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는 매개이다. 색의 조합, 빛의 변화, 인물의 표정과 같은 시각 정보는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찰리 채플린이 만든 흑백 영화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며, 노을로 붉게 물든 하늘을 보며 가슴 한쪽이 뭉클해진다. 때때로는 이렇게 움직이는 장면이 아니라, 그림과 사진 속에서 가만히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정적인 것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캔버스 위에 그려진 색과 선이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아름다움의 의미를 찾을 기회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림의 저편에 있는 화가의 시선을 상상하게 된다. 과연 그들이 보고 그린 것은 어떤 형태였을까? 이 상상은 “보그를 루브르로 만들어봅시다”라는 목적 아래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 전에서 재현되었다. 최고의 사진가들이 건축한 루브르를 거닐며. 패션 사진으로 재탄생한 명화를 감상해보자.

카메라 렌즈 아래 들춰진 인간의 내면
첫 번째 구획에는 초상화를 원작으로 한 많은 사진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은 현실을 그대로 표상한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사진을 통해 내면의 감정을 발견하기도 한다. 피터 린드버그의 작품 <밀라 그로스 슈몰>에서 모델은 정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초록색 조명 아래 짙은 화장을 하고 앉아 있는 모델의 모습은 어찌 보면 무기력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슬픈 눈빛, 금방이라도 말이 나올 것 같은 입술을 보고 있으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다. 린드버그는 평생을 바쳐 자연스러운 사진 속에서 의미를 찾았다. 작품 <네일리, 뉴욕> 속의 모델의 얼굴은 화사하게 빛나는 한편, 그의 옷과 배경은 짙은 밤과 같은 색이다. 렘브란트가 명암의 대조를 통해 인물의 표현을 극대화하였듯이, 이 작품에서는 빛에 의해 모델의 주근깨가 강조되고 강하게 뜬 눈이 더 힘을 얻어, 피사체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표정 뒤의 가려진 감정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깊은 울림이 공명한다.

새로운 표현 양식을 통해 예술이 되다

패션 잡지의 꽃은 모델이 의도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잡지에는 인물 사진 외에도 라이프스타일 미용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보그의 포토그래퍼들은 정물화의 치밀한 구성을 빌려와 사진을 촬영했다. 어빙 펜의 작품 <Still Life with Watermelon>를 보면, 수박, 포도 등 과일류, 얇은 천, 파리, 먹다 남은 빵을 볼 수 있다. A4 크기를 조금 웃도는 사진 속에 펜은 동식물, 공산품, 식품을 적절히 배치해 생명과 부식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이 그림을 멀리에서 보고 있으면, 마치 사람이 웃고 있는 것 같다. 어빙 펜은 사진으로만 담아낼 수 있는 장면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작업 아래 극적인 순간은 프레임 안에 옮겨졌다.
자리를 옮기면 닉 나이트의 작품 <무제>을 만날 수 있다.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인화된 꽃은 생기가 넘쳐 사진 밖으로 나올 것만 같다. 그는 의도적으로 인화 과정에서 열, 화학 작용을 통해 꽃이 흘러내리도록 했다. 닉 나이트는 이미지에 움직임을 더해 생동감을 더하고 우리가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한편, 미의 허물어짐과 덧없음을 동시에 표현하고자 했다. 앞선 두 그림에는 아이러니뿐만 아니라 색의 조화, 현상의 재창조 등 예술 작품에서 사용되는 양식이 활용되고 있다. 비로소 사진은 예술이 되었다.

패션 사진, 중세를 벗고 아방가르드로
전시의 끝에서 아방가르드와 팝을 볼 수 있다. 보그의 포토그래퍼는 대부분 로코코나 중세의 미를 빌렸지만, 세실 비튼 등의 혁명적인 예술가는 아방가르드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세실 비튼의 <무제>를 보면, 앙리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이 자연히 떠오른다. 강렬한 색의 조화는 적어졌지만, 색지를 오려 만든 배경 앞에 있는 여인은 옷 색과의 대조를 통해 우아함을 유지하고 있다. 비튼이 인위적으로 배경을 변화시켜 모델의 성격을 섬세히 표현했다면, 쉴라 메츠너는 모델을 추상화의 한 장면처럼 단순화했다. 메츠너의 작품인 <우마 파투> 속에서 영화배우 우마 서먼은 구와 원뿔 옆에 우리를 등지고 서 있다. 이처럼 인위적인 배경을 설정하거나 새로운 구도를 발견하는 회화적 방식을 받아들이며 렌즈는 현실 자체만이 아닌, 이면 또한 비추는 창이 되었다.

전통적으로, 그림과 사진은 극명한 차이를 가진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림은 추상을 넘어, 현실의 주제를 표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사진은 스튜디오 구성, 인화 방식, 편집 등을 통해 숨겨진 미를 부각하고 있다. 팀 워커의 작품 <노섬버랜드>는 그야말로 완벽한 비유이다. 모델이 날개를 달고 액자를 벗어나는 모습은 비로소 그림과 사진의 경계가 무너졌음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다. 보그는 마침내 루브르가 되었고, 루브르도 보그와 다르지 않다.

사진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공
장소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기간 | 2017.06.24. ~ 2017.10.07.
요금 | 13,000원
시간 | 11:00 ~ 20:00
문의 | 02)332-8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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