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여러 사건에 대한 기사나 평론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말이 있다. 바로 관행(慣行)이라는 말인데, 습관처럼 굳어져서 사회의 구성원들이 인정하고 받아들일 만한 행위를 일컫는다. 어떤 경우에는 관습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관행과 관습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을 때가 있다. 관습은 사회적 규범의 측면을 강조할 때에 사용하고, 관행은 개별적인 행위에 초점을 맞출 때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관습이라는 말은 가치 판단의 측면에서 중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관행이라는 말은 긍정적인 맥락보다는 부정적인 맥락에서 더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수활동비 상납이 관행이었다든지, 간호사들 사이의 ‘태움’이 관행이라든지 하는 표현은 특정한 행위를 지칭하면서, 그런 행위가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기 어려움을 함께 나타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곳에서 관행이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그러한 관행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당화되는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를 비롯한 많은 대학과 과학계에도 여러 가지 관습과 관행이 존재한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실시된 2017년 연구환경 실태조사에는 대학원생들의 연구실 조직과 생활, 그리고 연구 과정의 경험들이 잘 나타나 있다. 대학원 총학생회에 의하면, 2016년과 비교하여 크게 개선된 점이 없다고 한다. 규정을 벗어나는 관행이나 대학원생들이 느끼기에 바람직하지 않은 관행도 다수 지적되었다. 돌이켜 보면, 2014년에 대학원 총학생회에서 권리장전을 발표한 이후로 구체적인 후속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지금까지는 쟁점에 맞추어 그때마다 개별적인 개선책을 구했던 것 같다. 한 가지 긍정적인 것은 대학원생들이 연구환경 실태조사에 점진적으로 많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태조사에만 그치지 않고 대학원생들이 수시로 의견을 개진하면서 상식을 벗어나는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소통의 통로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영국의 화학자 마이클 폴라니는 과학적 탐구의 과정에서 명시적으로 확립된 지식과 더불어 몸에 밴 습관이나 연구자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가치 지향과 같은 암묵적인 지식이 과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연구실의 분위기와 연구실 구성원의 사회적 관계도 이러한 암묵적 지식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어서, 지도교수에게 연구실 운영 방식을 배우는 것도 이 암묵적 지식이 전수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연구실에서 배우는 일상적 가치와 생활 습관이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를테면 한 나라 또는 대학의 연구실 분위기를 다른 나라 또는 대학에 그대로 옮길 수 없다는 함의도 담고 있다. 편의나 효율, 또는 위계의 상징적 확인을 위해서 지속되는 관행들이 과연 연구실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지 성찰해 볼 일이다.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관행(慣行)과 한자 및 의미가 다른 관행(觀行)이라는 개념이 있다. 선불교 전통에서 지혜와 실천, 즉 앎과 행함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수행을 말한다. 원효가 살았던 7세기에도 둘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대상에 대한 인식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지혜를 통해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를 실천한다는 뜻이다. 마음의 성찰과 더불어 연구실 구성원들 사이의 소통도 중요한 실천이다. 연구실에서 항상 몸을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대학원생들이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면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학내 구성원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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