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란 정말 죽음의 다른 표현에 불과한가. 지구상의 생명체는 죽음이라는 순간을 언젠가 마주한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그 시기만은 뒤로 늦춰졌지만, 죽음은 여전히 누구에게나 필연이다.‘안티에이징(Anti-Aging)’ 이라는 단어가 건강식품, 화장품 등 여러 소모품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에 비추어 볼 때, 늙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욕구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본 기사는 노화의 원인으로 지금까지 밝혀진 과학적 사실들을 되짚고, 안티에이징이 실현 가능한지 진단한다.


지속적으로 늘어난 인간의 기대수명

 기대수명이란 현재 태어난 0세의 영아가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연수를 뜻한다. 지난 2016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2.4세로, 당시 G20 국가 중 상위 12위를 기록했다. 이는 100여년 전과 비교하면 약 20세 정도 증가한 수치이다. 1990년대 대부분의 생물학자는 이처럼 기대수명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다. 당시에는 죽음의 시간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세포 시계는 절대 느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2018년 현재, 결론적으로 인간은 과거보다 더 오래 살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또 다른 과학적 쟁점들을 낳고 있다. 


세포 단위에서 무한한 삶을 바라보다

 사실 위의 ‘지구상의 생명체는 죽음이라는 순간을 언젠가 마주한다’는 틀린 명제이다. 놀랍게도 몇몇 다세포 유기체에게 무한한 삶은 당연하다. 담수산 히드라(Hydra oligactis)는 몸이 잘리더라도 스스로 사라진 부분을 재생하며, 절대 늙지 않는 생명체 중 하나이다. 관점을 조금만 달리한다면, 인간의 일부도 무한한 삶의 시간을 갖는다. 자식이 있고, 자손이 대대로 번식한다는 전제하에 인간의 유전자는 기적적인 불멸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국의 진화학자인 조지 윌리엄스(George Williams)는 하나의 세포로부터 인간을 만들어내는 기적이 가능하다면, 이미 만들어진 인간을 영원히 유지하는 기적도 당연히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기대수명이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설이 무너진 상태에서,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새로운 가설이 제시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분자적 연구로 알아낸 텔로미어 구조

 이후 노화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들, 그리고 이에 기반한 가설들이 줄을 이었다. 그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이론은 단연 엘리자베스 블랙번(Elizabeth Blackburn)과 캐럴 그리더(Carol Greider)가 제시한 ‘텔로미어(Telomere)’ 이론이다. 이들은 텔로미어 이론을 앞세워 분자생물학을 이용한 노화 관련 연구에 빠르게 앞장섰고, 지난 200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단순한 염기서열의 반복으로 구성된 텔로미어는 DNA의 말단에 위치함으로써 복제 과정 중 중요한 유전 정보의 누락을 막는다. 생명체가 오랜 기간 생존하려면 기존의 분자적 상태를 유지하는 안정성이 가장 중요한데, 텔로미어는 이 안정성에 기여하는 완충제 역할을 한다. 텔로미어의 손상이 노화의 진행을 의미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영국의 심장전문의인 닐레시 사마니(Nilesh Samani)는 3,000명의 정상인을 대상으로 혈액세포를 수집해 텔로미어의 길이를 비교했다. 그 결과, 특정 유전자 변종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평균보다 짧은 텔로미어 길이를 갖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때 이 유전자 변종은 항상 TERC (Telomerase RNA Component)라는 유전자와 인접해 있었고, 연구팀은 TERC 발현이 낮은 사람이 짧은 텔로미어를 가진다고 결론지었다. 즉, TERC 발현이 낮을수록 빠르게 노화가 진행될 확률이 비교적 높다는 것이다.


노화세포, 암 세포와 관련해 재조명돼

 텔로미어뿐만 아니라 노화세포와 관련된 연구도 노화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다. 기존의 생물학자들은 노화세포를 단순히 정상적인 구동이 불가능한 늙은 세포로 정의하고 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미국의 생물학자 레너드 헤이플릭(Leonard Hayflick)은 인간의 세포는 약 50회의 재생산 주기를 갖는다는 ‘헤이플릭 한계’를 제시했는데, 그는 50회의 재생산을 마친 세포는 체내에서 어떠한 기능도 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헤이플릭 한계에 도달한 세포가 체내에 축적된 부산물 그 이상의 기능을 할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다. 세포는 스스로가 분열하지 않음으로써 암세포의 분열을 저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어디까지나 ‘암을 저지할 수도 있는 그리 중요치 않은 세포’로 여겨졌던 노화세포는 1990년대 후반에 들어 그 기능이 재조명되었다. 2001년 미국의 생물학자 주디스 캄피시(Judith Campisi)가 진행한 연구는 학계에 충격적인 쟁점을 시사했다. 노화세포가 기존의 예상과 달리 암을 촉진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는 수명이 다한 노화세포와 암으로 진행되는 전암세포를 함께 배양한 뒤, 이를 생쥐에게 이식했다. 그 결과, 노화세포와 함께 배양한 전암세포를 이식한 생쥐의 경우 높은 확률로 공격적인 종양, 즉 암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그는 노화세포가 인체에 유해한 섬유상 단백질을 파괴하는 분해 효소를 분비한다는 긍정적 측면도 함께 밝혀냈다. 즉, 노화세포는 인체에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는 양면성을 갖는다는 것이 캄피시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밝히지 못한 칼로리와 노화의 연관성

 칼로리와 노화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들 또한 흥미롭다. 1930년대 여러 연구팀은 일찍이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지 않은 설치류의 수명이 충분한 영양을 공급한 설치류의 수명보다 길어진 것을 관찰했다. 또한, 섭취하는 칼로리를 의도적으로 제한한 파리 및 생쥐의 수명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오래 생존하는 것도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이처럼 여러 연구들은 하나같이 섭취 칼로리를 낮추면 신진대사에 쓰이던 에너지를 세포 유지에 새롭게 사용할 수 있어 수명이 길어진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섣불리 다이어트를 지향하는 일은 삼가는 것이 좋겠다. <네이처>에 발표된 바 있는 미국 국립노화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20년 동안 30% 제한된 칼로리를 섭취한 붉은털원숭이 집단은 정상적으로 칼로리를 섭취한 집단보다 수명이 늘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제한된 환경에서 성장한 영장류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일 뿐이다. 대조군 선정부터 시작해서 일찍 죽은 원숭이를 배제한 분석 방식 등 여러 비판이 존재하는 한, 연구의 실효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심은 계속될 전망이다.


노화 억제를 위한 다양한 연구 이어져

인체의 노화에 대한 궁금증은 수많은 연구로 이어졌지만, 결국 아직까지 다양한 노화의 메커니즘을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한 연구 결과는 없다. 노화의 메커니즘은 사람에 따라, 환경에 따라, 유전적 성질에 따라, 섭취하는 음식에 따라 너무나 다양해 어쩌면 하나의 이론으로 노화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노화의 원인을 억제하는 방식을 통해 늙지 않는 인체를 만들기 위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mTOR(Mammalian Target of Rapamycin)은 다양한 업계에서 안티에이징을 홍보할 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단백질이다. mTOR의 세포 내 활성도를 억제하면 암,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당뇨병, 골다공증, 시력 감퇴 등 노화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질병들의 발병을 단번에 낮출 수 있다는 연구들이 여럿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확하게 mTOR만 제거할 수 있다면 엄청난 안티에이징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하지만 mTOR을 표적으로 삼는 라파마이신(Rapamycin)은 그 자체로 인체에 유해한 성분으로, 아직까지 우리가 기대하는 의약품은 기초 연구조차 진행되지 못한 상태이다. 다만 2009년 세 명의 생물학자 랜디 스트롱(Randy Strong), 데이비드 해리슨(David Harrison), 리처드 밀러(Richard Miller) 공동 연구팀이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라파마이신을 투입한 수컷 쥐는 대조군 대비 9%, 암컷 쥐는 대조군 대비 14%나 최대수명이 길어졌다. 이때 최대수명이란 실험 대상 중 가장 오래 산 10%의 평균수명을 뜻한다. 포유류의 최대수명을, 그것도 하나의 약물만으로 약 15%까지 끌어올린 연구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이후 라파마이신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늙음을 기피하고 젊음을 추구한다. 고대인이 숭배하던 신들은 불로불사의 몸이었으며, 기원전 3세기 중국의 시황제는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임종 직전까지 노력했다. 젊은 육신을 좇는 행위는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음 이전의 삶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시간은 그저 수많은 삶의 가치 중 일부를 형성하는 물리적 단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노화에 대한 연구가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오래 사는 삶’ 이 ‘행복한 삶’ 과 동률을 이룰 때이다. 노화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 주목하되, 당신이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삶을 되짚어보자.

 

참고문헌 | <노화의 비밀>, 사이언티픽아메리칸 편집부, 한림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