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미국에서 계절 학기를 수강했다. 놀라움으로 가득 찬 학기였다. 미국의 학생들은 우리보다 훨씬 쉬운 내용을 공부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학점이 낮아도, 뛰어난 연구 실적이 없어도 원하는 분야의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고, 우리보다 훨씬 좋은 조건의 직장을 구할 수도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 나라는 약하고, 내 대학은 세계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이 억울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훨씬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졌던 것 같다.

 지난 가을, 33학점을 들었다. 거의 모든 수업을 자면서 보냈고, 수업 외 시간에도 공부는 하지 않았다. 학점은 받았지만 나는 배운 것이 없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던 욕심이었지만, 과한 욕심이었다. 학점만 채우고 졸업하면 대학원에서 훨씬 많이 배울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내실을 다지지 않는 질주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이었다.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학기가 시작되었다. 마찬가지로 열심히 공부하려 했지만 수업이 너무 가기 싫었다.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일들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내 꿈은 내 노력과 무관하게 이룰 수 없어 보였다. 나는 더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정작 공부는 하기 싫었다. 난 내 약한 사회적 배경을 극복하지 못해 억울할 뿐이었다.

 봄학기는 몇 주 버티지 못하고 휴학했다.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쉬었다. 그리고 8월, 오랫동안 계획했던 여행을 떠났다.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요리를 배우고 싶어서 콜롬비아에서 무작정 헬싱키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사람,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로켓공학과를 졸업했지만 재미가 없어 런던의 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다 지금은 라트비아에서 축구를 하고 있던 사람, 아이오와에서 러시아어 교수를 하다 은퇴하고 우크라이나의 친구를 만나기 위해 기차로 유럽을 건너던 사람…… 놀랍게도 그들의 행복과 사회, 경제적 성공 여부는 상관이 없었다. 행복한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기쁨을 느꼈고, 과거보다 조금이라도 발전하는 현재의 모습에서 보람을 느꼈다. 

 나는 여행에서 돌아온 뒤, 내가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는 배제하고 내가 해보고 싶었던 진로로 전과했다. 삶에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오로지 그것이 문제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며, 행복이 생기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생각보다 쉽게 행복할 수 있었다.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