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3년 영국에서 발행된 <오만과 편견> 속표지

 

▲ 영화 <오만과 편견> 포스터

 

단 6편의 소설만으로 스콧, 셰익스피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제인 오스틴. 올해로 그녀의 서거 20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영국에서는 10파운드 지폐의 모델로 그녀를 선정했고, 우리나라에서도 강연회, 다큐멘터리 제작 등의 많은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제인 오스틴은 로맨스 소설의 대가로서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그녀의 실제 삶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당시 영국 여성으로서의 많은 한계와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끊임없이 사랑을 말한 제인 오스틴의 삶과 문학 세계를 향유해보자.

사교도시 바스, 작품의 무대가 되다
  매년 9월, 영국 런던에서 남서쪽으로 약 170km 떨어진 도시 바스에서는 제인 오스틴을 기념하는 축제가 열린다. 바스는 18세기 귀족과 부유층의 휴양과 사교 도시로 유명한데, 여전히 중세 시대 도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됐다.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 리젠시 시대(1811~1820)의 복장으로 거리 행진을 하고, 도시 곳곳에서 제인 오스틴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열린다.
  18세기 바스는 결혼적령기가 된 딸을 둔 부모들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던 도시였다. 돈 많은 부유층이 모여 매일 화려한 무도회가 열리고, 홍차 문화가 대중화되면서 혼기가 찬 자식들의 혼담이 오갔다. 혼기가 찬 제인 오스틴 역시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바스에 살게 되었는데, 늘 사랑에 의한 결혼을 꿈꿔온 그녀는 바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소설 속에 담긴 여성들의 삶
  그녀의 소설 <오만과 편견> 속 베넷 부인은 딸들을 부잣집에 시집보내기 위해 안달이 난 인물로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옆 동네에 부자 청년이 방문했다고 하자, 딸들을 소개할 자리를 마련하라며 남편을 닦달한다. 주인공이자 둘째 딸인 엘리자베스 베넷을 비롯한 다른 딸들도 크게 관심을 갖는다. 엘리자베스의 동생들은 장교들이 마을을 방문한다는 소리에 신랑감을 찾고자 일부러 손수건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당시 여성들은 이런 모습일 수밖에 없었다. 베넷 부인이라는 인물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듯, 사랑보다는 돈을 위해 중매결혼을 했다. 여성들은 지위가 낮았고, 오직 조건이 좋은 남성에게 시집가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열려있지 않았다. 중산층 여성들이 받는 교육은 수놓기, 피아노, 불어 등으로, 오로지 자신의 교양을 증명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교육의 실용성보다는 사회적으로 남성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중요시했던 것이다.
  때문에, 소설에 나오는 남성들의 청혼은 매우 오만하다. 엘리자베스의 사촌 콜린스는 자신의 경제적 여건이 상대적으로 월등하다는 이유로 엘리자베스가 당연히 결혼을 받아들일 것처럼 이야기한다. 남자 주인공인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에게 ‘지난 몇 달간 가족들의 기대 속에서 당신의 열등한 신분 때문에 싸워야 해서 너무 힘들었다’며 청혼한다. 엘리자베스는 ‘당신이 겪어왔던 고통을 높이 평가해요. 그런 당신에게 고통을 드려 죄송하군요’라며 당차게 거절한다. 제인 오스틴은 작품을 통해 결혼의 선택이 남자에게만 있지 않으며, 사랑 없는 결혼은 옳지 않다는 신념을 표현했다.

조건 없는 순수한 사랑을 원하다
  제인 오스틴은 당연시됐던 경제적 여건과 남성 중심의 결혼 문화를 풍자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사랑을 뒤로하고 조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갈등을 섬세하게 풀어냈다.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 베넷의 가장 친한 친구 샬럿은 ‘모두가 로맨틱할 수는 없는 거야’라며, 멍청하지만 보다 넉넉한 형편인 엘리자베스의 사촌 콜린스와 결혼한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일반 영국 여성들과는 사뭇 다른 태도로, 현실 속 조건보다는 사랑을 선택하며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실제로도 현실에 순응하기보다는 사랑을 택했던 제인 오스틴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20살에 무도회에서 만난 톰 르프로이와 사랑에 빠졌지만, 지참금이 없다는 이유로 톰 집안의 승낙을 얻지 못해 결혼이 무산된다. 제인 오스틴이 <오만과 편견>의 바탕이 된 습작인 <첫인상>을 쓴 것은, 그와의 결혼이 실패로 돌아간 지 1년 후였다. 신분 차이를 극복하고 사랑의 결실을 보는 소설 속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모습은 어쩌면 경제적인 배경 없이도 사랑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제인 오스틴의 바람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후 그녀는, 부유한 집안의 해리스 빅위더에게 청혼을 받았음에도 사랑 없는 결혼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평생 독신으로 살기를 택했다.
  제인 오스틴이 사랑을 중요한 가치관으로 생각한 데에는 여러 추론이 존재한다. 그중 평전 <비커밍 제인 오스틴>의 저자 존 스펜스는 제인과 각별한 우애를 나눴던 오빠 헨리에 의한 영향이라고 추론한다. 헨리는 사랑하던 사촌 누나가 남편을 잃게 되자, 그녀와 결혼했다. 제인 오스틴이 이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사랑과 결혼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혹독한 현실 속에서 계속된 창작활동
  제인 오스틴은 독립적인 삶을 원했고,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 작가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경제적인 이익만을 바라는 결혼을 포기했다. 그러나 그 선택으로 인해 그녀가 치러야 했던 희생은 컸다. 당시의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그랬듯, 친척 집에 얹혀살아야 하는 취약하고 고달픈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아버지 조지 오스틴이 죽은 후에는 더욱 형편이 어려워져, 1817년 41세의 나이로 죽기 전까지 가난과 싸웠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그녀가 죽기 1년 전인 1816년 4월에 프랑스와 미국에서 출판될 만큼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제인 오스틴은 큰 경제적 이익을 얻지는 못했다. 그녀는 직접 출판업자와의 협상에 참여하고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지는 등 책의 출간에 적극적이었지만, 출판업자들은 그녀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때문에 제인 오스틴은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작품의 저작권을 넘기기도 하고, 그녀와 계약한 출판업자가 책을 서고에 둔 채 출간하지 않기도 했다.
  제인 오스틴은 현실적인 해결책과 타협하는 대신에 사랑과 글을 선택함으로 인해 수많은 고초를 겪었다. 20세기에 들어서야 대작가로 재평가된 제인 오스틴은, 이미 윈체스터 대성당에 잠들어 있었다.

세기를 뛰어넘어 공감을 얻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다. 외국에서는 ‘오스틴 세미나’, ‘제인 오스틴 협회’, 제인의 소설만을 읽는 ‘오스틴 독서클럽’ 등이 흔하다. 그녀의 소설은 재치 있는 대화체를 많이 이용함으로써 당시의 삶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 18세기 영국 여성의 지위와 결혼 문제, 재산 상속 등의 시대상을 실감 나게 알 수 있다. 또한, 현대인들도 공감할만한 세심한 표현들로 여성의 심리를 묘사했다. <오만과 편견>에서 다아시의 청혼을 거절하고 그의 저택에 방문한 엘리자베스는 잠시 청혼을 거절한 것을 후회한다. 사랑을 선택했으면서도 현실적인 조건과 고민하는 솔직한 심리 묘사가 많은 이들을 공감하게 했다.
  여성의 권리가 보장받지 못했던 시절에 현실을 극복하며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다룬 소설은, 일반 로맨스 소설을 뛰어넘는 감동이 있었다. 특히, 많은 난관을 겪은 후에 행복한 결혼에 도달하는 과정은 오늘날 로맨스 소설의 근간을 마련했다. 41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해 고작 6편의 작품만 출판한 작가가 세계 문학사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은, 학자들이 연구할만한 문학적 깊이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일반 독자들 또한 공감할 만한 재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들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 이외에도 두 자매가 각자의 사랑을 찾아 나가는 <이성과 감성>, 어릴 때부터 친척 집에서 더부살이를 해온 여주인공이 사촌오빠와 결혼하기까지의 곡절을 담은 <맨스필드 파크>와 같이, 여자 주인공이 오해와 고난을 극복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 작품들을 집필했다. 이외에도 그녀는 <엠마>, <노생거 사원>, <설득>, 그리고 습작 <레이디 수전>과 미완성 소설 2편을 썼다.
  미완성 소설 2편을 제외한 소설들은 모두 영화로 재탄생했다. 원작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제인의 소설을 기반으로 시대나 인물만 변화시켜 개봉한 영화도 다수 존재한다. 흔히 아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시리즈는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 <오만과 편견>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저작권자가 없어 로열티를 내지 않아도 되며, 해피엔딩, 대화체의 소설구성으로 극본을 쓰기에 적합해 영화제작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영화로 재구성된 그녀의 소설은, 화려한 무도회나 평화로운 시골길과 같은 아름다운 영상미와 강렬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며 새로운 감동을 선사했다.

  제인 오스틴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위대한 소설가로 재조명됐다. 많은 예술가가 그녀에게 영감을 얻었고, 소설 <해리포터>의 저자 조앤 K. 롤링은 ‘제인 오스틴은 모든 작가가 꿈꾸는 별과 같은 존재’라며 칭송하기도 했다. 200년이나 지난 시대에 살았던 그녀는 이미 우리 삶 속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녀가 쓴 작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뜻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사랑 때문에 흔들리고 아파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누구나 꿈꾸는 로맨스를 재치 있게 그려내 공감과 감동을 선물한다. 순수한 사랑의 가치를 세상에 화두로 던진 제인 오스틴은, 지금도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묻고 있다.

▲ 1813년 영국에서 발행된 <오만과 편견> 속표지

 

감수 | KAIST 인문사회과학부김영희 교수

참고자료 |
<올 어바웃 제인오스틴>,
캐롤 아담스 외
<제인 오스틴의 여성적 글쓰기>, 조선정
EBS 세계문학기행 5부
<제인 오스틴에게 사랑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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