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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인가 직면인가, 둘은 다른가
스파이크 존즈 - <존 말코비치 되기>
[452호] 2018년 09월 18일 (화) 김선규 기자 seongyukim@kaist.ac.kr

 인형사 크레이그는 관절 인형에 영혼을 불어넣는다. 그의 풍부한 손놀림 아래에서, 인형들은 아름답게 춤춘다. 하지만 가난에 시달리던 무명 인형사는 인형과 무관한 레스터 사에 취직한다. 회사에서 서류정리 업무를 하던 그는 서랍 뒤 기이한 통로를 발견하고 들어간다. 통로를 다 지났을 때, 크레이그는 유명 배우 존 말코비치의 몸 안에 있었다.

 15분 동안 남이 되는 것은 매력적인 경험이다. 크레이그가 이 체험으로 사업을 벌이자, 이제는 누구나 말코비치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말코비치의 몸을 빌린다. 그들은 잠시나마 유명인, 부자, 남자, 배우가 되기 위해 좁고 축축한 통로를 지난다. 어떤 사람이 될지 선택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짧게 주어진 이 환상은 현실에서 벗어나는 마약 같은 도피이다. 하지만 크레이그는 달랐다. 그는 말코비치를 조종하며 원하는 여자를 만나고, 인형사로서 이름을 떨친다. 말코비치를 인형처럼 조종할 수 있게 된 크레이그는 아예 새 삶을 시작한다. 몸을 빌려 자신의 욕구와 문제를 직면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모습은 불편함과 해방감을 동시에 준다.

 크레이그는 말코비치의 몸에서 영원히 사는 방법을 찾는다.  크레이그가 원하는대로 말코비치는 말하고,  춤추고,  섹스하고,  연기한다. 크레이그는 말코비치의 배우 커리어를 멈춘다. 그리고 말코비치의 명성을 이용해 일류 인형사로서 삶을 새롭게 시작한다.

 배우를 조종하는 인형사의 이야기는 비겁한 한 남자의 일탈을 그린다. 이 남자는 남의 삶을 빼앗았다. 이 남자는 자신의 아내가 방해되자 원숭이와 함께 우리에 가뒀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영화가 부여한 공상적 요소를 과감히 지워내면 인간의 알몸만이 남아있다. 우리도 타인이 되는 상상을 하고, 마음대로 움직이는 세상을 바란다. 그 생각이 실현되지 않을 뿐 도망치는 것을 꿈꾼다. 결국 말코비치로 산 크레이그는 운이 좋고 인간성에 충실했을 뿐이다.

 비열한 행동은 비난받는다. 하지만 크레이그의 인형 놀이과 말코비치의 자아 상실은 그저 웃음거리에 불과하다. 크레이그는 삶에서의 도피처로 통로를 드나든다. 하지만 오히려 타인의 몸에서 문제에 직면한다. 저속과 품위, 도피와 직면, 크레이그와 말코비치는 짧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그 통로를 마주하길 거부할 뿐, 다르게 생각하던 것은 가까이 놓여 있다. 크레이그가 처음으로 말코비치로 인형극을 했을 때, 크레이그와 말코비치는 하나가 되어 빙글빙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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