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는 2008년 동구의 낡은 소형 주택이 밀집되어있는 달동네에 벽화를 그리고 하늘공원을 조성했다. 주민들을 몰아내고 전면 개발하지 않고 기존 지역의 인프라를 활용해 생활환경을 개선한 것이다. 대동 벽화마을은 입소문을 타며 대전지역 명소로 자리 잡았으며 사진작가들의 출사 장소로도 꼽힌다. 대동 벽화마을 외에도 전국 곳곳에 벽화 마을이 만들어지고 있다. 전국의 벽화마을을 소개하고, 벽화를 통해 달동네가 변화하는 모습을 담았다.

 

대동역 8번 출구 앞의 언덕을 오르면 대전에서 보기 드문 골목길을 만날 수 있다. 한밭여중과 대전여고가 함께 있는 ‘한밭여중길’에는 문방구와 분식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낡고 허름한 가게들이 이어지는 길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골목 앞의 번화가와 사뭇 다른 분위기다. 

가파른 언덕을 따라 더 올라가면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작은 마을이 보인다. 너비가 1m쯤 되어 보이는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지는 이곳은 대전의 마지막 달동네다. 겨울을 맞아 김장이 한창인 동네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여느 마을과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여기에는 곳곳에 알록달록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학교 옆 골목의 꽃 그림을 시작으로 벽화길이 시작된다. 80년대에 유행하던 게임, 캐릭터 등이 그려진 길은 골목길의 향수를 자극한다. 한편, 판잣집의 구조를 활용한 그림이 눈에 띈다.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두 집엔 서로 상반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벽면에 뚫린 수도 구멍을 얼룩말의 코로 응용한 그림도 있다. 어떤 집은 마당에 심은 나무 줄기에 맞춰 담벼락에 나무를 그렸다. 

골목마다 벽화가 그려진 이곳은 칙칙한 도시의 회색빛이 아닌 무지개색의 희망이 가득하다. 표지판은 없지만, 저 멀리 언덕에 보이는 풍차를 이정표 삼아 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

대동 벽화마을은 대전에서 유명한 사진 명소가 되었다. 벽화 앞에 서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때 외로운 달동네였던 대동에 젊은이들이 찾아오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다.

 

달동네의 변화가 시작되다

일제강점기 당시 대나무를 많이 심어 대동이라 이름 붙은 동네는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판자촌이었다. 이곳에는 노인세대와 빈곤 가정의 아이들 등 저소득층이 거주하고 있다. 사람이 살지 않아 버려진 집도 보인다. 주민들이 살기에 여러모로 열악한 환경이다. 대동은 98년에 한 차례 주거환경개선사업 지구로 선정되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사업이 해지된 후 건설업계에서 외면받아왔다. 

2007년, 문화관광부가 지역생활문화 개선을 위해 추진한 ‘아트인 시티 2007’에 대동이 선정되면서 마을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오래된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마을을 새롭게 단장하는 방법을 택했다. 주민들도 이를 달갑게 받아들였다. 빈 공터에는 꽃밭을 만들었고, 테이블과 벤치도 생겼다. 대동을 찾은 대전의 예술인들은 벽화와 조형물을 설치했다. 그리고 2011년 대전시가 추진한 ‘무지개 프로젝트’를 거치며 벽화 마을로 거듭났다. 벽화 마을이 입소문을 타 방문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며 범죄율이 줄고 마을에 생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대동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불우이웃 돕기, 지역 종교단체 등 주민들을 향한 도움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동 벽화마을은 관광지로서 미비한 점이 많다. 이정표 하나 없는 마을은 외부인에게 불친절하다. 관광객의 증가가 주민들의 소득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비바람에 지워져 흐릿해진 벽화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대동은 단점을 극복하려 노력했다. 작년에는 주민들의 주도로 ‘하늘동네 벽화 그리기 대회’가 열렸다. 아마추어 미술 동호회, 지역작가, 미술 전공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왔다. 오래된 벽화를 지우고, 깔끔하게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대동은 사람들이 피하는 우범지대에서 안전하고 행복한 마을로 발돋움하고 있다. 

 

늘어나는 벽화마을

낙후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벽에 그림을 그리는 프로젝트가 관심을 얻으며 지역마다 벽화 마을이 조성되고 있다. 서울의 벽화 마을은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고도 불린다. 이화동 벽화 마을, 홍대 벽화 거리, 문래동 예술촌 등 유명한 벽화 마을은 그림을 보러 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부산에는 2009년 ‘아트 인 시티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안창마을에 벽화를 그렸다. 이후 보수동 책방 골목, 문현동 안동네, 매축지 마을 등 40여 곳에 벽화 마을이 만들어졌다. 벽화마을은 도심 속 섬과 같은 달동네가 벽화 마을로 재탄생하며 도시재생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벽화를 그리는 사람들

우리 학교 서쪽의 쪽문으로 나가면 만날 수 있는 어은동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전봇대마다 개성 있는 그림이 그려진 것이다. 지난달, KAIST 학생봉사단(이하 학봉단)에서 추진한 ‘어은동 전봇대 벽화 그리기’의 결과물이다. 

‘어은동 전봇대 벽화 그리기’는 대학로에 활기찬 분위기를 조성하고, 전봇대에 부착된 불법 판촉물을 제거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재치있는 벽화 시안을 페이스북으로 공모 받았다. 학봉단과 ‘집을 짓는 사람들’, 그리고 벽화 봉사에 관심있는 학우들이 함께 벽화를 그렸다. 어은동 상점가와 주민들의 반응도 좋았다. 일손이 부족할 때 자발적으로 학생들을 도와주었고, 힘내라며 음료를 건네기도 했다. 벽화를 그리는 모습에 관심을 가지는 행인들도 있었다. 

또한, 작년에는 학내 순수미술동아리 ‘그리미주아’와 함께 대전 동구 용운초등학교 골목길에 벽화를 그려 아이들의 등교길을 새로 단장했다. 

학봉단 박한솔 단장은 “벽화 그리기는 낙후한 지역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한 가장 간편한 방법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림에 소질이 없는 사람도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봉사”라며 학우들의 관심을 부탁했다. 

 

글 | 우윤지 기자 snailhorn@kaist.ac.kr
사진 | 권용휘 기자 일러스트 | 김성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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