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 주에 우리학교 인권윤리센터, 학부 및 대학원 총학생회, 그리고 총학 학생·소수자 인권위원회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인권 주간 행사가 있었다. 인권이라는 것이 말로는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매일 우리가 맺는 사회 관계 안에서, 그리고 일상적인 경험 안에서 항상 작동하고 있음을 되새기게 해 주는 행사와 활동들이 많았다. 사실, 인권은 서로 존중되었을 때에는 굳이 언급될 필요가 없다가, 침해되었다고 느꼈을 때에 가서야 진지한 성찰의 대상이 된다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인권주간처럼 우리학교 구성원들이 미리 생각하고 성찰하는 계기를 가지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고, 변화하는 시대와 사회 안에서 이러한 기회를 매년 가지는 것도 꼭 필요하다.
최근 몇 년동안 한국 사회에서 “혐오”와 “비하”라는 낱말 두 개가 유행처럼 널리 사용되었고, 그 사용 빈도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사상의 자유를 표현의 자유와 동일시하고, 무지 때문에 선입견이나 편견을 과다하게 일반화하는 것에 대해서 유난히 관대했던 한국 사회가 이제는 그러한 무지의 폭력성을 실감하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긍정적인 변화이다. 사실 외국에서 법적으로 금지되는 증오언설(hate speech)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인종, 민족, 종교, 젠더, 성정체성, 나이, 장애 등을 근거로 폭력으로 위협하거나 폭력 및 증오를 선동하는 등의 요소가 갖춰져야 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혐오 또는 차별, 비하 발언의 경우, 법적으로 금지되는 수준은 아니지만 학교 내에서 같이 생활하는 구성원들과의 사회적 관계와 캠퍼스 분위기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문제를 가진다. 구글의 한 엔지니어가 모든 동료에게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는 성차별적인 메모를 보낸 것이 법적인 차원이 아니라 회사 차원의 문제가 된 이유가 바로 이러한 차이 때문이다.
지난 인권주간에는 포용성위원회 준비 과정에서 수렴한 의견들을 발표하는 간담회도 열렸다. 많은 구성원들이 참여하여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는데, 포용성위원회의 제도적 지위와 실질적인 역할을 염려하는 의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기존의 인권윤리센터와 옴부즈만 제도만으로는 교내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인권 침해가 발생했을 때, 창구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시각도 제시되었다. 그만큼 포용성위원회가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는 증거일테지만, 지금까지 피해자들이 겪어야 했던 무력감과 좌절도 어디에서 온 것인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2014년에 인권윤리센터가 설치되고 2015년부터 인권주간 행사를 가졌으니, 포용성위원회는 작은 시작의 끝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셈이다.
포용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 각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주류 집단이 주체로서 소수 집단을 이해하고 참고 받아들이는 관용과는 달리, 사회적 포용은 다름을 가진 주체들이 서로 인정하고 대면하여 환대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학교 구성원이 서로 존중하는 안전한 캠퍼스를 지향하는 포용성위원회, 그리고 학교 구성원들의 참여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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