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 임의의 사람들을 그려보자. 이 표본의 모집단은 대한민국 전체이다. 이들에게 할 질문은 딱 하나다 : “싫어하는 새 있어요?” 아마 가장 많은 응답수를 얻은 답은 ‘비둘기’, 더 정확하게는 ‘집비둘기’가 아닐 런지. 그렇다면 이번에는 모집단을 “KAIST 학생”으로 바꿔보자. 가장 많은 응답수를 얻은 답은 무엇이 될까? 나는 높은 확률로, 비둘기를 제치고 그 영광의 자리를 차지할 새는 바로 ‘북측 기숙사 뒤에 사는 하얀 새’가 될 것이라 예상한다. 모집단이 “북측 기숙사에 사는 KAIST 학생”이면 더 정확할 것이고, 이 검사가 여름에 이뤄진다면 더더욱 정확할 것이다.

여름이면 밤낮을 가리지 않는 소음과 악취로 북측 학우들의 코와 귀를 동시에 괴롭게 하는 이 친구들은 ‘백로’이며,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황새목(Order Ciconiiformes) 백로과(Family Ardeidae)에 속하는 새들이다. 현재 까지 우리나라에서 정식으로 기록된 백로과 새는 총 9속 18종이며, 이 중 13종만이 우리나라에서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 중 몇 종이나 우리 학교에서 번식을 하는 것일까? 답은 5종으로, 중대백로, 쇠백로, 황로, 중백로, 그리고 해오라기가 KAIST에서 집단번식을 한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148개의 백로⋅왜가리 집단 서식지가 존재하며, 그 중 우리 학교도 당당하게 속해있다. 더 놀라운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 학교 내에 존재하는 백로들의 최대 둥지수는 1420개로, 148개 서식지 중 전국 2위라는 것이다. 이는 1위인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양기리의 최대 둥지수 1508개와 채 100개 차이도 나지 않는 수치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백로들이 우리 학교에서 위상수학을 배울 리도, 양자역학을 배울 리도 없으며 그렇다고 공학을 배울 것 같지도 않은데, 대체 왜 KAIST로 모여든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갑천과 숲에 있다.

백로과 새들은 대개 서식지의 반경 5km 이내에서 취식 활동을 하며, 곤충이나 소형 파충류를 먹기도 하는 황로를 제외하면 물고기, 개구리와 같은 수서 생물들을 잡아먹는다. 또한 흑로와 노랑부리백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백로과 새들이 낮은 구릉과 산림에 둥지를 트는데, 이들이 둥지를 트는 나무(‘영소목’이라고 한다)는 일반적으로 소나무, 잣나무와 같은 침엽교목과 참나무류의 활엽교목이다. 자, 그럼 머릿속으로 갑천 위치를 대충 그려보고, 북측 뒷산의 고도와 그곳에 어떤 나무들이 있었는지 떠올려보자. 여러분은 인간으로서 이 학교를 골라 들어왔지만, 아마 여러분이 쇠백로였어도 이 학교에 들어와 살았을 것이다.

이 칼럼이 투고되는 신문은 겨울에 발간될 예정인데, 사실 지금쯤 백로과 친구들은 동남아시아에서 따뜻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종마다 차이가 있지만, 백로과 새들은 대체로 4-6월에 포란하여 5-7월에 새끼를 키우고, 9-10월에 월동을 위해 이동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유독 여름에 백로 떼가 기승을 부렸던 이유이다. 많은 학우들이 소음과 악취에 시달리고며 봄학기 기말고사를 준비하던 그 때, 그 해에 새로 태어나 뽀송뽀송한 아기 백로들은 막 무럭무럭 자라나 독립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많은 학우들에게 백로과 새들은 악몽 같은 존재겠지만, 사실 이 친구들은 아주 중요하다. 먼저 백로⋅왜가리는 습지 생태계의 상위 포식자이기 때문에 아주 좋은 생물학적 지표종(biological indicators)이다. 실제로 1962-1963년 동안의 유난히 혹독했던 겨울이 지난 후 영국과 네덜란드의 왜가리 수가 절반으로 줄었던 기록이 있을 만큼 기후 변화에 매우 민감한 종이기도 하며, 취식 활동을 습지 및 하천에 의지하기 때문에 습지의 건강성을 판단하기에 유용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지난 10q(단, q∈ℚ)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면적의 습지가 파괴되었고, 이는 곧 백로과 새들의 생존 위협이 되어 국제자연보호연맹(ICN), 버드라이프 인터네셔널(BirdLife International) 등의 국제 단체들이 활발하게 보호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여름마다 고통을 겪는 것도 현실이니, 공존하기 위한 마땅한 방법이 없을까?

답부터 말하자면, 현재 상황에서는 찾기 힘들다. 우리 학교뿐 아니라 도심 주변에 위치한 집단 서식지는 모두 공통된 문제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서식지 이전 공사가 행해지곤 하지만, 그 성공률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이며 유일한 해결책은, 습지와 서식지를 보호하고 확장하여 백로과 새들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더 많이 마련하는 것뿐이다. 사실 우리들, 그러니까 사람들과 같은 동네에 사는 것은 백로과 친구들에게도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달리 살 곳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심 근처에 둥지를 트는 것이다. 과거 습지의 중요성을 모른 채 행해졌던 무분별한 개발들에 대해 반성하고, 앞으로 습지 보전을 실천한다면 백로과 친구들은 더 이상 이런 ‘불편한’ 동네에 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자료가 있어 언급하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 바로 148개 집단 서식지 중에, 포항에 있는 바로 “그 학교”가 속해있다는 것이다. 포항시에 존재하는 세 개의 집단 서식지 중 하나인 그곳에는 4종의 백로과 새들이 서식하며, 그 최대 둥지수는 131개이다. 또한 집단 서식지의 면적은 1898.98㎡로, 우리 학교의 6634.03㎡에 비하면 좁아도 한참 좁다. 요모조모 따져 봐도 우리가 압승이다. 이게 과연 좋은 일인지는 선택에 맡기지만, 일단 이겼으니 좋아하자. 오예.

 

자료 출처 : [이윤경⋅김동원⋅장병순⋅유승화⋅김창회⋅박진영⋅강종현⋅이진원⋅권인기⋅권혁수⋅류지은⋅안경환⋅신현철⋅서재화⋅서민환⋅김명진, 『한국의 백로와 왜가리(Egrets and herons in Korea)』, 국립환경과학원(2012), p10-21, p286, p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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