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과 1979년 남빙양의 일반해양조사와 크릴시험어획으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극지연구는 외국 선진 극지연구국가에 견주면 매우 늦게 시작되었다. 그래도 매년 SCI에 등재된 잡지에 수십 편의 논문이 나올 정도로 우리나라 극지연구의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다.  최근 극지연구의 추세와 우리나라에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의 내용과 목적, 성과에 대해 알아보자

마드리드 협약으로 남극 환경 보호해
현재 국제사회는 남극 환경보호를 적극적으로 강조하는 추세이다. 극지의 환경을 크게 오염시킨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1989년 1월 말 남극 물자운반선 바이아 파라이소호가 서남극 파머기지 앞에서 전복되어 기름이 유출되었다. 같은 해 3월에도 알래스카 프린스 윌리엄 협만에서 유조선 엑손 발데스호가 좌초해 4만 톤의 기름이 2,000km가 넘는 해안을 뒤덮었다. 사고 후, 남극을 연구하는 나라들은 남극의 환경오염을 우려했다. 결국 기존 지하자원 시험개발협약이 무산되었고, 1998년 ‘마드리드 협약’이라 불리는 환경보호를 위한 남극조약협약이 발효되었다. 마드리드 협약에 따라 2048년까지 남극에서 모든 지하자원 개발은 금지된다. 이는 남극의 환경뿐 아니라 남극영유권에 대한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배려도 있을 것이다.

극지 주위의 모든 것이 연구대상
극지연구는 극지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을 포함한 모든 현상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극지의 대기권, 생물권, 얼음, 남극대륙을 둘러싸는 남빙양이 연구대상이고 극지의 지질 자체도 연구대상이 된다. 극지의 얼음은 극지의 기후변화를 기록한 역사책이나 다름없고, 주변에 있는 암석과 화석도 과거 극지 환경을 알게 하는 좋은 열쇠이다. 따라서 연구자의 관심만 있으면 눈에 보이는 극지의 모든 자료와 현상이 연구의 대상이 되고, 이를 통해 학위도 받을 수 있다.

생태계의 신비를 밝힌다
우리나라의 최근 극지연구는 순수연구와 응용연구가 적절히 섞여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먼저 극지생태계연구는 생태계의 다양성과 기능을 규명하고, 각 생태계를 대표하는 지표생물들의 특성과 어떻게 이들이 적응하는지를 연구한다. 또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구온난화와 같은 환경 변화가 생물들과 생태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알아내고자 분자에서 군집 수준까지 다양하게 연구한다. 주요 연구 내용으로는 세종기지 연안 생태계 다양성, 먹이망 연구, 개체생태연구, 환경 스트레스에 대한 생체방어기작, 분자 생체지표 연구 등이 있다.
극지생물 재현과 활용연구는 배양할 수 있는 극지생물을 확보해 저온적응기작을 확립하고 저온에서도 생존하는 생물들을 대량으로 배양하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이다. 이 연구를 통해 2009년에는 북극에서 최초로 발견된 빙설녹조를 분리해 단일배양에 성공했다. 또한 남극의 담수 미세조류와 북극의 담수 미세조류에서 저온적응에 관련된 유전자를 최초로 분리했다.

남극생물을 이용해 난치병 치료해
극지고유 유전자자원연구는 유전자자원의 확보와 이용, 유용한 바이오소재 탐색과 이용이 주요한 연구목표이다. 이를 위해 연구원들은 기지 주변의 미생물, 이끼류와 지의류를 대상으로 극지생물연구를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고, 발현 유전체를 대상으로 기능연구를 위한 유전자를 선별한다. 또한, 저온처리와 결빙상태에서 발현이 증감하는 유전자를 각각 선별했다. 나아가 남극의 지의류 등에서 유래한 항산화제, 이형당뇨치료제 등을 활용해 의약품을 개발하는 연구도 이루어져 특허를  출원하고 등록했다.
극지에서 유래한 천연 결빙방지물질을 이용한 혈액보존 연구는 활성이 아주 높은 결빙방지물질을 실용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북극 호냉성 효모에서 결빙방지단백질을 분리해 유전자 서열을 밝혔다. 또한, 대장균의 형질을 전환해 결빙방지 단백질을 대량생산해 정제했다. 이 연구는 앞으로 줄기세포 연구기업과 함께 혈액과 줄기세포, 생식세포 등의 동결보존을 실험해 실용화할 계획이다.

지각운동연구를 응용해 기술 개발하다
해저활성지각운동연구는 브랜스필드 해협에서 일어나는 해저지각의 활동과 열수 활동을 관찰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지각에서 일어나는 관입현상과 지진현상을 관측한 결과, 브랜스필드 해협에서는 화성암의 관입현상이 지금도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빙산, 빙붕, 빙하 같은 얼음에 관련된 파동도 6개월 주기로 변동하는 것이 기록되었다. 이 연구를 통해 수중음원 위치정밀추적 프로그램이 개발되기도 했다.

지구의 역사를 담은 얼음과 운석
얼음연구는 크게 얼음분석과 얼음굴착으로 나뉜다. 정밀한 얼음분석을 위해 열이온화질량분석기로 납과 스트론튬 같은 동위원소를 분석하고, 해상도 1분의 1천조(ppq)의 고해상도질량분석기로 극미량의 무기원소를 분석한다. 나아가 얼음굴착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국제그린란드빙하시추현장에 인력을 파견하기도 한다.
운석연구는 우주와 태양계가 지구형성에 미친 영향을 밝히고, 운석의 구성 물질을 분석, 분류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7년 초부터 운석 채집을 시작해 현재까지 29개를 발견했고,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남극운석 연구국가가 되었다. 채집한 운석은 오염방지를 위해 청정보관동에서 1차 처리를 하고 분석한다. 운석은 지구물질과 달리 미량을 사용해 분석하기 때문에, 많은 동위원소 분석기기들의 분석능력 향상에도 이바지한다. 극지연구소에서는 레이저 불화방식 산소동위원소 분석시스템과 열이온화 질량분석기를 가동하고 있다. 앞으로는 미분화운석을 이용해서 태양계 형성의 초기과정을, 분화운석으로는 지구형 행성의 진화과정을 연구하려 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단서, 남극의 대기
극지대기와 기후변화연구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예측ㆍ적응 연구를 위해 극 지역의 고기후 연구, 현재 기후변화 관측, 생태계 변화연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수치모형연구를 통해 극 지역의 과거 기후의 변화를 복원하고, 극지의 대기와 육상, 대기와 해양 간의 교환과정을 이해하며 흐름을 평가한다. 또한, 중간권 온도와 바람을 관측하고 이온권의 위성자료를 분석하며 열권 바람모델결과를 분석해 고층대기의 물리역학특성을 파악한다. 나아가 남극 일대의 기후변화에 미치는 대기성분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에어로졸과 온실기체를 측정한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연구는 극 지역의 고해양환경, 육상고기후연구, 중위도지역의 고기후연구로 구성된다. 극 지역의 고해양환경연구는 신생대 제4기의 마지막 지질시대인 홀로세의 극지기후복원과 빙하주기에 따른 극지고환경복원, 극지고기후 프록시 도입과 개발로 되어 있다. 이를 위해 방사성 탄소로 절대연대를 측정하고 탄소, 질소, 유기 탄소, 무기 탄소와 여러 생물체 내의 안정동위원소들을 분석한다.
남극해 온실기체 처리능력평가와 온실기체 제거장 활용가능성 연구는 남빙양에서 온실기체의 거동을 추적하고 이에 영향을 미치는 물리현상과 생물작용을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녹조류와 식물의 광합성을 촉진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해양 깊은 곳에 격리시키는 방안의 가능성과 잠재된 가치도 연구한다. 2009년에는 해수의 용존 무기탄소, 메탄가스, 질소산화물을 직접 측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동해에서 시험을 마쳤다. 앞으로는 독일과 공동으로 연구해 칠레 끝에서 뉴질랜드까지 이어지는 서남극해 광역에서 온실기체와 관련된 생태계를 관측할 계획이다.


시작은 늦었지만 많은 성과 이루어내
극지연구소에서는 몇 년 전부터 해마다 극지체험단을 조직해 중고생, 교사, 대학생에게 극지를 체험할 기회를 만든다. 이는 극지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극지연구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또 매년 국제극지심포지엄을 열어 극지연구에 관한 최근의 관심분야와 움직임을 파악하고 외국연구자들과 우의를 유지한다.
 이제는 7,500t급의 쇄빙선 아라온호를 건조했고, 남극대륙에 제2기지를 짓는다면 우리나라의 극지연구는 1988년 남극 세종기지 준공에 이어 다시 한 번 더 도약할 것이다.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