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온라인 게임, 잃어버린 권리, 잃어버린 애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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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온라인 게임, 잃어버린 권리, 잃어버린 애교심
  • 익명의 POSTECH 학생
  • 승인 2015.09.1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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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최근 POSTECH에서 게임 정책 관련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는 POSTECH과 많은 점에서 닮은 만큼, 일련의 사건에서 배울 점이 많아 보입니다.


이 글에서 언급되는 모든 개인, 단체는 우리 학교 소속이 아닌 POSTECH 소속입니다.
기고글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금 POSTECH의 학생들은 권리가 지켜지느냐 마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지난 6개월간, 학술정보처는 새벽 2시부터 온라인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게임 셧다운제’를 시행했다. 그런데 별안간 학술정보처는 온라인 게임 접속을 완전히 차단하거나 일부 시간대만 허용하는 정책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군다나 이러한 학술정보처의 야망이 드러나면서 그동안 온갖 문제들이 터져 나왔다. 학생 의견 무시부터 포비스 (POSTECH Vision Information System, 교내 전자정보 시스템으로, 수강신청, 성적확인 등부터 자유게시판, 교내회보 등의 기능까지 제공한다. 로그인해야 하므로 외부인은 열람할 수 없다.) 자유게시판 검열까지 학교 시스템의 온갖 문제점을 드러내었다.


온라인 게임 과몰입,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논의
온라인 게임 과몰입 문제는 2010년부터 보직자 회의에서 거론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2014년도 말에 학술정보처에서 온라인 게임 셧다운제를 시행하겠다고 했고, 이 때문에 총학생회와 학술정보처는 몇 번의 회의를 거쳤다. 그리고 여기서 첫 번째 문제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1월 28일에 있었던 회의의 속기록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은 말이 오갔다.


(인용 시작, 전략)

학술정보처장 학생들이 제시한 방안도 병행할 것이다. 하지만 게임 규제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 확신과 신념을 지니고 하려는 것이다.
총학생회장 대부분 학생이 반대하는 정책을 개인적인 신념으로 진행하겠다는 것이 민주적인 의사결정이라고 보시는지?
학술정보처장 이번 의사결정 과정은 매우 민주적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지금도 총학생회의 의견을 듣고 그렇게 한다고 하는 것 아닌가?
총학생회장 저희가 가져온 의견에는 셧다운 제도 폐지가 제일 첫 번째이다.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학술정보처장 무엇이 됐든 셧다운 제도 폐지는 생각하지 않겠다. 개인의 신념과 확신으로 진행할 것이다.
(중략)
정보기술지원팀장 학생들은 정책 구상에 있어 파트너가 아니다. 같이 얘기해서 좋은 방향으로 가자고 이번 미팅을 한 것이지 저게 ‘좋네, 나쁘네.’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안은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 하지만 정책은 6개월 한시적으로 시행하겠다.
총학생회장 처장님은 이 회의에 통보하시려고 나온 것인가?
학술정보처장 통보가 아니다. 우리 정책을 시행할 것을 알려주려고 나온 것이다.
총학생회장 그러한 방식은 학생의 입장에선 통보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학술정보처장 그렇다면 통보이다. 정책을 한번 시행해 보겠다는 것이다. 셧다운 제도와 총학생회가 가져온 안 모두 병렬적으로 시행할 것이다.
(후략, 인용 끝)


총학생회 입장은 ‘셧다운제 폐지’였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총학생회가 가져온 여러 가지 대안을 ‘병렬적으로 시행하겠다.’고 이야기하며 학생의 의견을 전적으로 무시했다. 또한, 이 정책은 목적마저 불분명했다. 셧다운제가 있더라도 VPN 등으로 쉽게 우회할 수 있었으며, 학술정보처 역시 이 사실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게임으로 인한 다른 여타 문제, 예를 들어 룸메이트의 수면권 침해 등의 경우 총학생회에서 대안을 내놓았다. 결국, 이 사태는 개인의 신념으로 정책이 제시되고 모든 학생이 반대하는 정책이 무리 없이 시행되는, 비민주적인 정책 결정 시스템을 보여주었다.


학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더욱 강경한 정책 검토해
그렇게 3월 1일부터 정책이 시행되어 대략 5개월이 지나고, 한시적으로 시행하겠다는 셧다운제를 재고해야 할 때가 왔다. 그런데 8월 중순쯤, 어떤 학우가 회의 현장 사진을 촬영하여 페이스북에 게시하였다. 게임 차단 정책을 고려하는 회의였다.

 


이 사진은 일파만파 퍼졌고, 심지어 포비스 자유게시판에도 올라갔는데, 학교 측은 이 사진을 빠르게 삭제 했으며, 학술정보처장은 교내회보에 “허가 없이 촬영된 사진(이미지)이 공공게시판 및 SNS에 게시된 사안에 대하여 엄중한 책임을 묻도록 할 계획입니다.”라고 게시하였다. 학생들에게 회의 내용이 비공개일 뿐만 아니라 게시판까지 검열하는 학교의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또한, 총학생회가 제시한 다른 방안들, 예를 들어 게임 과몰입이 의심되는 학우에게만 온라인 게임을 차단하는 방안 등을 예산 부족을 이유로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3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고려했다. 최근에는 학교의 재정 상태를 빌미로 학식 위탁이나 기숙사비 인상 등 학생 복지에 반하는 정책을 쏟아내는 와중에 이러한 회의 내용이 밝혀져 더 큰 논란이 되었다.


납득 어려운 정책 근거
이에 분개한 많은 학우가 포비스 자유게시판에 학교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작성하였고, 또한 김상수 학우(생명 13)는 현 정책의 진행 상황과 추후 계획에 대한 정보 공개 청구를 신청했고, 이에 학교는 아래 그래프가 포함된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그래프는 많은 문제가 있는데, 먼저 이 정책은 POSTECH의 전체 학생의 통계를 바탕으로 나온 정책이 아니라 게임을 가장 많이 하는 20명의 사용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정책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게임 이용 시간이 줄었다는 자료도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나온 자료가 아니다. 또, 정책 전, 후로 뚜렷한 변화가 있었는지도 알기 어렵다. 게다가 해당 자료에서 학술정보처는 ‘VPN, 스마트폰 테더링 등의 우회 방법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위의 자료를 통해 정책의 ‘실효성’이 입증되었으며, 구성원의 호응이 있었다고 적었다.


결국 일련의 사건은 POSTECH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불통, 목적 없는 정책, 검열, 거기다가 실망스러운 해결책까지.
총학생회에서는 학술정보처의 게시물에 대응하여 오는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48시간 동안 릴레이로 게임을 하는 ‘48시간 릴레이 게임 이벤트’를 열기로 하였다. 또한 한편으로는 총학생회는 이러한 문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기를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9월 1일부터 김용민 총장의 임기가 만료되고 김도연 총장이 새로 부임하기 때문이다. 또한 입학학생처장과 학술정보처장 등의 보직도 임기가 만료된다. 그래서 학우들은 새로 부임하는 총장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참고로 9월 1일에는 김도연 총장의 취임식이 있을 예정이다.


게임 셧다운제 정책의 문제는 게임 셧다운제의 문제만이 아닐 뿐만 아니라, POSTECH만의 문제도 아니다. 게임 셧다운제 정책의 문제 원인 중 하나는 정책의 대상이 되는 학우들이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비단 게임 셧다운제의 문제가 아닌, POSTECH에서 쏟아내는 여러 정책, 가령 기숙사비 인상과 학식 위탁 등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이는 POSTECH이 아닌 전국의 대학에서 나타나는 문제이다. 지난 6월 3일, 고려대 염재호 총장은 ‘학생과 총장의 대화’에서 ‘학생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없다’와 같은 요지의 발언을 하여 문제가 되었다. 카이스트 역시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대학생은 성인이고 민주시민이며,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 민주주의의 의의는 ‘자신의 대표자가 도장을 찍은 정책에만 따르겠다.’는 것이다. 우리 역시 우리가 수긍한 정책에만 따를 권리가 있다. 우리는 민주 시민이고 성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금 더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필요성이 있다. 만약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제2의, 제3의 셧다운제는 계속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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