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카이스트 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상하다. 어쩔 수 없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도, 표현할 방법 없이 머릿속에서 떠돌아다닐 뿐인 생각의 조각도, 눈꺼풀 안쪽에 그려지는 이미지도, 두개골 안쪽에서 메아리치는 소리도 아닌 하나의 온전한 문장을 떠올린 것이기에. 그러니까, 적어도 한국어라는 언어는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닌가? 손에 쥔 채 태어났을 리 없는, 인생의 어느 부분인가에서 배웠을 지식을 기억하고 생각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에 대한 지식은 더 많은 기억을 말해준다.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간 생각이 품고 있는 모든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는 뜻이다. 조각도, 두개골도, 메아리도, 배운다는 것도. 기억이 없기는커녕 기억하는 것이 많아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머리를 잘라버린 문장이다. 그러니 다시 머리를 달아 정정해주자. “나 자신에 대한 것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떠올려도 아무런 답도 내놓을 수 없었다. 이름은 무엇인가? 부모님은 어떤 분이신가? 나이는 몇 살인가? 직업은 무엇인가? 성별은? 얼굴은? 머리는? 눈동자 색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가? 그리고 지금 왜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어야 하는가? 모든 질문이 고무줄 대신 찰흙이 달린 새총 같다. 잡아당겨도 결코 돌아오지 않고, 끝없이 늘어진다. 그러다 끊어질 뿐.

갑자기 허망한 기분이 들었다. 온갖 잡다한 지식, 너무 많은 사람이 공유해 추억이라고 불릴 수조차 없는 기억들은 머릿속에 남아있는데 내가 직접 경험했던 일에 대한 기억이 남김없이 사라지다니. 내 인생은 기억의 지층에 지워지지 않을 추억 하나 새겨 넣지 못한 것일까. 살면서 가장 깊은 흔적을 남긴 경험조차 흔하디흔한 상식보다 얕은 깊이에밖에 도달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 아예 어떤 기억도 조각되지 못하고, 그저 지표 위에 쌓인 먼지, 강한 바람이 불면 날아가 잊히는 먼지밖에 되지 못한 것일까. 인생이 그렇게 가벼운 것이었나.

어쩌면, 어쩌면 나는 아무것도 잊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5분 전에 창조되었다는 명제를 아는가? 말도 안 되는 말 같지만 놀랍게도 이 명제는 반증이 불가능하다. 과거에 대한 기억, 나무의 나이테, 낡아빠진 골동품이나 깊은 땅 아래 화석 모두를 가져와도 그저 그것들이 그 상태로 창조되었다고 말하면 그 이상 반박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명제를 나에게 맞춰 바꾸면 이렇다. 나는 이 자리에,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가진 채 태어난 것이다. 잊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아무것도 경험한 적 없는 것이다. 이 의견은 어쩐지 매력적이고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원래의 명제는 반증도 입증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치 없는 명제로 여겨졌다. 내 경우는 어떨까.

이런 생각은 그만두자. 기억나지도 않은 과거에 사로잡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그게 무슨 우스운 꼴인가. 바꿀 수 없는 과거보다는 개척해나갈 현재와 미래에 집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잊자. 잊자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엇을 잊는단 말인가. 반사적으로 떠오른 잊자 라는 단어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웃음은 만병통치약이라고 하던가. 올라가는 입꼬리와 동시에 기분도 좀 나아져, 새롭게 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으로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슨 상황 속에 있는지를 알아야 앞으로 무엇을 할지 결정할 수 있다. 이 알아내기에 가장 흔히 사용되는 방식인 기억해내기를 할 수 없으니, 지금 얻을 수 있는 정보로부터 추리해내고 새롭게 배워야 했다. 예를 들면 내가 알고 있는 상식. 이것으로도 나에 대해 추론해볼 수 있다. 나는 반도체에 대해 알고 있다. p형 반도체와 n형 반도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들이 서로 접합됐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반도체에 원하는 양 만큼을 도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정보들을 이용해 실제로 사용되는 반도체를 어떻게 만드는지. 일반인이 이런 걸 알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전혀 아니다. 그러니 나는 이런 정보를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특정 부류로 분류될 수 있다. 나는 반도체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거나, 적어도 전자과를 전공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갈 수 있다. 내가 특정 지역의 음식점에 대해 떠올린다면 어디에 살았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떤 운동의 경기 규칙에 대해서만 빠삭하다면 취미가 무엇이었을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지식은 사전이 아니다. 책장에서 책을 꺼내어 펼치듯 맨 앞장부터 한 장 한 장 넘겨볼 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차례로 떠올릴 수는 없다. 이 방법은 전문가가 옆에서 질문지를 작성해 건네주기라도 하지 않으면 무리다.

결국,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육체와 정신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깨부수고 나와 현실을 직면할 때였다. 이제 귀를 열고, 눈을 뜨고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알아내야 했다.

무엇인가 귀를 간질였다. 그것을 향해 손을 움직여 갔다. 손은 수많은 미약한 저항을 뚫고 귓가에 다가가 귀를 간질인 범인을 잡아냈다. 차갑고 매끄러운 촉감. 손톱으로 눌러보면 쉽게 파이는 약한 표면, 손톱으로 누르자 흠집에서 스며 나오는 싱그러운 냄새. 정확히 어떤 종인지는 몰라도, 풀이다. 나는 지금 풀밭 위에 누워 있었다.

귀를 통해 들어오는 것에도 조금 신경 써보려고 했지만, 주변은 조용했다. 다른 곳 같으면 잡초 몇 포기만 있는 곳에서도 들려올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옅은 바람에도 소란스럽게 서로 떠들 풀잎도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오직 내가 몸을 뒤척이며 만들어내는 소음만이 들려왔다. 혹시라도 이 작은 방해꾼 때문에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을까, 해서 미세한 움직임마저 억제한 채 가만히 있어 봤지만, 여전히 외부의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그저 뱃속에서 장기들이 내는 꾸르륵거리는 소리, 맥박 뛰는 소리만 선명해질 뿐이었다.

눈을 떴다. 아니, 눈을 떴나? 몇 번 더 감았다 뜬 후에야 눈을 뜨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주변은 눈꺼풀의 위치도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풀밭을 등에 대고 있으니 눈앞에 보여야 할 하늘은 그저 검을 뿐,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별이 무엇인가, 달조차 볼 수 없었다. 오늘이 구름이 특히 두텁게 낀 날인 것일까.

배에 힘을 줘 일어나 앉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 지 삼십 초도 지나지 않았을 터인데 습관적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주변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성과가 있었다. 광원이 어디인지조차 알아낼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빛이었지만 적어도 이 자리를 비추고 있기는 한지 주변이 보였던 것이다. 색조차 구분할 수 없는, 윤곽선만을 겨우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짙은 어둠이었지만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손을 움직여 몸을 더듬어 보았다. 팔과 다리 모두 둘씩 있다. 손가락도 열 개 빠짐없이 달려있다. 마치 갓 태어난 신생아의 손가락과 발가락 수를 세어보는 부모 같다. 이제 백지부터 자신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신생아와 마찬가지고, 온전한 사람이 되기 전까지 나를 책임지고 돌봐줄 존재 역시 나 자신뿐이니 부모라고도 할 수 있어 크게 틀린 비유는 아니었다. 그렇게 몸 곳곳을 손으로 더듬어 확인했다. 꾸준히 스트레칭을 했는지 특별히 뻣뻣한 몸은 아니어서 빠진 곳 없이 몸 구석구석에 모두 손이 닿았다. 우선 몸에 결손이나 만져서 알 정도로 큰 상처는 없었다. 몸이 건강한 것은 다행이지만, 기억을 잃은 것이 사고에 의한 것이었다면 분명 눈에 띌 만한 상처가 남았을 텐데 그것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 실마리를 얻지 못한 것이다.

비록 지금 상황을 해결할 결정적 단서를 찾지는 못했지만, 처음 목표했던 대로 나 자신에 대한 정보는 좀 더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여자다. 그리고 몸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보통 육체 노동자에게서 찾아낼 수 있는 굳은살이 손과 발 어디에도 없었고, 근육도 그것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기 때문이다. 손톱과 발톱은 짧게 깎여 있었고, 머리카락도 마찬가지로 짧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사실 머리카락의 경우에는 조금 과할 정도로 짧았다. 보통의 단발보다도 더 짧은, 남자들이나 할 만한 길이였던 것이다.

몸에 걸친 것은 팔과 다리 전체를 덮고, 조금은 몸을 조이는, 잠수복과 비슷한 재질의 옷이었다. 이 옷은 이상할 정도로 밋밋했다. 주머니나 장식이 하나도 달려있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재봉선 같은 것도 옷을 만들 때 꼭 필요한 부분에만 나 있어 장식 용도로 달려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옷 전체가 하나의 재질로 되어 있고, 어두워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색도 그저 검은색 일색으로 보여 만들어 파는 옷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다른 용도는 하나도 없이 그저 입기 위해서만 입는 옷이었다. 그리고 이 옷이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돈, 신용카드, 스마트폰 등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한순간도 몸에서 떼어놓지 않을 물건들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듯했다.

종합해보자면 나는 평소와 같은 삶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기억을 잃고 눈을 뜨게 된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어떤 실험에 참여하고 있는 것에 더 가까워 보였다. 관리하기 쉬운 모습, 실험동물 같은 꼴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까보다는 훨씬 많은 것을 알게 됐지만, 아직 앞으로의 행동을 정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 실험이 어떤 내용인지, 왜 내가 이 실험에 참여하고 있는지. 아니, 내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는 한 것인지조차 모르니. 잠시 고민하였지만 다른 수를 떠올리지 못했기에 결국 소리를 쳐 도움을 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완전한 적막을 깨는 일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했다. 마치 고급 접시를 바닥에 내던져 깨는 것 같은, 죄를 범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나는 입을 열었다. 아, 아.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인지 굵고 갈라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큼, 큼 하고 목을 몇 번 가다듬고는 다시 소리를 내었다. 거기 누구 없나요? 저 좀 도와주세요. 조금은 높은, 평범한 목소리. 이게 내 목소리이다. 다시, 거기 누구 없나요? 여기가 어디죠? 아까보다 조금 더 큰 소리로 사람들을 불렀다. 저기요! 목소리는 거의 소리치는 정도까지 올라갔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소리는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의 높이가 달라지자 보이는 풍경이 변했다. 그리고 그때에야 내가 얼마나 이상한 곳에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방이 풀밭이었다. 발목 정도 오는 작은 풀들이 시야 안의 모든 곳, 물론 어둠 때문에 그리 멀리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볼 수 있는 곳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분명 인조 잔디 같은 것이 아닌 살아있는 풀이었는데도 모든 풀의 높이는 일정했다. 그리고 모두 같은 종인 것 같았다. 그냥 야산에 자란 풀이 아니라 잘 관리된 잔디밭인 듯했다.

또, 이미 언급했지만 벌레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낮이건 밤이건 생명이 가득해야 할 풀밭인데도 그 아래에서 꿈틀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손으로 풀을 훑어도 갑작스러운 침입에 놀라 뛰어오르는 것, 날아 도망가는 것은 전혀 없었다.

바닥도 평탄했다. 아무리 평지라고는 해도 바람이 불고 동물이 다니며 또 비가 오면 약간의 높이 차이는 생길 터인데, 이 근처 땅은 그런 것도 없이 마치 실내처럼 완전히 평평했다. 풀 아래로 손가락을 넣어보면 만져지는 것은 흙인데도 그랬다.

바람도 불지 않는다. 겨우 볼 수 있는 정도지만 어쨌든 여기를 비춰주고 있는 빛, 그 빛이 어디에서 오는지도 알 수 없다. 결론적으로 나는 방향감각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어디가 동쪽이고 어디가 서쪽인지 알 수 없는 정도가 아니다. 잠깐만 한눈팔면 방금까지 보고 있던 방향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방향이 완전히 똑같았다.

장소에 대해 판단할 기준을 완전히 잃어버리니 생각의 근거도 사라져버리는 것 같았다. 받침을 잃은 생각의 부속물들이 와르르 무너져 바닥도 없는 무저갱 속으로 한없이 떨어져 내리는 느낌... 이 장소에 더 있다간 곧 미쳐버릴 것이다. 어떻게든 상황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적당히 아무 방향이나 택해서 걷기 시작했다.

걸어도, 걸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굴곡 하나 없이 평평한 땅. 사람이 세워 둔 이정표나, 자연이 세웠지만 역시 사람이 이정표로 쓰는 나무는커녕 다른 풀보다 조금 더 긴 풀 한 포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밝기도 마찬가지였는데, 한참 동안 나아가도 더 어두워지지도 밝아지지도 않았다. 지금 걷고 있는 게 맞기는 한 걸까? 그저 허공에 매달려 발을 앞뒤로 휘적휘적 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로 걷고 있다고 확신하고 싶었지만 내가 근육에 보내고 있는 신호를 제외하면 그렇게 판단할만한 근거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돌멩이 하나 발에 차이지 않았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고, 경보는 어느 순간 달리기가 되었다. 달리고 또 달렸다. 심장이 뛰고 숨이 차올랐다. 더는 달릴 수 없을 정도로 달렸다. 달리기는 다시 경보가, 그리고 결국은 발을 질질 끌듯 느린 걸음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멈춰 서서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 앞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형체. 겁을 먹어야 할 것만 같았지만 지금은 반가울 뿐이었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고 반대편에서 나타난 것을 바라보았다. 몇십 분은 이동한 것 같은데 지금 있는 장소도 처음 눈을 뜬 곳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매우 어두워 윤곽선만 겨우 구분할 수준이라는 것이다. 색도 없이 그저 시커먼 형태로 보이는 것은 천천히 위아래로 들썩이고 있었는데, 마치 힘든 일을 한 뒤 멈춰서 쉬고 있는 것 같았다. 크기는 대충 한 사람이 서 있는 것과 비슷했으며, 덩치도 마른 사람 정도였다. 그것은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에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 마치 이쪽이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관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어두운 형체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더 쳐다봐도 더 나은 답이 떠오르지 않았고, 먼저 떠오른 답을 부정할 만한 사실도 알아낼 수 없었기에 나는 그것이 사람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저것이 정말 사람이라면 지금 상황에 대해 나보다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저기요. 입을 열어 상대방을 불렀다. 잠시 대답을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안녕하세요. 다시 말을 걸었지만, 마찬가지로 아무 답도 들을 수 없었다. 혹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좀 불편하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은 많았다. 나는 상대를 향해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상대도 걸어서 이쪽으로 왔다. 거리가 줄어들자 다가오는 것이 사람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곧 적당히 간격을 줄였다고 생각해 다리를 멈췄다. 내가 멈추는 동시에 상대방도 멈췄다. 상대도 나에게 가까이 왔다는 것은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나누자는 의미일 것이다. 아까는 내가 먼저 말을 꺼냈으니 이번엔 상대가 뭔가 행동을 하지 않을까? 수화 같은 것 말이다. 다음에 상대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조금은 궁금한 마음으로 가만히 기다렸다. 하지만 상대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멈춰 서 있을 뿐이었다. 양쪽 다 굳어버린 채로 몇 분이 지나갔다.

먼저 말을 걸 줄 모르는 소심한 사람인 걸까? 아무래도 대화의, 그러니까 언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도 어쨌든 정보를 교환한다는 의미에서의 대화, 그 물꼬를 트는 것은 나여야 할 것 같다. 다시 인사부터. 나는 오른손을 들어 상대에게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상대편도 동시에 오른손을 들어 흔들었다.

뭔가 이상했다. 이게 정말 사람이 맞는 걸까? 혹시 거울 같은 것이 아닐까? 아니, 거울이라면 방금 흔든 손은 왼손이어야 했다. 둘 다 오른손을 흔들었으니 거울은 아니다. 하지만 거울이 아니라고 해서, 저기 서 있는 게 다른 사람이 맞을까? 다르게 태어나 다른 삶을 살아왔을 사람끼리 이렇게 계속해서 행동이 일치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정말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같은 행동을, 한 번도 아니고 계속 할 수 있냐는 말이다. 확신이 흐려진다. 나는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상대도 동시였다. 두 손을 맞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손은 따뜻했다. 분명, 사람의 손이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나도 모르게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하지만 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목소리가 두 개였던 것이다. 음절 하나하나가 발음되는 시간까지 완전히 똑같이 겹쳐있는, 근원지만 다른 똑같은 소리. 완전히 동시에 발음되어 이렇게 가까이에서 집중하지 않으면 두 개라는 것조차 알아차릴 수 없는, 똑같은 소리. 그렇다. 아까도 말을 걸었지만 대답이 없던 것이 아니었다. 상대편도 동시에, 똑같은 말을 하고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그저 너무 같아 상대가 말했다는 것을 인식조차 할 수 없었던 것뿐.

손을 뻗어 상대방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따뜻한 손길이 내 얼굴에 와 닿았다. 짧게 깎은 머리, 귀, 코를 어루만졌다. 이번에는 손을 거둬 내 얼굴을 만져보았다. 따스한 손길이 멀어져가다 다시 얼굴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머리, 귀, 코. 머리카락의 길이나 느낌, 귀와 코의 모양과 크기 모두 같은 것 같았다. 다시 앞을 보고,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 오른손은 조금 앞에서 상대의 오른손과 맞닿았다.

문득 이렇게까지 행동이 일치하는 것은 이상하긴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한 행동과 말 모두 이 상황에서 할 만한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 아닌가? 인사하고, 부르고. 상대 역시 할 일은 이것뿐이다. 인사하고, 부르기. 길을 걷다가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과 같은 방향으로 피해가려고 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우연. 반대로, 전혀 지금 할 말이 아닌 것을 내뱉는다면 행동이 일치할 수 없을 것이다. 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전혀 없는 말을 한다면, 이 일이 그저 우연히 일어난 것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치에서 완전히 벗어난, 다른 사람이라면 절대로 지금 꺼내지 않을 말이 뭐가 있을까. 나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

유칼립투스 치약으로 서른세 번째 머리를 삼킨다! 아무 의미도 없이, 그저 상대와 달라지기 위해 억지로 지어낸 말. 그러나 이번에도 이 괴상한 문장은 두 개의 입에서, 완전히 동시에 튀어나왔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두 개라는 것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오로지 상대와 겹치지 않기 위해 떠올린 말이 우연히 같을 수 있을까? 다른 생각을 했다면, 다른 것을 배워왔다면, 다르게 살아왔다면, 다르게 태어났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저건 나다. 이상하긴 하지만, 결론은 하나다. 지금 저 건너편에 서 있는 것은 나다. 같은 삶의 공간을 공유하는 친구보다도, 같은 교육을 받은 형제들보다도, 똑같이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보다도 더 가까운 나. 전적으로 동일한 삶을 살아온 나다.

동화가 하나 생각난다. 쥐가 나오는 동화였다. 언제 읽은 것인지, 왜 읽게 된 것인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내용만은 머릿속에 들어있다. 동화 속의 쥐는 주인공의 손톱을 먹고 주인공과 같은 모습으로 변신한다. 둘은 서로 자기가 진짜라고 싸우고, 결국 주인공은 가짜로 몰려 쫓겨난다. 하지만 주인공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고양이를 구해온다. 데려온 고양이에 쥐가 지레 겁먹고 도망가 가짜의 정체가 들통나고 동화는 마무리된다. 나와 완전히 같은 존재가 나타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형상화한 동화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상황은 그 동화와 닮아있었다.

나와 완전히 같은 존재가 나타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 두려움은 어디서 올까? 아마, 내가 대체될 것이라는 공포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들이 나와 새로운 존재를 구분하지 못하고 새로운 존재가 내게 소중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것이라는 공포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이룩해 온 것,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 가족, 그리고 미래까지. 그래서인지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살면서 얻어온 것, 주변 사람들에 대해 모두 잊었으니까.

대신 지금 느껴지는 감정은 기쁨이었다. 자기 자신과 만나다니, 이 얼마나 희귀한 경험인가. 그리고 소중한 기회인가.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나 자신과 대화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서로의 말이 머릿속에서 혼자서는 떠올릴 수 없는 부분을 끌어낼 수 있으니. 나에 대한 것을 더 많이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 남들과 나 자신을 구분 지을 수 있는 경험이 없는 나에게, 나 자신과의 대화는 새로운 가치 있는 기억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말을 걸었다. 저기, 하지만 곧 이 일이 의미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기, 라는 말이 동시에 두 개의 입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저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았는가?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완전히 동일했기 때문이다. 하는 말조차 완벽히 똑같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같은 말을 하는 것은 대화라고 부를 수 없다. 대화에는 순서가 필요하다.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두 사람을 구분해야만 한다.

세상에는 순서를 정하기 위한 많은 방법이 있다. 우선 간단한 내기들. 팔굽혀펴기나 달리기, 아니면 끝말잇기 뭐 그런 것으로 더 잘하는 사람과 더 못하는 사람을 나누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나다. 어느 것을 하던 결판이 나지 않을 것이니 의미가 없다. 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보다는, 우연에 맡기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가위바위보는 어떨까? 동시에 세 가지 손 모양 중 한 가지를 내서 승패를 가르는, 가장 대중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순서 정하는 방법. 가위바위보, 입으로 소리를 내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검지와 중지를 쭉 펴고 약지와 소지를 오므려 엄지로 잡아둔 손 모양. 내가 낸 것은 가위였다. 물론 상대편이 낸 것도 가위였다. 한 판 만에 이 방법은 아무 쓸모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백 번을 하건 천 번을 하건 두 사람은 똑같은 것을 낼 것이다. 저 사람은 나니까.

제비뽑기는 어떨까? 가위바위보는 운보다 실력이 중요한 심리 게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제비뽑기가 실력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전혀 없다. 훨씬 더 운에 달린 게임인 것이다. 지금 제비를 만들 종이나 펜 같은 것은 없지만, 여긴 풀밭이니 풀 하나는 사방에 널려있었다. 나는 뒤로 돌아 쪼그려 앉아 바닥에서 풀 두 개를 뽑아냈다.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잠시 고민하다가, 왼손에 든 풀은 팔꿈치 안쪽에 끼워놓고 오른손에 든 풀의 아래쪽을 접어서 표시했다. 다시 두 풀을 한 손에 모아들고는 위로 솟은 높이가 같게, 보이는 부분만 봐서는 구분할 수 없게 잘 조절했다.

그리고 조금은 뿌듯한 기분으로 방금 만든 제비를 들고 일어났다. 하지만 뿌듯한 기분은 금방 사라졌는데, 건너편의 나 역시 손에 풀을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로 어떤 제비 쌍을 쓸지 결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누가 먼저 뽑을지, 누가 어느 제비를 가져갈지도 절대로 결정할 수 없을 것이다.

순서 정하는 방법은 많지만, 그 방법들은 전부 비슷비슷한 이유로 쓸모가 없었다. 어떻게 결정할지가 사람에게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동전 던지기 같은 것이다. 사람이 동전을 던질 때,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동전이 던져지는 높이, 각도, 회전속도, 바람, 바닥과 동전의 재질 등 모든 조건을 알고 있다면, 그저 공식에 숫자를 넣는 것만으로 어느 면이 나올지 알아낼 수 있다. 다시 말해, 완전히 똑같이 던지면 같은 면이 나오게 된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라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이라면 완벽하게 같은 힘으로 던질 수 없겠지만 내 앞에 서 있는 것은 나. 동전은 없지만, 있더라도 계속 같은 면만 나올 것이다.

다시 동화 생각이 났다. 동화 속의 문제는 누가 진짜인지 알아내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누가 진짜인지는커녕 대화를 위해 서로를 구분하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있었다. 태양이 있었으면 태양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먼저, 아니면 동쪽에 있는 사람 먼저, 이런 식으로 구분할 수 있었을 텐데. 태양이라면 둘 사이에 떠 있더라도 곧 한 방향으로 움직일 터이니 나와 나를 구분할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태양이 아니더라도 여길 비추고 있는 희미한 빛, 그 빛이 나오는 곳을 알 수 있다면 비슷한 방법을 쓸 수 있었을 텐데. 나무가 있었으면 나무에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 혹은 나무가 오른쪽으로 보이는 사람 이런 식으로 구분할 수 있었을 텐데. 별이 보였다면 별자리를 통해 둘의 차이를 찾을 수 있었을 텐데. 하다못해 둘이 마주 보고 있지만 않았어도 오른쪽에 있는 사람, 왼쪽에 있는 사람 하는 식으로 구분이 될 텐데. 여긴 아무것도 없다.

좀 더 누가 하든 상관없는, 우연에 맡기는 일이 없을까? 모르는 사람에게 물어보기, 사다리 게임, 주사위, 홀짝, 아니면 평소에 함께 즐기는 게임 한판, 당구 한판 등등 떠오르는 방법 모두가 외부의 물건이나 사람, 그리고 자기 자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순수하게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없어 보였다. 사람이란 생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제 머리를 움켜쥐는 동물이다. 나 또한 사람인 것은 마찬가지여서 두 손은 저절로 올라가 관자놀이 근처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손가락의 감촉이 아직 시험해보지 않은 방법을 일깨워줬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 중에는 머리카락 싸움이라는 놈이 있던 것이다. 머리카락 싸움이란 광물의 굳기를 비교하기 위해 돌 두 개를 서로 부딪쳐 무엇이 깨지나 비교하는 것과 비슷한데, 다만 이 일을 머리카락으로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머리카락을 하나씩 뽑아 같은 길이로 양쪽을 잡고 가운데 부분을 서로 맞닿게 한다. 그리고 힘껏 밀거나, 혹은 지역에 따라, 당겨서 머리카락이 끊어지는 쪽이 지고 성한 쪽이 이기는 그런 종류의 놀이이다. 전 인류가 즐길 수는 없지만 젊은 사람이라면 대체로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머리카락 싸움은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졌는데 상당히 운에 맡기는 것 같으면서 반드시 승부가 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으니 나는 당장 시험해보기로 했다. 손을 들고 머리카락 한 가닥을 적당히 골라 뽑아냈다. 잠깐 따끔했지만, 아픔 축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가벼운 통증이었다. 그리고 그 머리카락의 양 끝을 두 검지에 대충 감고는 잡아당겨 팽팽히 했다. 그 후 오른손을 위로, 왼손을 아래로 내려 45도 정도로 비스듬히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예상대로, 건너편의 나 역시 양손을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잘 보이진 않지만 두 손 사이에는 분명 머리카락 한 가닥이 걸려 있을 것이다.

손을 앞으로 조금 더 내밀어 머리카락 두 가닥을 겹쳤다. 거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더라도 이 일은 상당히 수월했는데, 그저 건너편의 나를 향해 똑바로 손을 내밀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건너편의 나 역시 같은 행동을 할 터이니 빗나갈 리 없었다. 머리카락이 서로 닿았는지, 손가락에서 미는 힘이 느껴졌다. 음식값을 계산하는 등의 자리라면 힘을 빼서 상대가 헛손질하게 하는 등 여러 전략을 쓸 수 있었겠지만 지금 이 일은 그저 먼저 말할 사람을 정하는 것뿐이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조금씩 손에 힘을 더하며 앞으로 미는 것으로 충분했다.

손에 힘이 더 들어갈 때마다 묘한 긴장감이 솟아올랐다. 두 가닥 머리카락을 통해 상대의 떨림이, 감정이 전해져 들어왔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상대의 감정이 내가 느끼는 것과 완전히 같아 공명 현상이라도 일어나는 것 같았다. 손에 들어가는 힘에 늘어감에 따라 주변이 더 밝아지는 것 같기도, 온도가 그만큼 올라가는 것 같기도 했다. 머리카락 두 가닥이 서로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 배를 대고 어느 한쪽의 허리가 끊어질 때까지 힘을 주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 머리카락에 온몸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은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절정에 이르렀고, 최고점에서 머리카락은 툭 하고 끊어져 둘로 나뉘었다.

두 손 사이의 거리는 게임을 시작할 때보다 훨씬 멀었다. 둘 사이의 거리를 제한하던 머리카락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내가 졌으니 저쪽의 내가 먼저 말을 걸어올 것이다. 드디어 나눌 나와의 대화에 기대를 안고 앞을 바라봤으나, 보이는 것은 말을 걸어오는 내가 아니라 벌어져 있는 양손이었다. 반대쪽 나의 머리카락도 끊어져 있었다. 두 가닥의 털이 동시에 끊어진 것이다. 우리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아니 우리 둘 모두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마음 한켠에 이러한 결말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다음에 할 일을 미리 생각해 두었다. 나는 뒤로 돌아 쪼그려 앉은 후 바닥에서 적당한 풀잎을 하나 집어 뽑아냈다. 그리고 풀잎의 양쪽 끝을 잡고 뒤돌아 일어나 앞으로 내밀었다. 머리카락은 내 몸의 일부이니 같을 수 있지만, 엄연히 외부의 것인 풀잎이라면 우리를 구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조금 전과 같은 힘 싸움이 다시 벌어졌다. 하지만 아까와 같은 이상한 고양감은 없었다. 두 번째라는 것이 원래 그렇듯이.

과정은 더 지루했지만 결과는 더 놀라웠다. 몇 분 뒤 나와, 나는 두 쪽으로 갈라진 풀잎을 들고 망연히 마주 서 있었다. 나는 실망감에 풀밭에 주저앉은 후 아무렇게나 누워버렸다. 생각나는 방법은 전부 써 봤다. 완전히 같은 두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대화 또한 가능할 리 없었다.

누워서 눈을 감자 머릿속에서 생각이 굴러갔다. 풀잎마저 똑같았던 것은 아까는 이상하게 생각됐지만, 천천히 생각해보니 당연하게 느껴졌다. 완전히 같은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는가. 건너편의 나는 나와 똑같이 태어났고, 나와 똑같은 것을 경험해 여기에 왔다는 것이다. 단순히 우리 둘만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 둘의 부모님 역시 완전히 똑같은 사람일 것이고, 그 외에도 우리가 살면서 만난 모든 사람이 완전히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 둘이 겹쳐 살다 이제야 떨어진 것도 아니니 결국 답은 하나다. 우리가 살던 세상도 둘이다. 그것도 완전히 같은 세상이 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그 두 세상의 경계일 것이다. 지금 나와 나 사이의 정 가운데에 있는 점을 극점이라고 부르자. 세상은 그 점을 중심으로 점대칭이다. 세상의 아무 곳에서라도 극점의 방향으로, 극점까지의 거리의 두 배 만큼 나아간다면 완전히 똑같은 곳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극점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완전히 대칭이니 우리 둘을 구분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세상에, 극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떠올린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정말 가치 있는 정보가 아닌가? 나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값진 것 같다. 사실, 나와의 대화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반도체에 대한 지식? 어림도 없다. 내 옆에, 머리를 반대 방향으로 하고 누워있는 나는 반도체에 대해서 딱 나만큼만 알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서 배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제 여기, 극점에서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엔 무엇을 해야 할까. 뒤로 돌아 극점을 등지고 왔던 곳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장난스럽게, 나와 손을 잡고 반 바퀴 빙글 돈 다음 저쪽 나의 세계로 걸어갈까? 사실 아무런 차이도 없을 것이다. 두 세계가 정말로 완전히 같다면 말이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급한 일은 아니었다. 급하지 않다면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오늘은 많이 걸었고, 많이 뛰었고, 많이 생각했다. 힘든 하루였으니, 새로운 일을 하기 전에 좀 쉬는 것쯤은 괜찮지 않겠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리고 별 의미도 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기어 다녔다. 하지만 어떤 생각의 파편도 내 흥미를 끌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쉬고 있었다. 하지만 휴식도 길지 못했다. 외부에서 무엇인가가 나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저 멍하니 있었기에 나는 그 자극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기까지 몇 초를 더 소모해야 했다. 눈꺼풀 안이 붉게 물들어있었다. 날이 밝아온다.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태양에는 마력이 있다. 떠오르는 태양은 밤새 은밀하게 진행된 모든 일을 낱낱이 들춰낸다. 어둠이 만들어낸 환상을 씻어낸다. 단단히 얼어붙어 평생을 갈 것 같던 오해를 따스한 빛으로 녹여버린다. 빛의 휘장이 드리워지고, 내 눈을 가렸다.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 동쪽에 누워있던 사람은 남자였다. 건강하게 태운 갈색 피부와 진한 눈썹, 새까만 흑발을 가진 남자. 내가 생각을 정리하려 자리에 앉아 뭉그적거리는 동안 그는 일어나서 태양을 바라보고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자, 아침이에요, 일어나세요. 중저음의 목소리. 계속 생각해왔던 것처럼, 태양에 더 가까이 있는 사람이 먼저 말을 꺼냈다. 네. 나는 조금은 높은, 평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숙련된 오케스트라의 합주처럼 동시에 들었을 때는 소리가 둘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힘들었는데, 이렇게 따로 놓고 비교해보니 절대 같다고 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그가 내민 손을 마주 잡기 위해 나도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이, 창백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새하얀 손이 보였다. 두 손이 서로 닿자 그 차이는 극명해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후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집고 눈앞으로 당겨 보였다. 약간 붉은 빛이 감도는 갈색이었다. 눈의 높이 변화는 주변의 풍경 또한 뒤바꿨다. 확실히 굉장히 넓은 풀밭이지만 끝없이 넓은 것은 아니었다. 저 멀리 왼쪽 앞으로 구름에 잠겨 하얗게 물든 산이 보였다. 시계 방향으로 반 바퀴를 빙글 돌았다. 오른쪽 뒤를 보아도 산 같은 것은 없었다. 거기 있는 것은 수평선이었다. 한 바퀴를 마저 돌자 다시 나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새까만 눈동자에 비치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 검은 눈동자는 아닐 것이다.

자, 조금 걸어요. 그가 말했다. 네. 나도 대답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눠요. 듣고 싶은 것이 많았다. 알려주고 싶은 일도 아주 많았다. 확실히, 그는 반도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그렇게 한 남자와 한 여자는 태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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