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카이스트 문학상 시 부문 가작

책을 엽니다.

 

페이지 사이 갑갑했다는 듯 투정부리는 향기가

손가락을 간질이고 콧잔등 근처에 내려 앉으면

나는 마치 개학날 아침처럼 두근거리게 됩니다.

 

작년과 같은 교복이지만 괜히 한 번 거울 앞에 서보고

학교를 향하는 발걸음 아래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그림자도

그날만큼은 춤을 추는 것 마냥 들떠 보입니다.

 

어떤 친구를 만나게 될지,

또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마시게 될지,

상상해보다가 혼자 피식 내뱉는 미소가

어쩌면 설렘의 빛깔이 가장 영롱해지는 순간이 아닐까요.

 

책을 열자마자 나를 간질이는 향기에 넋을 놓아도

정신을 다잡기까지의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향기를 알게 된 바로 그 찰나에 이미 나의 시간은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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