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한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옛날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너무 심심했던 나머지 무심코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그 날 새벽까지 잠에 들지 못했다.
추천 영화를 뒤지다 우연히 발견했던 영화였지만, 그 여운은 심심한 동기와는 대비될 정도로 깊었다. 영화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군 병사들에 주목했다.
아프리카 북부,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승리한 주인공들은 잠깐의 달콤한 휴가를 보낸 뒤 동부전선의 스탈린 그라드로 향한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 주인공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기차를 타고 전장으로 향했지만, 동부전선은 지금까지의 전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스탈린 그라드에서는 독일군이 지금까지 겪었던 그 어떤 전투보다 치열한 시가전이 펼쳐졌다. 주인공들은 소련의 추운 겨울 속에서 목숨만을 겨우 부지했다.
영화가 전개될수록 주인공들은 전쟁의 피해자가 되어갔다. 독일군들은 악마가 아니었다. 그들도 고통을 느꼈고, 저마다의 가정이 있었다. 결국, 그들도 나치의 피해자였다.
주인공들은 결국 전투 의지를 잃는다.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자살하거나 얼어 죽거나. 결국, 영화는 스탈린 그라드에서의 참상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전쟁은 소시민들의 삶을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
전쟁터에는 승전국은 있어도 승자는 없었다. 전쟁은 언젠가 끝났지만, 이는 수많은 사람의 피로 얼룩진, 너무 아픈 평화에 불과했다. 조국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이들을 기다린 건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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