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상 - DNA 수선과정

2015년도 노벨 화학상은 DNA 수선 과정에 대해 연구한 세 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토마스 린달(Tomas Lindahl), 폴 모드리치(Paul Modrich), 아지즈 산자르(Aziz Sancar)가 그 주인공이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세 사람은 세포가 DNA 수선을 통해 유전정보를 보호하는 체계를 분자 수준에서 규명했다”라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감수 | KAIST 생명과학과 강창원 교수, 서연수 교수

 

불안정한 DNA, 수선 체계 필요해
DNA는 네 종류의 핵염(nucleotide) 단량체로 구성된 고분자 물질이다. 핵염의 배열 순서에 따라 유전 정보가 달라지므로, 염기 서열 변화 없이 DNA를 복제하고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학계에서는 DNA가 매우 회복력이 높고 안정한 물질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진화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돌연변이가 필요하지만, 한 세대에 일어날 수 있는 돌연변이 수는 극히 적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당시 RNA를 연구하던 토마스 린달은 RNA 분자가 열에 의해 빠르게 분해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DNA의 안정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몇 년 후 토마스 린달은 이론적인 계산을 통해 DNA가 매일 수천 번씩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그는 생명을 유지하려면 DNA의 오류를 수선하는 체계가 필요할 것으로 추측했다.

아미노제거반응 고치는 염기절제수선
네 가지 핵염 중 가장 돌연변이가 일어나기 쉬운 것은 C다. C가 염기에 있는 아미노 그룹을 잃어버리면 RNA가 지닌 또 다른 염기이자, A와 상보적 결합을 이루는 U(Uracil)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C가 U로 변한 사슬을 거푸집 삼아 DNA 복제가 일어나면, 본래 G가 연결되어야 할 자리에 A가 들어간다. 즉,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토마스 린달은 바로 이러한 돌연변이를 탐지하고 제거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했다.
C가 U로 바뀌는 아미노제거반응(deamination)은 사람 세포에서 하루에 대략 100회 정도 일어난다. 이와 같은 변이는 염기절제수선(base excision repair)을 통해 수선된다. 염기절제수선 과정은 다음과 같다. DNA glycoside 절단효소(glycosylase)가 작용해 DNA 염기서열에 존재하는 U를 탐지한 후, U와 핵당(nucleoside) 사이 결합을 끊어 제거한다. 그 후 여러 가지 핵산분해효소가 차례로 작용해 남아있는 당-인산 잔기를 DNA로부터 분리한다. 뒤이어 DNA 중합효소와 DNA 연결효소에 의해 C을 가진 올바른 핵염이 빈 자리를 채운다.
토마스 린달은 처음에는 박테리아의 염기절제수선에 대해 연구했으며, 이후 사람을 비롯한 진핵생물의 염기절제수선에 대해서도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1996년, 토마스 린달은 사람의 염기절제수선을 실험실에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사람은 적어도 여덟 가지 glycoside 절단효소를 갖고 있다.

자외선은 DNA 돌연변이 일으켜
DNA 돌연변이는 자외선, 흡연, 독성물질 등 외부 환경 요인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 아지즈 산자르는 그중에서도 자외선에 의해 일어난 DNA 변이를 수선하는 방법인 광재활성화(photoreactivation)과 핵염절제수선(nucleotide excision repair)에 대해 연구했다.
핵염의 네 가지 염기는 A와 G 등을 포함하는 퓨린(purine), C와 T 등을 포함하는 피리미딘(pyrimidine)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피리미딘 염기는 자외선에 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DNA 사슬 중 이웃한 피리미딘 염기에 자외선을 쬐면 결합해 피리미딘2량체를 형성한다. 피리미딘2량체를 이룬 염기는 맞은편의 염기와 결합할 수 없으므로 DNA 복제와 번역 과정에서 장애를 일으키며, 자외선에 의한 세포예정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외선 돌연변이 수선하는 두 체계
자외선에 의한 DNA 변이를 수선하는 방법에는 광의존 시스템(light-dependent system)과 암흑 시스템(dark system)이 있다. 광의존 시스템에서는 광분해효소(photolyase)가 작용한다. 광분해효소는 파장이 300nm에서 600nm 정도인 가시광에 의해 활성화돼 사이클로뷰테인-피리미딘2량체를 제거한다. 이를 광재활성화라 한다. 아지즈 산자르는 광분해효소를 발견하고, 박테리아가 이를 과잉생산하게 했다.
이후 아지즈 산자르는 암흑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러던 중 1960년대 중반에 uvrA, uvrB, uvrC라는 세 유전자가 박테리아의 암흑 시스템과 연관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지즈 산자르는 이를 이용해 세 유전자로부터 합성되는 효소인 UvrABC 핵산내부가수분해효소를 동정(同定)한 후 분리해 그 역할을 찾아냈다. 이 효소는 돌연변이 발생 부분을 포함한 핵염 12~13개를 제거한다. 이러한 DNA 수선 방식을 핵염절제수선이라고 부른다.
아지즈 산자르는 박테리아 핵염절제수선 연구 이후 사람의 핵염절제수선에 대해 연구했다. 그 결과 인간의 핵염절제수선은 박테리아보다 복잡하나, 원리는 비슷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후 아지즈 산자르는 광재활성화의 세부 과정을 밝혔다. 또한, 사람에서는 광재활성화가 일어나지 않지만, 비슷한 현상이 생체시계에 나타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모드리치는 복제 오류 수선 연구해
세포는 DNA의 두 가닥 중 하나를 거푸집 가닥으로 삼고 맞은편 가닥에 상보적인 핵염을 연결해 DNA를 복제한다. 이 과정에서도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폴 모드리치는 DNA 복제 과정에서 오류를 수정하는 방법인 오류쌍수선(mismatch repair)에 대해 연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오류쌍수선의 가장 핵심적인 과정은 DNA 메틸화(methylation)다.

거푸집 가닥 표지하는 DNA 메틸화
복제과정에서 일어난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서는 두 DNA 가닥 중 어떤 것이 거푸집 가닥이고, 어떤 것이 오류를 가진 새 가닥인지 구분해야 한다. 대장균에서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DNA 메틸화다. 1970년대 말 듀크 대학교의 교수였던 폴 모드리치는 DNA에서 GATC 서열을 인지한 후 A에 메틸기를 붙이는 메틸화효소 Dam(DNA adenine methylase)에 관심을 가졌다. 폴 모드리치는 Dam으로 인해 연결된 메틸기가 특정 제한효소의 절단 위치를 가리키는 표지판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밝혔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매튜 메셀슨(Mattew Meselson)은 메틸기가 DNA 수선에서도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는 추론을 내놓았다. 이에 폴 모드리치와 매튜 메셀슨은 메틸화와 DNA 수선 사이의 연관관계를 찾기 위해 함께 연구했다. 두 사람은 불일치 염기쌍이 여러 개 포함된 DNA를 가지는 바이러스를 만든 후, 바이러스의 DNA 중 한 가닥에만 Dam을 이용해 메틸기를 붙였다. 그 후 이 바이러스를 박테리아에 감염시키자, 박테리아가 메틸기가 없는 DNA 가닥만을 교정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실제 대장균에서는 복제가 끝난 후 새로운 가닥에서도 메틸화가 이루어지지만, 메틸화가 진행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므로 그동안 오류쌍수선이 이루어진다.

사람의 수선 체계는 밝혀지지 않아
박테리아의 오류쌍수선 과정을 자세히 연구하는 데 성공한 폴 모드리치는 이후 사람의 오류쌍수선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그 결과 사람의 오류쌍수선은 정확도가 99.9% 정도로 매우 높으며, 사람과 박테리아에서 오류가 일어난 염기쌍을 인지하는 단백질이나 제거하는 효소가 비슷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사람의 오류쌍수선에서 거푸집 가닥과 새 가닥을 구별하는 방법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사람을 비롯한 진핵생물에서는 DNA 메틸화의 역할이 박테리아에서 수행하는 역할과 다르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밝혀낸 것 이외에도 세포 내에는 다양한 DNA 수선 체계가 있다. DNA 수선 체계는 손상된 DNA를 수선함으로써 생물의 유전체가 붕괴하지 않도록 유지한다. 이러한 수선 체계가 없다면 DNA가 입은 손상을 고칠 수 없어 다양한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다양한 암이 DNA 수선 체계에 발생한 장애 때문에 일어나며, 현재 DNA 수선 체계를 조절해 암을 치료하려는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성과가 항암제 올라파립(olaparib)이다. 이처럼 이번 노벨화학상을 받은 세 과학자의 연구는 기초연구로서 생명을 이해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도 응용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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