집을 불리며 패션은 발전한다.

 코코 카피탄의 사진 작품은 대부분 패션 잡지에 게재되었던 것들이다. 모델, 디자이너, 잡지와 떨어질 수 없는 작품 활동을 이어온 그녀의 사진은 패션 사진으로 분류될 것이다. 그러나 코코 카피탄의 작품은 패션계를 향한 반항적 기질로 가득하다. 


Fashion without Fashion

 패션 잡지는 많은 사람을 흥분시키는 유명인으로 도배된다. 모델의 새로운 옷입기 문화는 대중을 유혹하고 유행으로 번진다. 매력적인 모델의 강한 시선과 도발적인 포즈는 옷을 살아있게 만들고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이 모든 과정은 결국 구매와 맞닿아 있으며, 인물은 패션에 수반되는 것에 불과하다.

 예술가 코코 카피탄은 인간이 패션의 도구가 되는 것에 거부한다. 그녀의 패션 사진에는 패션이 없다. 모델들은 옷을 조금씩 벗고 있거나, 스스로 옷이 되려 한다. <Boy in Socks>는 양말을 신는 소년의 다리에 집중한다. 양말에 있어야 할 의류 취급 표시가 소년의 다리에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옷의 상징과도 같은 표식이 신체로 도치되며 사진의 주인이 바뀐다. <Lena Al Fresco>에서 레나는 포즈를 취하는 패션 모델이지만, 옷을 걸치고 있지 않다. 모델의 나체가 적나라하게 인화되었지만, 걸친 것 없이 자신을 보여주는 행위는 외설적이지 않다. 카피탄의 사진에는 패션적 요소는 있지만, 패션은 없으며, 인간만이 있다.


텍스트, 사진, 실물

 카피탄의 작업은 패션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녀는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텍스트 기반의 그림을 그리는가 하면, 실물을 사용한 조형물을 만든다. 사진, 텍스트, 실물의 나열은 현실을 꿰뚫는다. 이미지에 끝없이 노출되는 관찰자는 고민 끝에 비판적 시선을 갖게 된다.

 카피탄은 Gucci와 협업하며 <The Gucci Handmade> 시리즈를 완성한다. Gucci 티셔츠에 새겨진 일련의 텍스트 그림은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진다. 티셔츠 위에서 가로를 횡단하는 세 줄은 텍스트를 나누고 있지만, 진실과 거짓, 생각과 사물, 상업과 예술의 경계는 질문의 물음표 끝에서 허물어진다. 전시관의 다른 쪽에는 ‘Tomorrow is not yesterday’라는 문장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는 모델의 사진이 보인다.

 카피탄의 텍스트 작품은 문장을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문장에 대해서 고민하고, 문장이 숨겨둔 뜻을 고민한다. 평소 백지 위에 있던 글들은 아주 크게 흰색 페인트로 그려져 있다. 형태를 갖게 된 텍스트는 인상에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각인되며, 글자들은 흩어졌다가 새롭게 조합된다. 색칠된 바탕 위에서 작품 <I want to go back to beLiving a story>은 ‘believing’과 ‘be living’ 사이의 언어 유희를 사용해 이중 의미를 전달한다. 희망을 담은 메세지는 꽃밭 위의 자유로운 아이를 연상시킨다.


죽음과 시선에 관하여

 그녀의 넓은 작업 스펙트럼 속에서, 인간에 관한 관심은 흩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사진의 이면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죽음을 기다리는 두려움, 시선에서 도망칠 수 없는 비자유마저도 직사각형 사진 프레임에 갇힌다. 볼 수 없는 것을 보이게 하는 그녀의 작업은 관찰자의 마음에 감정의 동요를 남긴다. 작품 <Holding onto Life>, <Lydia on Snow> 속 대자연에 놓인 나체의 인간은 죽음과 시선을 이겨낸 후 얻은 풍요일지도 모른다.


 코코 카피탄은 세상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무언가를 규정짓지 않으려 하며, 자신부터 사진가로 규정되는 것을 거부한 채, 그림을 그리고 구조물을 설치한다. 그녀의 범상치 않은 행동은 패션을 필두로 한 대량생산 사회에서 무성질의 인간이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우리의 미래를 조금은 낙관할 수 있는 희망이다.


장소 | 대림미술관

날짜 | 2018.08.02.~2019.01.27.

요금 | 8,000원

시간 | 10:00 - 18:00

문의 | 02)3785-0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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