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카슨 - <빨강의 자서전>

게리온은 그리스 신화 속 괴물이었다. 그는 3개의 머리와 3개의 몸을 가진 거인이었으며, 혹자는 그에게 날개가 있었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많은 시인들은 ‘괴물’ 게리온을 죽인 헤라클레스를 영웅이라 칭송했다. 하지만 책의 저자 앤 카슨은 반대로 그의 ‘괴물성’에 매료되었다. 게리온의 모습에서 모든 인간 내면에 잠재된 괴물성과 비틀림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카슨이 재창조한 게리온, 그리고 그 내면의 ‘괴물성’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따라가 보자.

카슨의 이야기 속 게리온은 캐나다에서 태어난 평범한 소년이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서도 내면에 비사회성과 동성애 성향을 가진, 빨간 날개를 단 ‘괴물’이다. 헤라클레스와의 관계 역시 새롭게 해석된다. 헤라클레스는 게리온의 머리를 쏘는 대신 큐피드의 화살로 그의 심장을 꿰뚫는다. 서로에 대한 몰이해로 끝난 그들의 사랑은 히드라의 독보다도 지독하게 게리온을 찢어 놓는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헤라클레스와의 이별이 게리온 내면의 뒤틀림에 원인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다름을 자각하는 동시에 그 다른 내면에는 영웅성이 잠재되어 있다 믿는다. 이는 타인에게 자신을 감추는 동시에 인정을 갈구하는 이중성으로 드러난다. 이 때문에 그는 자유분방한 헤라클레스에게 애증의 감정을 느낀다. 헤라클레스는 그가 남과 다르다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사랑하지만, 동시에 그 속의 뒤틀린 괴물성을 이해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에게서 자신의 내면을 인정받고자 한 게리온의 시도는 끝내 실패하고 만다.

이별 후, 죽은 사람마냥 지내던 게리온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헤라클레스와 재회한다. 이를 계기로 다시 타오른 삶의 불꽃은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을 북돋는다. 그는 운명에 이끌리듯, 헤라클레스, 그리고 헤라클레스의 새로운 애인과 함께 자신의 내면을 상징하는 화산을 향해 여행을 떠난다.

그리스 고전을 포스트모더니즘적으로 해석한 책은 난해한 상징과 은유가 넘쳐난다. 하지만 모든 인간 안에서 괴물성을 보았다던 카슨의 말을 염두에 두며, 독자 자신의 괴물성에 대해 사유하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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