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캐머런 미첼 - <헤드윅>

평생 가면을 쓰고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며, 매번 누군가에게 버림받으면서 산다면 그 목소리에 맺힌 한은 어느 정도일까. 영화 <헤드윅>에서 동독 출신의 트렌스젠더인 헤드윅은 노래를 통해 그녀의 삶을 이야기한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던 날 태어나 평생 동독에서 살던 헤드윅은 미군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자연스럽게 미국이라는 이름의 자유를 꿈꾸던 그는, 베를린 장벽 근처에서 미국인 로빈슨 하사를 만나 새로운 삶을 찾는다. 하지만 로빈슨 하사와 결혼을 하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은 바로 남성성이었다. 거기에 싸구려 수술의 결과물로 그녀를 평생 옥죄는 1인치의 흉측한 성기가 남게 되었다. 그 설움을 모두 토해내려는 듯 부르는 <Angry Inch>는 그 경쾌한 멜로디와는 달리 보는 이를 숙연하게 한다.
운명은 그녀의 편이 아닌 듯, 헤드윅이 미국에 도착하던 날 그렇게 기다리던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일어나고, 그녀는 로빈슨 하사에게 버림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헤드윅은 운명의 상대인 토미 앞에서 <Wicked Little Town>을 부른다. 서로 사랑에 빠져 함께 기타를 치고 노래하며 그 어느 때보다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토미가 1인치만큼을 더 받아들이지 못해 그녀는 또 한 번 버림받게 된다.
토미는 헤드윅이 만든 곡과 그녀가 지어준 이름을 가지고 록스타가 된다. <Hedwig’s Lament>는 엄마에게, 애인에게, 그리고 록스타에게 버림받고 처참히 찢겨져온 헤드윅 자신을 위한 노래다. 그녀는 토미의 공연장을 따라다니고 공연을 하며 자신이 원작자라고 호소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던 그녀의 귀에 토미의 노래가 들려온다. 바로 그녀가 토미에게 들려준 <Wicked Little Town>의 개사 버전이었다. 토미가 헤드윅에게 불러주는 노래는 결국 그녀가 그녀 자신에게 부르는 노래다. 그녀는 자신의 반쪽을 만나 상처를 치유 받고 싶어 했으나, 그녀의 반쪽은 그녀 스스로가 가둬두고 있던 자신의 내면에 있었다. 그녀가 찾아야 했던 건 운명의 상대가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헤드윅의 노래를 듣다 보면 어느새 그녀의 심정과 운명에 공감하게 되고 그녀와 함께 슬퍼진다. 엄마에게, 애인에게, 그리고 록스타에게 처참히 찢겨 조각난 그녀는 음악을 통해 울분을 토해내고 상처를 승화시킨다. 가발과 짙은 화장 뒤에 숨어, 자아를 찾아 헤매던 그녀는 결국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어두운 골목길을 걷는다.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고 음악이 끝날 때까지 영화관 안의 그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다. 동독과 서독, 남과 여, 자유와 구속, 그 모든 것의 회색지대에 있는 헤드윅이었기 때문에 결국 우리들 모두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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