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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과 비연애, 당연함의 폭력에 맞서다
[438호] 2017년 09월 12일 (화) 임성민 기자 96eric@kaist.ac.kr

 최근 서울의 대부분 지하철역에서는 결혼정보업체의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그중 하나의 문구를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일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하고 아이도 좋아하는 싱글 양, 이제 좋은 짝만 있으면 되겠죠?” 일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하는데 왜 결혼을 할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연애도 할 줄 알아야 하고, 누구든 때가 되면 결혼을 해야 하며, 행복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사회의 시선에 도전장을 내민 사람들이 있다. 비연애와 비혼, 비출산 인구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비혼, 또는 비연애 등은 미혼, 비연애주의와는 구분되는 개념이다. 미혼이라는 단어가 혼인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나 하지 않음을 일컫는다면, 비혼은 혼인이 온전히 선택의 문제임을 강조하는 단어다. 세상은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이나, 혼인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아이를 갖지 않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방식으로 ‘훈수’를 둔다.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은 어딘가 문제가 있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치부하고,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늙어서 후회한다”고, 아이가 없는 사람에게는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에 대한 설교를 늘어놓는다.

비연애와 비혼 역시 삶의 한 형태다
우리 사회는 연애하지 않는 20대, 결혼하지 않는 30대, 아이 없는 부부라는 스탠스를 포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수많은 이유를 가지고 각자의 선택을 하지만, 사회는 이들을 모두 묶어 솔로, 싱글 등으로 통칭한다. 또한 이들을 앞으로 연애나 결혼을 할 사람이나, 못 할 사람으로 평가한다. 비연애 인구를 위한 잡지인 <계간 홀로>의 이진송 편집장은 “사람들은 비연애를 무조건 비연애주의, 연애를 강력히 거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그런 사람들은 남들이 ‘살면서 연애를 안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비연애, 비혼 등은 모두가 택할 수 있는 어쩌면 당연한 삶의 형태인데, 사람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탈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근대에 와서 생겨난 연애의 개념
그렇다면 사람들이 모두 연애와 결혼을 추구하며 장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에는 결혼이 집안 사이의 교류로 여겨져 가족의 영역으로 고려될 뿐만 아니라, 배우자를 고르는 선택권마저 개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근대 이후로 결혼은 개인의 영역이 되었고,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과 미래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상대방에게 호소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결혼은 개인의 자본과 능력, 노력으로 성취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고, 결혼까지 가는 과정에 연애라는 관계가 생겨났다.
모든 것을 성과로 판단하는 성과주의사회에서 연애는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얼마나 좋은 짝을 만나느냐가 중요한 성적표가 되고,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면서 오히려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이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평가받게 된다. 영국의 사회학자인 앤서니 기든스는 “대부분의 인간은 평생 로맨스를 경험하지 않는데, 미디어 등에 의한 학습으로 누구나 자신에게 그것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근대 이전의 사람들은 연애 없이, 로맨스 없이 살았다. 즉 연애와 사랑이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에 잠식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이유로 비혼 인구 급증해
비혼과 비연애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이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리서치 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지난해 만 19~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응답은 61.8%에 달했다. 비혼이 증가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 항목은 결혼 비용, 자녀 양육 등의 경제적인 어려움이었다. 또한, 사람들은 자유로운 삶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결혼이 우려되는 큰 이유로 꼽았다.
대부분 금전적인 이유나 자신의 삶이 뺏기는 것을 비혼의 가장 큰 이유로 선택했으나, 남녀 간의 차이는 비교적 명확했다. 남성은 대부분 집값 마련이나 생계 부양 등 금전적인 부분을 걱정했다. 사회가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남성이 결혼 자금의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있고, 이러한 부분이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결혼 제도를 감당할 자신이 없고, 결혼이 오히려 서로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여성은 가사노동으로 인한 자유 박탈, 시댁과의 관계, 남편과의 불평등한 관계 등을 걱정한다. 명절에 여성들만 일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고, 여성은 결혼 후 모든 가정사를 책임져야 하는 불균형의 장에 발을 담그고 있다. 가부장제와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내 옆의 사랑하는 사람도 무조건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는 의견도 많다.
양육의 무게는 남녀 모두에게 큰 부담이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워 반려동물도 키우기 쉽지 않은 세상에, 자식을 20년 넘게 치열하게 키워 대학 등록금까지 내줘야 하는 실정은 갓 사회에 진출한 초년생들에게는 큰 짐일 수밖에 없다. 또한 여성의 경우 임신으로 인한 경력 단절, 독박 육아 등도 피하고 싶은 현실이다. 방송인 박소현 씨는 최근 방송에서 19년 동안 방송과 라디오의 진행자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비혼과 비출산이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훌륭한 직장에서 본인의 꿈을 키우며 살다가 어느새 본인의 이름이 아닌,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는 모습은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남성의 연애하지 않을 자유
비혼을 선택하는 이유에서도 보이듯, 여성의 비연애와 비혼은 단순히 돈이나 하고 싶은 일의 문제만은 아니다. 여성은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에서는 결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행복보다 잃을 것이 더욱 많다고 느낀다. 이진송 편집장은 이러한 사회에서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남성의 연애/결혼하지 않을 자유라고 말한다.
우에노 치즈코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에서 남성은 한 여성을 ‘소유’함으로써 남성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남성으로서의 매력, 또는 자격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지고 어떤 여자를 소유하느냐가 그의 남성성의 지표로 기능한다. 이러한 시선 때문에 연애를 못 하는 자신에 대한 박탈감이 생기고, 이는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원망을 낳는다, 여자들이 자신에게는 없는 돈, 외모 등을 따지는 속물이라 증오하는 여성혐오적 사고를 가지게 된다고 책은 얘기한다. 이진송 편집장은 연애하지 않을 자유는 이러한 남성성의 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고, 모든 이성을 연애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연애지상주의 관점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한다.

연애와 관련된 편견 거둬내야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 세대들에게 연애와 결혼, 출산은 어느덧 사치가 되었다. 연애와 결혼은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생을 좌우하는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혼이나 비연애를 결심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결혼한다”던가, “언젠가는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은 고민으로 치부하는 사람이 많다. 혹은 개개인의 행동을 “그러면 남자들이 싫어해”, “요리도 잘 하는데 이제 시집만 가면 되겠다”라는 등 연애나 결혼과 연관 지어 판단한다. 이처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결혼과 연애를 당연한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이진송 편집장은 “하지 않을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할 자유는 강박일 뿐이다” 라고 말한다. 비연애와 비혼이 늘어나는 현상은 단순한 사회적 현상이 아니라, ‘정상’ 이라는 이름 아래에 감춰진 폭력을 드러내는 중요한 움직임이다. 따라서 이들을 사회적 문제로 취급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바꿔야 할 것이다. 여자라고 해서 아내가 될 필요가 없고, 아내라고 해서 엄마가 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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