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양자전기역학 분야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과학계에서 유명하지만, 대중적으로도 20세기의 위대한 과학자 몇 명 안에 항상 손꼽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같은 분야에서 각각 독립적인 연구로 같은 해에 노벨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던 줄리안 슈윙거나 토모나가 신이치로보다 일반인들에게도 더 잘 알려진 이유는 아마도 그와 관련된 수많은 일화 때문일 것이다. 1988년에 작고한 이후로 “파인만 산업”으로까지 일컬어질 정도로 수많은 서적, 영상물, 영화 등이 쏟아져 나오면서 대중적 관심과 인기를 누린 현상은 이례적이다. 생전에도 자신과 관련된 일화를 꾸준히 만들어내고 편집하면서 자신의 이미지와 명성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관리했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개인적 성향이 현대 물리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에는 분명히 기여했다. 

 파인만의 전기나 일화를 읽기가 부담스러운 사람에게는 파인만의 사적, 공적 편지글을 엮은 책이 더 무난하게 다가올 것 같다. 편지를 선별하고 편집한 책이기는 하지만, 포함된 글들은 다른 해석이나 가감이 없이 그의 생활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족과 같은 가까운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에서는 친근한 관계와 삶의 냄새가 묻어나고, 공적인 편지에서는 냉철하면서도 명확한 그의 사고와 태도, 그리고 사회적인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노벨상을 받은 직후인 1967년에, 유대인 노벨상 수상자들에 대한 책을 냈던 티나 레비탄이 파인만을 자신의 책에 추가하기 위해 흑백사진과 자전적 소개서를 요청한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 파인만은 “13세에 이미 다른 종교적 시각을 받아들였다”는 간결한 설명과 함께 그 책에 자신이 포함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레비탄이 재차 “종교적인 의미에서 유대인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에게서 귀중한 유전자와 재능을 물려받은 후손도 포함하려 한다”는 설명과 함께 다시 생각해 달라고 청원했다. 파인만은 이에 대하여 파인만은 유대인을 특별한 유전 특질이 있는 인종으로 보는 시각에 대하여 우려를 표명하면서, 이러한 논리가 히틀러의 선동과 다르지 않음을 지적했다. 또, 자신은 유대인이 “선택된 민족”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단언하였다. 그리고, 좋은 재능과 선함, 그리고 같은 이유로 덜한 재능과 악함도 유대인만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특성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 책에 포함되는 것을 끝내 거부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도 파인만의 편지는 여러 가지로 시사점을 던져 준다.학업이나 연구, 출산이나 양육과 같은 일상적인 활동과 생활이 모두 국가나 민족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치인, “우월한 유전자” 같은 우생학적 표현을 양산하고 보급하는 미디어, 그리고 “생물학적 성별”을 환원론적으로 적용하려는 사회 운동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파인만의 일화를 소개하여 파인만 산업에 일조한다는 비판도 가능하겠지만, 충분히 그것을 상쇄할 수 있는 가치가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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