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8.11.14 수 20:29
시작페이지로 설정즐겨찾기 추가
 
> 뉴스 > 문화
     
연극 <알앤제이>, 금서를 통해 금기를 깨다
[452호] 2018년 09월 18일 (화) 하예림 기자 yerimha13@kaist.ac.kr

 20세기 가톨릭 기숙학교에는 엄격한 규율, 반복되는 일상을 제하고는 아무것도 없다. 밤이면 네 명의 남학생은 답답함을 떨쳐내고자 닫힌 공간을 빠져나간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숨죽인 발걸음의 끝에 놓여 있다. 금서를 발견한 그들은 희곡을 읽고 연기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들은 역할에 빠진다.


극의 진행에 따라 성장하는 학생들 

 ‘알앤제이’의 주인공은 학생 네 명이다. 그러나 극에서 그들의 정보가 언급되는 일은 없다. 학생들이 주고받는 대사는 모두 셰익스피어에게서 나온다.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 또는 소네트의 구절이 전부다. 그들이 연극을 시작하는 계기도 프리퀄 영상에서만 소개될 뿐, 극에서는 철저히 배제된다. 극의 숨가쁜 진행 속에서 배역을 맡은 이들도 변한다. 극의 초반, 학생 3은 체벌과 탄압 아래 키워 온 폭력성을 주변 학생들에게 표출한다. 하지만 학생 1의 위로 덕분에 그는 분노를 이겨내고 연기할 용기를 얻는다. 학생 4는 극 밖의 자신과 극 내 주인공의 감정 차이로 괴로워한다. 학생 4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안타까워해 왔다. 그러나 유모이기에 줄리엣에게 패리스 백작과 결혼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로미오에게 줄리엣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야 한다.

 캐풀렛 부인, 유모 등 여성을 연기하는 학생 3, 4는 학교에 의해 주입된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그들은 여성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과장해 표현한다. 하지만 학생 2, 줄리엣은 높은 목소리나 우아한 동작을 의도하지 않는다. 줄리엣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준다. 곧이어 그들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해 서술한 페이지를 교과서에서 찢는다. 고정된 성 역할 그리고 학교의 억압은 사랑에 빠진 줄리엣과 로미오의 일탈 속에서 무력화된다. 그들의 해방은 더 이상 어두움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연극에 합류하는 것을 망설이던 학생 2는 어느새 집안의 강요에 맞서고 세계의 불합리를 들춘다.

 ‘알앤제이’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극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학생들의 언어일 뿐이다. 맡은 역에 몰입할수록 학생들은 학교의 억압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낀다. 동시에 이야기 속 불합리함에 불만을 품고 다가오는 결말을 부정하고자 한다. ‘죽음으로 끝나는 사랑 이야기’임은 서문에 명시되어 있었지만, 그 무거운 뜻을 깨달은 것은 이미 늦은 후였다. 하지만 비극이 장식하는 결말과 연극이 끝난 후에 돌아가야 하는 현실 중 어떤 것이 학생들에게 더 악몽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관람 포인트, 열려있는 해석의 가능성

 학생 1, 2, 3, 4가 모두 더블 캐스팅되어 총 16개의 조합이 존재한다. 같은 역할이라도 배우의 해석에 따라 상반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윤소호 배우가 연기한 학생 2는 극에 빠르게 몰입하는 반면 강승호 배우가 연기한 학생 2는 친구들 앞에서 연기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 듯 느리게 역할에 빠져든다. 학생 1을 연기한 문성일, 손승원 배우의 해석 차이는 상반된 결말을 유도한다. 배우마다 대사의 일부분이 다르기도 하다.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붉은 천은 ‘제5의 배우’로 불릴 만큼 많은 의미의 중첩 위에 있다. 소품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어두운 곳에서, 붉은 천은 칼, 망토 등의 소품이다. 상황과 시간의 흐름, 장면을 표현하는 배경이다. 극의 등장인물과 연기자의 관계를 붉게 가로지르며 시각적으로 대립하게 만든다. 표현의 일반화는 몇 장면에서 모순을 부른다. 줄리엣이 마시는 약물의 상징인 붉은 천을 함께 잡은 이는 로미오를 맡은 학생 1이고, 로미오가 마시려 하는 독약을 붉은 천에 부어주는 것은 줄리엣을 맡은 학생 2이다. 천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이어주기도 둘을 사지로 몰아넣기도 한다. 개막 전 영상에서 붉은 천이 학생들을 옭아매는 모습은 이 추측에 힘을 싣는다. 

 ‘알앤제이’는 관객이 무대를 가까운 거리에서 느끼는 ‘무대석’을 도입했다. 무대석은 무대와 나무바닥으로 연결되어 배우들의 울림을 전한다. 대한민국에서의 초연인 이 무대는 도전적인 시도들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적 감성을 잘 옮긴 번역, 간소하지만 초라하지 않은 무대, 배우들의 입체적 연기는 관객에게 ‘알앤제이’를 각인시킨다. 비극으로 끝나는 유명한 사랑 이야기가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장소 |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

날짜 | 2018.07.10.~2018.09.30.

요금 | 55,000원(무대석)

시간 | 150여분

문의 | 02)3485-8700

하예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카이스트신문(http://times.kaist.ac.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기사제보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대전 유성구 대학로 291 KAIST 교양분관 1층 카이스트신문사 | Tel 042-350-2243
발행인 신성철 | 주간 김동주 | 편집장 오태화
Copyright 2010-2016 카이스트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kaisttime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