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 때부터 함께한 무민이
스웨덴계 핀란드 작가 토베 얀손이 무민이를 탄생시켰다. 여러 좋은 디자인의 연원이 추억과 경험인 것처럼, 토베 얀손이 무민이를 디자인한 것은, 유년기 추억의 공이 크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 당시 그녀는 자기의 남자 형제 중 하나와 임마누엘 칸트에 대한 철학적 논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논쟁에서 진 토베 얀손은 화가 나서 벽에 그녀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못생긴 생물체를 그리고, 밑에 ‘칸트’라 이름을 썼다고 한다. 이렇게 무민이라는 캐릭터가 태어나게 됐다.
천진난만하게만 생긴 무민이가 세상에 처음으로 나타났을 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못생긴 생물체’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은 뒤로하고, 한글로 ‘무민’이라는 울림소리로만 이루어진 귀여운 이름은 어떻게 지어지게 된 것일까? 토베 얀손이 스톡홀름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친척들과 같이 살고 있었을 때, 그녀의 삼촌은 그녀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곤 했다. 그녀가 냉장고에서 몰래 음식을 먹는 것을 놀리려고, 그녀의 삼촌은 부엌 서랍에 ‘무민트롤’이라는 괴물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지어냈다. 이 괴물이 바로 무민이라는 둥글둥글한 이름을 탄생시킨 것이다. 무민이는 토베 얀손의 삶의 궤적에서 직접적으로 나온 캐릭터이다.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이다
토베 얀손의 삶을 잘 따라가 보면 어두운 단면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녀는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1930년부터 8년간 스웨덴 스톡홀름, 핀란드 헬싱키, 프랑스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그리고 1943년에 개인 미술전을 열고, 책 커버를 그리는 등의 부업을 했지만, 그녀의 가장 명징한 첫 작업물은 그녀의 엄마를 따라, <Garm>이라는 잡지에 일러스트를 기고한 것이다. <Garm>은 뚜렷한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있는 잡지였는데, 바로 핀란드-스웨덴계 반(反)파시즘 성향의 정치 풍자 잡지였다.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의 유럽은 곧 전운의 망령을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쑥대밭이었다. 토베 얀손의 삶은 제2차 세계 대전의 한가운데를 관통했고, 그녀의 작업물 또한 이러한 상황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토베 얀손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정치적 소용돌이와 그리 멀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녀가 잠시 약혼했던 아토스 비르타넨은 핀란드 사회민주당의 당원이었으며, 사회주의 통일당의 열렬한 활동가였다. 그녀의 가족 또한, 그녀의 어머니가 <Garm>에 기고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전체적으로 좌익의 성향을 띠고 있었다고 여길 수 있다. 토베 얀손 본인 또한 <Garm>에서 히틀러를 요람에서 시끄럽게 울고 있는 아기로 묘사하는 등, 정치적인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내곤 했었다.

드디어 세상에 태어난 무민이
이미 토베 얀손의 유년시절에 원형이 나온 무민이가 드디어 뚜렷한 작업물로 세상에 나온 것은 1945년이다. 바로 최초의 무민소설, <The Moomins and the Great Flood>가 1945년에 스웨덴어 초간본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난 것이다. 소설의 내용은 지금의 무민에 대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종말론적인 분위기가 지배한다. 이 소설부터 1957년에 나온 <Moominland Midwinter>이라는 소설까지를 그녀의 무민 소설 1막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까지의 플롯은 보통 여행 중 산재한 위협들을 무민 가족이 헤쳐나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The Moomins and the Great Flood>는 홍수로 무민하우스를 잃어, 무민트롤과 무민마마가 어둡고 무서운 숲속을 헤쳐나간다는 내용이며, <Comet in Moominland>는 핵폭탄이 원관념인 듯한 혜성이 무민밸리를 파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도 이런 환경 속에서도 이야기는 끝끝내 행복으로 마무리되며, 낙관적인 메시지를 남기는 것 또한 무민 소설 제1막의 공통점이다.

무민이, 철학적 고찰을 전하다
환경적인 고난을 특유의 유머와 재치로 극복하는 이런 소설의 경향은 1957년 <Moominland Midwinter>를 기점으로 바뀐다. 이후의 소설은 보다 철학적이고 인간 본연에 관한 나름의 고찰을 담고 있으며, 가벼운 기조였던 전의 소설들과는 큰 차이를 둔다. 예로, 1965년에 출간한 <Moominpappa at Sea>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무민파파는 무민밸리에서의 삶에 권태를 느끼고, 바다의 등대에서 살고자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결국 등대에 도착하지만, 바다는 아주 외롭고 황량한 곳임을 깨닫는다. 무민가족은 외로움에 힘들어하고, 무민마마는 향수병을 이기려 등대 벽에 꽃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 섬에선 꽃이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 속엔,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정서가 만연하다. 나머지 소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토베 얀손은 무민가족이라는 귀여운 캐릭터를 통해, 인간의 고뇌와 보편적인 정서에 집중했다.

유명 스타로 거듭난 핀란드의 트롤
무민 소설은 상당히 큰 인기를 끌었고, 영어로 번역돼 재출간되기도 했으나, 무민 붐이라 일컬을 만한 문화적 반향을 일으킨 것은 역시 영상물 덕분이었다. 1990년대에 토베 얀손의 남동생, 라스 얀손이 만든 104편의 장편 애니메이션 <Tales from Moominvalley>이 일본에 방영되었다. 이미 무민소설은 핀란드, 스웨덴, 라트비아 등에서 베스트셀러이긴 했지만, 이 애니메이션을 계기로 무민이는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게 된다. 특히, 일본에서의 인기가 선풍적이었다. 무민이는 일본에서 가장 큰 슈퍼마켓 체인 중 하나인 ‘Daiei’의 공식 마스코트가 되기에 이른다. 핀란드는 국가홍보에 있어서 무민이의 덕을 톡톡히 봤고, 결국 자국에 무민 월드 테마파크를 열기도 하였다.
이러한 무민 붐을 우려하는 의견 또한 있었다. 애당초 무민이는 철학적이고 반전(反戰)이라는 정치적 함의를 가진 캐릭터였기에, 초국적 유아 산업에 이용된다면 분명히 원래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디즈니랜드와 비슷한 상업적인 느낌의 무민 월드 테마파크에 반하여, 무민 박물관이 생겼다. 여기서는 토베 얀손의 오리지널 일러스트나, 그녀가 직접 만든 무민이 조형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토베 얀손 본인도 상당히 이러한 상업적 이용을 싫어해서, 월트 디즈니가 “Moomin”이라는 단어의 배타적 사용을 요구했으나, 단칼에 거절했다고 알려진다.

무민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명한 캐릭터와 궤를 달리한다. 일단, 미국이 아닌 핀란드라는 조그마한 북유럽 국가에서 태어났고, 디즈니의 캐릭터는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군을 응원하고, 전쟁의 정당성을 선전하려는 용도로 종종 쓰였다면, 무민이는 전쟁에 의해 고갈된 것들을 주제로 한다. 하지만 이러한 메이저 캐릭터들과 동등한 위상으로, 무민이는 널리 알려진 범국가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정말 애착이 가지 않을 수가 없는 캐릭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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