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로 세운 전광판, 미국을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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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로 세운 전광판, 미국을 비추다
  • 박재균 기자
  • 승인 2018.05.0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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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맥도나 - <쓰리 빌보드>

 딸과 말싸움을 하다가 길에서 강간이나 당하라고 소리친 그 날, 딸은 강간당하고 불에 타죽어 시체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폭행을 일삼던 남편과는 이혼한 지 오래고, 이제 남은 가족은 아들뿐이다. 무능한 마을 경찰이 범인을 찾지 못한 채, 작은 마을은 강간 방화 사건을 잊어 간다. 그녀에게 남은 기제는 증오와 폭력뿐이다. 그녀는 도시 외곽의 도로에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전광판 세 개 위에 광고를 설치한다. “RAPED WHILE DYING”, “STILL NO ARRESTS?”, “HOW COME, CHIEF WILLOUGBY?” 영화는 이제 시작이다.
딸의 엄마, 밀드레드가 세운 전광판은 마을에 큰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녀가 지목한 윌러비 경찰서장은 마을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녀의 일에 가슴 아파하던 마을 사람들도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라고 그녀에게 묻는다. 월러비를 존경하는 차별주의자 경찰 딕슨은 그녀를 직접 위협한다. 그뿐 아니라, 전광판을 제공한 광고기획자를 아무 이유 없이 폭행하고 2층에서 떨어트려 큰 상해를 입힌다. 그녀의 증오는 이내 마을 전체로 확산된다.
누군가 전광판에 불을 지른다. 이에 밀드레드는 경찰서로 가 의연하게 불을 지른다. 당연히 딕슨의 짓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찰서에 사람이 없을 한밤중의 불이었지만, 딕슨이 아직 경찰서에 홀로 남아 있었다. 목숨은 겨우 건졌지만, 얼굴 전체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입원한 딕슨은 자신이 폭행했던 광고기획자와 같은 방을 쓰게 된다. 입만 겨우 움직이는 딕슨에게 광고기획자는 오렌지 주스에 빨대를 꽂아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이 입체적이다. 하지만 그 방향은 모두 같다. 증오보단 공감이, 폭력보단 연대가 필요함을 깨닫는 것이다. 영화는 일견 단순해 보이는 주제의식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플롯과 미국식 유머로 포장한다. 영화가 ‘미국적’인 취향을 따르고 있음을 무시해선 안 된다. 지금, 미국 사회는 증오와 사적 제재가 각각 만연하고 있다. 비단 미국만은 아니다. 영화 <쓰리 빌보드>처럼 수많은 가치의 대립과 혐오 속에서 의견이 조율되기를 바라며, 연대와 공감의 힘을 깨닫게 해달라고, 도와달라고, 미국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일지 모른다.
밀드레드의 딸은 불에 타죽는다. 그래서 밀드레드는 빨간색 배경의 전광판을 세운다. 또한, 경찰서에 불을 지르기도 한다. 증오와 복수를 상징하는 빨간색은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하지만 이 색감은 광고기획자가 딕슨에게 건넨 노란색 오렌지 주스에 바뀐다. 이러한 이행이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까? 밀드레드의 딸 안젤라 헤이즈(Angela Hayes) 혹은 Anger, Hate의 죽음이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 아니었기를 빌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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