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심리학과 여성 리더십 그리고 정치

어떤 여성들은 로봇을 좋아하는 남성을 이해 못한다. 만화 <로봇 태권 V>에 열광하는 남편이나 예술품을 다루듯 프라모델을 하는 남성들의 진지한 열정은 우습기도 하다.  사극 역시 칼싸움이나 주먹싸움이 많아 오래전부터 남성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요즘 사극, 특히 선덕여왕은 여성 시청자들의 큰 성원 끝에 막을 내렸다. 반면, <천추태후>는 당당한 여성성을 내세웠음에도 시청자들에게 외면받았다. 그 이유를 진화 생물학, 특히 진화 심리학 차원에서 살펴보려 한다.

진화심리학이 말하는 남성과 여성
<선덕여왕> 속의 여성 리더십은 <천추태후>나 <자명고> 등과 비교해 볼 때 다른 점이 눈에 띈다. 그것은 여성과 남성의 진화적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고, 그것이 큰 호응을 받은 점이다. 이를 설명하려면 진화심리학이 남성들이 로봇을 좋아하는 이유, 여성들이 소꿉놀이 인형을 왜 좋아하는지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진화심리학에서는 남성들의 로봇 선호를 원시 사냥의 본능에서 찾는다. 남성들은 대개 사냥감을 추적하고 획득해야 했다. 효율적으로 많은 사냥감을 얻기 위해 더 효과적인 사냥수단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인간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했다. 진화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그러한 도구를 대리 상징하는 것이 오늘날 남자들이 좋아하는 자동차와 권총, 그리고 로봇이다. 

 반면, 여성들은 사냥보다는 마을에 남아서 아이를 키우고 다른 사람들과 지내야 했기 때문에 일찍부터 인적 관계에 익숙해야 했다. 일찍부터 사람 사이의 행동 분석과 심리 파악, 그리고 그에 따른 대응력을 기르는 훈련을 하게 된다. 미묘한 감정의 변화와 얼굴 표정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물론 뇌 과학에서는 이를 뇌 구조의 차이로 분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뇌 구조의 차이도 결국 진화적 산물이다.

고대 정치의 핵심, 궁중암투
‘궁중암투’라는 말이 있다. 여성들이 정치 배후에서 벌이는 정치싸움을 가리킨다. 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도, 여성들이나 하는 하찮은 것으로 볼 수도 없다. 오히려 남성 정치보다 고도의 지략과 책략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장 뛰어난 인류의 정치게임의 압축이 여성정치이기도 하다. 여성들이 남자들을 움직인다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하는 것이며, 고대 정치의 핵심일 것이다. 

 어쨌든 여성들이 남아있는 공간은 적과 아군의 경계가 모호하다. 그것이 바뀌기도 한다. 따라서 항상 그것을 탐지하고 대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말과 대화 그리고 수다이다. 여성들은 끊임없이 말하고 대화하면서 사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을 통해 적과 아군을 구분하고 자신의 편을 만들어 상대에 대처한다. 남성들이 즐겨보는 콘텐츠에는 적에 대응하는 의리와 정의의 주인공을 다룬 내용이 많지만, 여성들이 주로 즐겨보는 콘텐츠 중에는 인간관계 사이의 사소한 사안들에 대한 내용이 많다.

말을 타는 여성, 말을 하는 여성
본격적으로 사극 속 여성리더십이 어떤 진화적 궤적을 보였는지 살펴보자. 한동안 여성의 주체적인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말을 타고, 무술을 하는 여성들이 전면에 나섰다. 드라마 <다모>를 필두로 드라마 <주몽>의 소서노, <천추태후>의 천추태후를 들 수 있다. 그녀들은 완력이 뛰어나고 무술은 잘하지만 구체적이고 세세한 일상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보다는 관념적인 명분과 정의에 함몰되었다. 그것은 또 다른 남성에 대한 콤플렉스의 변형이었고, 그것이 정작 여성들을 위한 비전을 보여준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선덕여왕>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퇴조되었다. 음지의 여성 정치가 전면에 등장했다. 덕만은 사내아이로 변장해 살지만, 무술을 그렇게 잘하는 것도 완력이 남성보다 나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혜와 명민함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간다. 모든 남성들을 휘어잡는 미실은 무술을 전혀 하지 못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다른 이들을 얼마든지 자신의 의도에 맞게 지배,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실의 외유내강 정치학
미실은 언제나 고고하게 앉아 있거나 조용하게 말할 뿐이다. 항상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고, 화를 내는 경우도 거의 없다. 미실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권력의 정점에 있게 하는 것은 바로 관계적 파악과 대응능력이다.

 미실은 미세한 표정과 감정의 변화도 어김없이 파악하고 그것을 분석해 대응방안을 만들어낸다. 그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만들고, 그것을 잘 관리할 줄 안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궁이라는 좁은 공간은 전쟁에 나가서 적만 쳐부수면 되는 것과 다르다. 겉으로는 모두 같은 편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전쟁이나 사냥에서는 목표물과 싸워야 할 대상은 명확하다. 하지만, 집안이나 궁에서는 적과 아군이 시시때때로 변화한다. 때로는 적과 아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끊임없는 탐색에 생존의 길이 있고, 그 탐색과 대응 수단 가운데 하나가 대화나 수다이다. 미실은 적과도 언제나 웃으며 대화한다. 그리고 그 대화에서 상대를 파악하고, 상대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거나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미묘한 표정과 부드러운 말 한마디로 상대를 무력화하기도 한다. 덕만은 미실을 이기고자 인간 사이의 현실적 전략들을 추구한다. 미실은 인간 사이의 공간 정치학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정점에 이른 최고의 베테랑이다. 

 미실이 가진 장점은 어쩌면 밖으로만 나다니며 사내같이 산 덕만의 치명적인 약점일 것이다. 외향의 공간에 익숙한 덕만에게 내향의 밀실 공간에서 수십 년 동안 권력자로 살아남은 미실은 거대한 벽일 수밖에 없다.

여성 리더십은 복잡한 힘의 관계 속에서 얽힌 인간관계를 지혜롭게 때로는 전략적으로 잘 풀어낸다.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리더십이 외향적인 강함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 때문에 단순히 여성주인공이 등장하거나 물리적 외향의 주체적인 모습만 강조한다고 해서 여성을 끌어들이는 사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화 심리적 관점은 대중예술 미학 차원의 특징이기도 하고, 시청률과 직결되는 문제가 되었다.           글 / 김헌식 문화평론가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