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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증에서 분열증으로
들뢰즈, 가타리 - <안티 오이디푸스>
[450호] 2018년 08월 21일 (화) 김선규 기자 seongyukim@kaist.ac.kr

 오이디푸스는 어머니를 사랑해 아버지를 살해한다. 그러나 신화 밖의 아버지는 살해되지 않으며, 어머니를 차지하려는 최초의 욕구는 좌절된다. 정신분석은 현대인을 원초적 욕망이 억압된 환자로 여긴다. 즉, 욕망은 결여에서 파생되며, 인간은 실패한 오이디푸스이다. 욕망은 아버지-어머니-나의 견고한 삼각형에 구속되었으며, 인간은 억압을 지향하는 환자로 단정 지어진다.

 들뢰즈-가타리는 욕망 기계의 무질서한 운동을 통해 신경증적 오이디푸스 구조를 무너뜨리고 인간의 욕망을 병적인 것에서 분리한다. 기계는 다른 기계와 자의적으로 연결, 분리, 결합하며 흐름(생산)을 창출하는 ‘주체 아닌 것’이다. 입이 먹는 기계, 말하는 기계, 키스하는 기계, 혹은 배설하는 기계 등 어떤 기계도 될 수 있듯이 기계적 욕망은 본성 없이 우연으로 작동한다. 인간의 본성이 병적 상태에서 기인한다는 정신분석은 설득력을 잃는다.

 오이디푸스는 비보편적, 비근원적이다. 욕망은 결여에서 파생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이디푸스 구조가 원인이 아닐지언정, 곳곳에서 일어나는 오이디푸스화는 삼각형을 실체화했다. 부모는 아이의 행동, 소유를 제한하는 규칙을 만들어 아버지이자 법이자 신이자 절대자의 존재를 암시하고, 목적 없이 잉여 가치를 생산하는 자본은 자신의 몸집을 부풀려 개인의 노동 가치를 떨어뜨리고 충족을 방해한다.

 모두가 신경증적 행동을 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신경증 환자가 되도록 강요받는다. 삼각형 외부에서 울부짖는 기계들을 애써 무시하며 주체 기표에 의미를 겹치며 욕망을 억압한다. 정신분석이 고전주의 시대에서 다시 불러온 표상의 세계, 오이디푸스 극장 위에서 억압된 인간은 먹고 춤추고 노래한다. 들뢰즈-가타리는 분열증으로 구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어되고 있는 욕망의 흐름을 횡단하며, 아버지이자 어머니이자 나인, 남성이자 여성인 분열자만이 오이디푸스가 아닌 시선으로 세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속의 우리는 들뢰즈-가타리, 정신분석자, 제삼자의 주장 중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다. 그저 정신분석이 바라보는 우울한 시선에 낙담한 이에게 희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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