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휴머노이드 로봇인, 휴보(HUBO)가 이번 여름에 어마어마한 일을 해냈다. 미국 국방성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주최하는 재난로봇대회(DARPA Robotics Challenge; DRC)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DRC에서 휴보의 경기를 응원하고 현장을 지켜보기 위해 나를 포함한 KPF(KAIST Presidential Fellowship) 학부생 5명은 DRC 옵서버가 되어 6월 3일부터 6월 8일 5박 7일의 일정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의 포노마 콤플렉스 DRC 경기장으로 날아갔다.

이틀간의 경기 중 첫날, 휴보의 차례가 되자 많은 관객과 미디어의 눈이 휴보에게 쏠렸다. 휴보는 믿기지 않는 속도로 운전, 하차, 문 열기, 밸브 돌리기의 미션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때까지 저렇게 빠른 속도로 정확히 미션을 수행하는 팀은 없었다. 그러나 벽 드릴링 미션에서, 휴보는 실패했고, 끝까지 그 미션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첫날, 휴보는 7점으로 5위를 기록했다.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Team KAIST의 멤버들이 상심하지 않고, 내일을 위해 마음을 굳게 먹길 간절히 바랐다.
둘째 날 오후가 다 되어, 다시 휴보의 차례가 되었다. 휴보는 전날 고전을 면치 못했던 벽 드릴링 미션을 신중하고 가뿐하게 수행해버렸다. 그리고 이어진 서프라이즈, 장애물, 계단 미션도 성공적으로 마치며 44분 28초라는 엄청난 기록으로 8점 만점을 받았다. 만점을 받은 세 팀 중 휴보가 가장 빨랐다. 휴보가 정말 해냈다, 세계 1등을.

1년간 이 대회를 위해 준비해온 Team KAIST에 비한다면, 우리가 보고 느낀 시간은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였지만, 굉장히 인상적인 순간들이었다.
먼저, 나는 카이스트 학생으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다. DRC는 가장 기록이 좋았던 휴보 팀이 44분에 경기를 마쳤을 정도로 템포가 길다. 하지만 DRC 현장의 관객석은 올림픽 경기장처럼 환호와 격려로 넘실거렸다. 모든 관객이 휴보에 집중하며 감탄할 때, 내가 휴보를 만든 것도 아니지만, 괜히 뿌듯했다. 휴보가 드릴로 벽에 구멍을 내려 고생할 때는, 원래 휴보의 실력만큼 기량을 내지 못함이 안타깝고 분하였다. 로봇에 대한 연구가 뒤늦게 시작하였고 그 환경이 다른 국가보다 열악한 대한민국이 첨단 로봇 분야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벅차고 설레었다. 또한, 그를 내 학교, KAIST에서 견인하고 있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자랑스러웠다.

또한, 다양한 국가, 배경의 엔지니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를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세상이 좋아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든든했다. 로봇들이 넘어지고, 엔지니어들이 경기장 트랙 안으로 뛰어들어올 때, 경기 중계 화면에서 조종실을 비춰줄 때, 아슬아슬한 참가팀 본부를 둘러볼 때, 그들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상용화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어 당장 돈을 벌게 해주지 않는 로봇 연구를 하고, 1년 간 준비해온 대회를 위해 보름이 넘는 시간을 열악한 숙소에서 버티기도 하는 그들이 세상을 위한다는 거창한 사명을 품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들 덕에 세상의 많은 사람은 조금 더 좋은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Team THOR 팀 리더로 DRC에 참여한 데니스 홍 교수님이 DRC가 끝난 뒤, “이 대회의 이름은 다르파 로봇 ‘도전’(challenge)이지 다르파 로봇 ‘경쟁’(competiton)이라 부르지 않지요. 다른 팀들을 상대로 “경쟁”하기보다는, 인류를 구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더 큰 문제에 대해 함께 “도전”하는 것이지요.”라는 글을 쓰셨다.

휴보의 우승은 우리 휴보와 카이스트의 성취이기도 하지만, 세계를 위해 1등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자격을 부여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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