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수업', '미움받을 용기' 등 서점 베스트셀러 칸에는 항상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들이 빽빽하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 현대인들에게 아직 '긍정'은 친숙하면서도 먼 단어임이 분명하다. 긍정심리학은 행복한 삶이라는 추상적인 인간의 바람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이다. 오늘날 긍정심리학이 심리학에서 자리하고 있는 위치와 어떻게 우리의 긍정적인 삶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권위자의 비도덕적 명령에도 복종해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그의 저서 <권위에 대한 복종>에 실린 한 실험으로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실험 참가자들은 학습자와 교육자로 나뉘게 되는데, 학습자들은 의자에 포박된 상태에서 특정 단어를 외우지 못하면 교육자가 가하는 전기충격을 받게 된다. 이때, 사실 학습자들은 전기충격을 받지 않아도 비명을 지르도록 사전에 약속이 되어있는 실험 관계자들이다. 단어를 외우지 못하는 빈도가 높아질수록, 교육자들이 가해야 하는 전기 충격 강도도 함께 높아지게 된다. 실험 전 실시한 인터뷰에 의하면, 교육자 역할을 배정받은 진짜 참가자들은 강도가 높아지면 윤리적인 이유로 실험을 중단할 것이라고 자신의 행동을 예견했다.
하지만, 실험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대부분의 교육자는 가장 높은 단위의 전압에 도달할 때까지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교육자가 방 안에서 소리 지르며 몸부림쳐도 바로 옆에서 실험복을 입은 전문가의 명령을 그대로 따랐다. 개인에게 당연한 도덕의 선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며, 복종에 대한 인간의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스탠리 밀그램은 예일대에서 진행한 이 실험으로 인해 정신분석학회에서 장기간 자격이 정지되기도 하였다.

내면의 불행을 연구했던 기존 사조
이처럼, 기존의 심리학은 사람 본성의 어두운 면모를 집중적으로 비춰왔다. 그 중심에는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역할이 컸다. 그는 타인에 대한 친절은 철저하게 자신이 좋은 사람으로 비쳤으면 하는 이기적 동기(self-serving drive)로부터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로 평가받는 것만 보아도, 당시 심리학의 흐름이 어땠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긍정심리학, 심리학의 편견을 버리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부정적인 본성에만 집중하는 편향된 심리학을 향해 비판적인 시각이 생겨나는 건 당연하다. 이전에도 긍정적인 삶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자체는 높았지만, 이를 실험적으로 검증하는 심리학 차원의 긍정이 다뤄지지 않았을 뿐이다.
긍정심리학이 등장한 시기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학자들은 여러 가설을 제기한다. 흥미롭게도 인간의 본성 자체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취약하다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진화 과정에서 생존에 위협이 되는 요소들을 주로 기억하다 보니, 사고방식 자체가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에 집중하도록 유도되었다는 주장이다. 한편 행복이 이 시대의 시대정신으로 새롭게 등장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많다. 마틴 셀리그만은 풍요의 패러독스를 언급하며, 인간은 40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부유해졌지만 그 반대로 10배 이상 우울한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야 감정의 풍요를 찾으려는 노력이 시작되었고, 긍정심리학은 그 노력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되었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왜 행복을 연구하지 않는가?
긍정심리학은 뚜렷한 계기에서 시작되었다. 긍정심리학은 1998년 마틴 셀리그만이 APA(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에서 “우리는 왜 용기, 기쁨, 희망, 행복 대신 불안, 위험, 중독, 병리, 동조, 편견에 대해서만 연구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시작되었다. 그 전까지 긍정에 대한 연구는 이론은 있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없는 철학적 사조에 불과했다. 셀리그만의 연설을 기점으로 건강 심리, 임상 심리, 발달 심리 등 심리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 긍정이라는 요소가 추가로 고려되기 시작한다. 건강 심리의 경우, 기존에는 병리를 밝히고 그에 대한 처방을 내리는 것이 그 목적이었으나, 긍정심리학은 단순히 건강한 삶 그 이상의 긍정적 건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긍정적인 삶의 자세가 장수에 도움돼
행복한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긍정심리학과 관련된 연구들도 늘어났다. 대표적인 예로, 데이비드 스노든 교수 연구팀은 수녀들을 대상으로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장수에 미치는 영향을 무려 70년간 연구했다. 그는 같은 환경 속, 같은 생활 방식을 갖고 살아가는 22살 수녀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수녀라는 집단은 다른 대상보다 통제 변인이 적어 오랜 기간 연구하기 매우 적합했다. 연구팀은 수녀들에게 종교 서약의 한 부분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자전적 글을 한 부씩 제출하도록 부탁한 뒤, 글 속의 긍정적, 부정적, 중성적 내용의 단어와 문장의 빈도를 조사했다. 극단적인 예시를 제시하자면, “하느님의 은혜에 힘입어 나는 성직자로서의 직분과 선교, 그리고 나의 개인적 정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라는 딱딱한 문장을 적은 수녀가 있었던 반면, “충만한 기쁨으로 수녀복을 입을 수 있기를, 그리고 하느님 사랑 속에서 하나가 되어 사는 삶을 고대한다”라고 적은 수녀도 있었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22살 당시 긍정적 표현의 빈도가 높았던 수녀와 아닌 수녀는 무려 평균 10.7세의 수명 차이를 보였고, 가장 긍정적이었던 수녀 집단과 가장 부정적이었던 수녀 집단은 그보다 높은 12년의 수명 차이를 보였다. 긍정적인 표현이 1%씩 늘어날 때마다, 사망률은 1.4%씩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 수녀 연구는 ‘사람이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정도는 변하지 않는다’, ‘감정과 건강은 관련이 있다’ 등 신뢰할 수 있는 선행 연구들이 있었기에 구상 자체가 가능한 연구였다.

정확한 예측이 어려운 미래의 행복
또 다른 예로, 다니엘 길버트 교수 연구팀은 정서 예측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실험 대상으로 선정된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질문이 던져졌다. 예를 들어, 연구팀은 버스 예약을 불가피하게 3시간 전에 취소할 때와 눈앞에서 놓칠 때, 어느 순간에 더 불행할 것 같은지 참가자들에게 질문했다. 연구에 참여한 사람 중 상당한 비율이 후자가 더 불행할 것 같다고 예측했지만, 실제로 그 상황에 처했을 때 그들이 느낀 불만족 척도는 비슷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외에도 다양한 상황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답변을 분석함으로써 연구팀은 미래의 정서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높은 확률로 불가능하다고 단정 지었다.

타인의 행복은 쉽게 단정지을 수 없어
정서 예측과 관련해서 미국 캘리포니아 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도 흥미롭다. 연구팀은 날씨가 좋은 캘리포니아 주민들과 날씨가 좋지 않은 중서부 지역 주민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각 지역 주민들에게 상대 지역 주민이 자신들의 행복을 어떻게 예측할지 묻자,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자신의 행복이 과대평가되었을 것으로 예측했던 반면 중서부 지역 주민들은 자신의 행복이 과소평가되었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두 집단의 삶에 대한 실제 만족도는 비슷했다. 행복에 대한 우리의 예측은 그것이 자신의 행복에 관한 것이든, 타인의 행복에 관한 것이든 잘못된 예측일 가능성이 높음을 이 두 연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명확해진 현실적 목표 설정의 중요성
해리 할로우 교수 연구팀은 목표를 갖는 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600명의 노인을 대상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건강, 재산, 자식의 유무, 직업 등 다른 조건들을 제외한 채, 오직 삶의 목표에 집중했다. 그 결과, 행복의 척도와 목표의 명확성은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목표의 실현 가능성 또한 중요했다. 이루어지지 못할 목표를 가진 사람들은 단순히 덜 행복한 정도가 아니라, 평균보다 정확히 3 표준편차 낮은 행복도를 보였다.

이처럼 긍정심리학은 '행복하면 장수한다'처럼 보편적으로 우리가 믿어왔던 행복의 가치를 증명해주기도, 우리가 얼마나 행복을 예측하지 못하는 존재인지 지적하기도, '목표를 가져라'처럼 뻔한 조언을 하기도 한다. 감정이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으며, 시시각각 변하는 어려운 주제이다. 최근 100년 들어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한 긍정심리학이 감정, 그중에서도 행복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파헤칠지 앞으로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여기서 어쩌면 우리는 행복한 삶에 대한 정해진 답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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