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회 카이스트 문학상 - 소설 부문 :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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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회 카이스트 문학상 - 소설 부문 : 가작
  • 카이스트신문
  • 승인 2009.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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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묵

이 재 기
물리학과 학사07

 


 내 이름은 ‘김민철’. 너무나도 흔해 보이는 이름이다. 2007년 2월 KAIST에 입학했다. 입학할 당시 주변 친구들이 모두 말렸지만, 나는 끝까지 KAIST를 고집했다. 놀고, 먹는 대학생활이 싫었기에 기숙사에서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대전의 공대를 선택했다. 물론 다른 대학의 기회가 전혀 아쉽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주변 친구들의 해맑은 목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들려올 때에는 내 굳은 의지가 가을 낙엽마냥 팔랑팔랑 흔들렸다.
 누구나 대학생활의 로망은 가지고 있다. 열정적으로 밴드에 들어가서 음악을 해보고 싶고, 그 동안 공부에 밀려 뒷전으로 두었던 운동도 열심히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고등학생 때는 할 수 없었던 이 것 저 것들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을 결정하는 위치에 섰을 때, 나는 선뜻 이런 것들을 선택하지 못했다. 대학 생활의 화창한 생활보다는 졸업 후 미래가 더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좋은 성적을 가지고 여러 대학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과감히 KAIST를 선택했다.
 하지만 요즘 이런 나의 다짐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공부가 너무 어렵다. 나와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사람들이 수두룩하고, 자칫 잘못해서 실수 하나라도 했다가는 벌써 저 바닥에 깔려 있는 내 자신을 보게 된다. 이럴 때마다 화창한 나의 대학생활로 부터의 유혹이 끊이질 않는다. 당장 공부를 포기해서라도 내가 즐기고 싶은 것들을 즐기고 싶었다.
 2008년 가을. 중간고사 시험지를 돌려받았다. 수업이 끝난 후 조용히 방으로 들어와 중간고사 시험지를 있는 힘껏 구겨버렸다. 최악이다. 너무 못 봤다. 나름 열심히 공부했는데, 성적은 언제나 저조하다. 내 턱 밑까지 차 오른 수업료의 압박이 이제는 절실하게 느껴진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하고 싶은 것들을 실컷 즐겨서 핑계거리라도 만들면 지금보다는 덜 비참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돈에 관심이 많다. 탐욕이 많다고 해야 할까. 학자의 꿈 보다는 실리를 택하고 싶었다. 어릴 적 누구나 꿈꿔왔던 선생님, 경찰관의 꿈은 금전적 이유로 접은 지 오래다. 의사라는 꿈은 내게 정말 끌리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암울한 소식들에 이 꿈마저 과감히 접어버렸다. 그리고 이공계를 선택했다. 지금 금융계의 큰 별이 되기 위해 남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물리학과를 선택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길이지만 다른 전공보다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도 않는 과를 억지로 선택해서 그런지 너무 힘들기만 하다. 벌써 이번이 일곱 번째 좌절이다.
 어느 날, 점심을 먹기 위해 학부식당에 들렀다. 어김없이 나의 시간을 야금야금 뺏어가는 긴 줄이 나를 반겼다. 줄의 절반쯤이 사라졌을 즈음, 커다랗게 1면을 한 기사로 채우고 있는 신문을 발견했다. 나는 주저 없이 신문을 집어 들었다.
 ‘이천득 교수. 타임머신 발명!’
 커다란 헤드라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계속 읽어나갔다.
 KAIST 물리학과 이천득 교수는 타임머신 제작에 성공했다고 비공식 발표했다. 이 교수는 타임머신 연구가 비밀리에 진행되어 온 터라 교내 이외에는 일체 공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타임머신의 작동 성공률은 매우 희박. 하지만 분명히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천득 교수님은 얼마 전에 배정받은 내 지도교수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제 이번 학기가 다 가도록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구박하시는 전화까지 받았다. 내 입가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다음 날,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교수님을 찾아갔다. 비밀리에 연구하는 연구실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간단하게 비밀번호만 누르면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물론 낮에는 사람들의 출입이 편하게 항상 열려있다. 나는 가장 안쪽의 교수님 방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교수님의 지도학생이 된 김민철이라고 합니다. 어제 전화 주셔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연구만 하고 지내신 교수님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내 지도교수님은 밝은 모습의 얼굴이셨다. 비밀리에 진행한 연구가 성공하셔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자네가 김민철 학생이군. 잘 왔네....’
 한 20분 정도 흘렀을까. 교수님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연구실 문을 나섰다. 교수님은 내가 믿음직스러우셨는지 벌써부터 개별연구, 졸업연구를 챙겨주셨다. 연구실에는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도록 비밀번호까지 알려주셨다. 나에겐 호재다.

 나는 교수님을 뵌 저녁부터 교수님 연구실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분명 내가 들어간 연구실에는 타임머신이라고 보일만한 물건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새벽에 숙제를 제출하러 갈 일이 생기면 자연과학동 창문을 보며 어디 불 켜진 곳이 없나 살펴보았다.
 이로부터 일주일 후, 이상하게 자연과학동의 딱 한 군데만 불이 안 들어오는 곳을 발견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곳은 항상 커튼이 쳐져 있어서 얼핏 보면 사용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위치도 딱 지도교수님 연구실의 바로 밑이다. 바로 눈치를 챘다. 타임머신은 교수님 연구실 바로 밑에 숨겨져 있던 것이다. 물론 출입문도 연구실 안에서 몰래 들어갈 수 있도록 감춰져 있으리라.
 깊은 새벽 나는 굳을 결심을 하고, 교수님 연구실을 향했다. 학생증을 사용해서 건물에 들어가면 분명 기록이 남는다. 나는 추운 바깥에 서서 연구를 마치고 늦게 돌아가는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5분 정도 후, 우연히 한 사람이 나가면서 문을 열어 주었다. 필시 마지막 사람이었으리라. 나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 교수님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좁다란 방이라 별로 숨길 곳도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을 모두 조금씩 뽑아보기도 하고, 벽을 만지면서 스위치를 찾기도 했다. 한참을 찾아도 입구는 보일 생각을 않는다. 교수님 의자에 앉아서 골똘히 생각하다 타임머신이 연구실 아래층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바닥을 훑기 시작했다. 역시 단순했다. 얼마 훑지 않아서 출입문으로 보이는 네모난 홈을 발견했다. 별다른 잠금장치도 없다. 마룻바닥을 살며시 들어 올리니 아래로 내려가는 사다리가 보인다. 교수님도 얼마나 귀찮으셨을까. 잠금장치 따위는 하나도 없다. 나는 잔뜩 들뜬 마음으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바로 앞에는 커다란 철문이 버티고 서 있었다.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삼엄한 안전장치로 보호 받고 있을 것만 같았다. 더 이상 못 들어갈 것 같은 허탈함도 잠시. 철문의 정 중앙에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자물쇠다. 커다란 철문을 아주 조그마한 자물쇠가 지키고 있었다. 그것도 비밀번호로 열 수 있는 자물쇠로. 나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연구 예산이 부족했는지 잠금장치 하나는 끝내주게 부실했다. 비밀번호도 한 번에 맞췄다. 교수님 생일인 11월 21일로 번호를 맞추니 한 번에 열린다. 기분이 날아갈 것 만 같다.
 좁은 방에 여러 기계의 LED가 깜박거리고 있었다. 분명 지금도 가동이 가능한 상태인 것 같다. 핸드폰을 꺼내보았다. 이상하게 전파가 하나도 잡히질 않는다. 벽을 만져보니 방음시설에 전파까지 차단한 그야말로 밀실의 세계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제 급해졌다. 바로 앞에 타임머신을 두고 누군가에게 들키면 지금까지의 일이 말짱 도루묵이 된다. 조급한 마음에 허겁지겁 타임머신의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가 앉았다. 안에도 알 수 없는 스위치들이 많이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눌러본다. 가장 커다란 스위치를 누르니 갑자기 엄청난 기계음이 들려온다. 귀가 찢어질 것 같다. 하지만 밖에서는 엄청난 방음시설 때문에 전혀 들을 수 없을 것 같다. 모든 마음을 가라앉히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정신이 몽롱해진다. 그대로 타임머신에 몸을 맡겼다.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려보니 우체국 앞에 서 있다. 바닥에는 언제 칠했는지 모르는 색색의 페인트들이 지워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히 우체국 앞이다. 앞에는 빨간 우체통도 있다. 그리고 태울관도 앞에 보인다. 길가에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걸어간다. 수업이 끝나서 방으로 돌아가는 행렬이다. 중간 중간에는 길가에 서서 동아리를 홍보하는 사람들이 있다. 열심히 동아리 홍보용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나도 무심결에 지나가다 하나를 받아든다. 아직 나도 신입생으로 보이나보다. 전단지를 유심히 살펴본다. 밴드 동아리의 전단지이다. 한참을 읽다 서서 환호성을 질렀다. 전단지에는 ‘2007년 신입생 모집’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시간을 거슬러 온 것이다. 그것도 신입생 때로 말이다. 두 번째 신입생 생활을 맞이하게 되었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 길로 달려가서 동아리에 등록했다. 과거의 비참함은 까마득하게 잊은 채 동아리에 전념하기로 마음먹는다. 수업시간은 가볍다. 이미 기말고사까지 친 과목들이다. 아직 기말고사 문제들이 머릿속에 조금씩 남아있다. 이것만 정리해가도 공부는 문제없으리라. 날마다 동아리에 미쳐 산다. 내 열정을 맘껏 발휘하기로 마음먹는다.
 이상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음악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노래를 불렀다 하면 엉망. 음악시간만 되면 항상 고생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무작정 지원한 보컬에 합격해버렸다. 내가 직접 듣는 내 노래는 몸을 통해 울림이 직접 전달되기 때문에 언제나 잘 부르는 것 같다. 그래서 내 노래가 어땠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선배들은 아무 거부감 없이 나를 뽑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붙었으니 약간은 찝찝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날마다 열창을 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 덧 중간고사가 지나갔다. 시험 점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나는 동아리가 더 중요했다. 원래의 현실을 망각하기 위해 좀 더 빠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쉽게 해서 후회하느니 아예 핑계거리를 만들어 버리자.’ 이상한 논리와 함께 열정을 쏟아 붓는다. 나보다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없다. 나의 실력은 나날이 발전해간다. 내가 몸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니 다른 사람은 어떨까. 너무 뿌듯하다. 과거의 내가 지낸 대학생활과는 전혀 반대였다.
 첫 공연 날. 나는 수많은 사람 앞에서 환호성과 함께 열창을 했다. 호응도 좋다. 내게 주어진 1시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교내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내 주변 친구들이 해준 말이지만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첫 학기가 끝이 났다. 방학이 되자 열심히 공연을 준비했던 친구들은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홀로 남아서 연습을 할 수는 없었다. 반주도 없이 혼자 노래를 부르면 뭐하나. 흥이 나질 않는다. 금방 질려 버린다. 방학에도 집에 가지 않고 기숙사에 남아서 혼자 뒹굴 거리고 있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다. 아침이면 세면대에는 씻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다들 계절 학기를 듣는 것 같다. 잠도 이젠 질렸다. 허리가 아파서 아침 일찍 밖을 나섰다. 운동장에는 아침 일찍부터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갑자기 내 눈이 커졌다. 그 동안 노래만 불러댄다고 운동을 게을리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한 번 자면 못 일어나지. 대학생활의 반전을 꾀하기 위해 새벽같이 달려 나가서 공을 차기 시작했다. 반갑게도 아침부터 공을 차는 무리 중에는 동문 친구들이 많았다. 다들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으리라. 나는 천군 만군을 얻은 것 마냥 기분이 좋았다. 다들 지쳐서 방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남아서 연습한다. 혼자 남게 되면 달리기라도 한다. 운동이 즐겁다. 나날이 늘어가는 체력이 이제는 자랑거리가 되었다.
 방학이 끝날 즈음, 동문 녀석들이 나에게 축구대회에 나가지 않겠느냐고 권유를 한다. 팀에는 방학에 같이 공을 차던 친구 녀석들을 제외하면 몇 명 없었다. 사람 수가 부족한 터라 아무런 조건 없이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한 명이라도 못 나오게 되면 팀을 만들기가 힘들 정도로 참여가 저조했다. 덕분에 나는 그 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방학 때 연습한 것이 실력으로 드러나서 인가.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운동과는 담을 쌓던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아직도 생각난다. 초등학교 4학년 체육시간에 남들 다 하는 철봉을 혼자 하지 못해서 선생님께 엄청 꾸중 받은 일이 있다. 혼자 남아 열심히 연습했지만 결국 하나도 하지 못하고 체육시간이 끝나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한 만큼 실력이 나온다. 이상하리만큼 내 실력이 좋아진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녀석인가 보다.
 그렇게 학기가 시작했고, 교내 대회에 참가했다. 수업시간도 없다. 다들 수업시간과 겹쳐서 걱정하고 있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언제나 축구가 먼저다. 가장 먼저 운동장을 예약하고,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연습한다. 대회에도 당연히 내가 돋보인다. 경기마다 골은 기본으로 넣고, 패스면 패스 수비면 수비. 못하는 것이 없었다. 선배들로 구성된 팀을 만나도 주눅 들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경기 날이 되면 컨디션이 좋았다. 당연 우리 팀은 결승까지 올라갔고, 결승전에서도 내가 골을 넣어서 우승을 차지했다. 경기 MVP는 물론 대회 MVP, 득점왕까지 상이란 상은 싹 휩쓸었다. 공부에 얽매이던 과거는 싹 잊었다.
 대회가 끝난 후, 다른 팀에서 같이 외부대회에 나가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우리 팀은 교내 경기용으로 뭉친 팀이었다. 다들 대회가 끝나니 운동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다른 팀으로 옮겨 평소와 다르지 않는 생활을 했다.
 그렇게 두 번째 학기가 끝이 났다. 시험과 수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한 학기를 운동, 그것도 축구로만 날려버렸다. 하지만 날려버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냥 흘러가버린 것 같다.

겨울 방학은 유난히 짧다. 무얼 하기에는 너무나도 짧았다. 그리고 추워서 밖에도 나가기가 싫다. 다들 방에서만 움츠리고 있다 보니 운동장은 고요하다. 나도 덩달아 방에서 따뜻한 이불을 뒤집어쓰고 살고 있다. 갑자기 전화가 온다. 핸드폰 액정에 ‘박상우’라는 세 글자가 찍힌다. 중학교 친구 녀석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받았다. 친구 녀석 목소리가 좋아 보인다. 생각해보니 이 녀석은 재수를 해서 이제야 지긋지긋한 입시가 끝났으리라.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공부와는 담을 쌓던 녀석인데 어떻게 공부를 일 년 더 할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는 다른 학교로 갈라져서 도무지 연락이 되질 않았는데, 작년에야 연락이 되었다. 옛 우정이 떠올라 나도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나 대학 붙었다. 벌써 서울에 방까지 잡아 놨다. 방학인데 우리 방에 함 놀러 와라. 내가 좋은 구경 시켜줄게. 너 대전에 처 박혀 사느라 많이 찌들었을텐데 나랑 신나게 놀자.’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방 안에서는 이불을 뒤집어쓰는 일 말고는 할 일이 없는 나에게는 구원의 목소리 같이 들렸다. 나는 그 길로 짐을 싸서 서울로 상경했다. 역시 공기부터 다르다. 매연의 메케함이 느껴지긴 했지만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숨을 쉬니 몸이 부르르 떨렸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짜릿함인가.
 점심쯤에야 친구 녀석을 만났다. 같이 점심을 먹고, 이 곳 저 곳을 둘러보았다. 지하철이 서울 전역을 연결해줘서 어디든 교통카드 하나만 있으면 손쉽게 갈 수 있었다. 동대문 시장에 가서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옷도 사보고, 외국인들이 많이 간다는 인사동 거리에 가서 기념품들도 구경했다. 신나게 놀다가 문뜩 생각이 났다. 이 녀석 방이 어디 있는 지 알 수가 없었다. 나에게 서울에 방 잡아 놓았다는 이야기만 했지. 그 외의 정보가 하나도 없다.
 해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친구 따라 지하철을 탔다. 초록색 2호선이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신촌역에서 내린다. 그리고 뚜벅뚜벅 걸어서 방에 도착했다. 역에서 한 10분은 걸어온 것 같다. 그래도 10분이면 가까운 거리이다. 기숙사에서 수업 받으러 창의관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10분이니 거저먹는 시간이다. 방에 들어 온 친구 녀석은 옷을 갈아입는다. 낮 동안 입고 다닌 옷을 벗어 던지고 변신을 시작한다. 거의 변태 과정을 보는 듯하다. 이 녀석이 몰라보게 변신하더니 나더러도 옷을 챙겨 입으라고 한다. 놀러온 턱에 옷이 있을 리가 있나. 낮에 산 옷 들을 주섬주섬 입고 따라 나선다.
 친구 따라 간 곳은 술집. 그냥 술집이라고 말하기엔 무언가 부족하다. 클럽이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전부 이곳에 모여 있는 것 같다. 당황스럽다. 시끄러운 음악 때문에 집중이 되질 않는다. 앞에 있는 상우녀석은 벌써 적응해버린 것 같다. 대학 붙은 지가 언제라고 이렇게 빨리 적응을 하는가. 대전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주변 사람들 얼굴을 보니 다들 우리 또래였다. 참 대단하다. 서울과 대전의 차이라니. 갑자기 후회가 든다.
 그렇게 새벽을 보내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내가 어색해해서 그런지 금방 돌아 온 분위기이다. 나도 나쁘지는 않았다. 단지 엄청난 사람 수에 적응을 못했을 뿐. 그 중에 가장 눈에 들어왔던 건 남녀 비율이었다. 대전에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1:1이라는 비율은 볼 수가 없었다. 세상에 여자가 반이라지만 다들 숨은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는 달랐다. 생각하니 갑자기 몸이 달아오른다.
 한 달 남짓한 방학을 서울에서 보내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왔다. 이미 내 몸은 서울의 문화에 적응이 되었다. 왠지 모를 우월감에 휩싸여 있다. 100km도 넘게 떨어져 있는 대전에서 날마다 서울을 그리워했다. 마치 60년대 사람들이 지방에서 서울을 그리워하는 것 마냥. 무조건적으로 서울에 대한 동경심이 들었다. 때문에 주말이면 기차를 타고 서울로 상경했다. 친구 녀석도 나를 달갑게 받아주었다. 미친 듯이 놀았다. 대학생이 아무 생각 없이 놀 수 있는 곳으로는 최고였다. 한계를 모를 정도로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움직였다.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다들 웃고, 행복해 보였다. 너무나도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
 또 한학기가 그렇게 흘러갔다. 이제 과거에 먼저 공부해 온 효과가 서서히 떨어져 가고 있었다. 아니 원래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으니 지금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단지 한 번 공부한 내용은 다시 보기 싫어져서 다 아는 것 마냥 넘기는 것이다. 지금까지 성적표를 내 눈으로 확인한 적이 없었다. 그 만큼 관심이 없었다. 무엇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세 학기가 빨리 지나갔다. 마치 눈앞에 펼쳐진 파노라마 같았다. 하지만 짧게 느껴졌던 세 학기 동안에 대학생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즐겨본 것 같았다.

 허탈하다. 성적표가 과거와 전혀 다르지 않아서 허탈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놀았는데 더 떨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세 학기 동안 무엇을 했나 놀아보면 본능적으로 즐거움을 찾아 움직였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 다시 공부할 생각을 하니 처참하다.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갑자기 지금의 내가 싫어진다. 차라리 과거의 나는 후회는 하지만 좀 더 학생다운 모습을 간직했던 것 같다.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온 자신이 싫어진다. 그 때 조금만 참았더라도 이렇게 허탈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갑자기 답답하다. 몸이 찌뿌둥하다. 분명 깨어있는데도 한참 자고 일어난 사람마냥 기지개를 펴고 싶다. 갑자기 저절로 한 쪽 발이 올라간다. 허공에 대고 발길질을 했는데, 커다랗게 ‘쿵’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눈을 깜박인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된다. 갑자기 배경이 바뀐다. 허탈함이 가득했던 푸른 하늘은 사라지고 형광등의 하얀 불빛이 내 눈 속으로 들어온다. 눈이 부시다. 내 앞에는 나무 무늬로 위장한 책상이 놓여 있다. 내 엉덩이는 약간 푹신한 쿠션이 달린 의자에 맡겨져 있다. 입가에 묻은 침을 훔쳐내고 일어난다. 왠지 모르게 사람들이 날 처다 보니 쑥스럽다. 너무 창피해서 허탈함은 잠시 잊는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나는 교양분관 2층에 있다. 휴게실로 들어가 자판기 앞에 서서 400원짜리 커피를 뽑는다. 갑자기 뭔지 모르는 의욕이 솟아오른다. 긴 꿈속의 허탈함을 날려버리기 위해 펜을 잡는다.
 다음 날, 점심을 먹기 위해 학부식당에 들렀다. 역시 긴 줄이 나를 반긴다. 한참을 서서 기다리다가 옆에 놓여있는 신문을 발견한다. 무의식적으로 집어 든다. 신문기사 1면에는 이천득 교수님의 타임머신 발명기사가 적혀있다.
 ‘KAIST 물리학과 이천득 교수. 타임머신 발명’
 이천득 교수는 비밀리에 타임머신을 개발, 작동하는데 성공하였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 교수가 발명한 타임머신은 일회용으로 한 번 사용하면 다시 작동할 수 없었다. 비밀리에 연구를 진행하여서 이런 중대한 사실은 발표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
 최근 타임머신 발명에 잔뜩 들떠 있던 이 교수가 이제는 타임머신을 작동할 수 없다는 말을 꺼내 기대에 잔뜩 부푼 교내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나는 섬뜩한 느낌을 받은 채 신문을 그 자리에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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