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우울한 얼굴의 천사다’

삶의 고뇌와 예술의 번민에 잠긴 채 요절한 비운의 화가 아마데오 모딜리아니. 그는 얼굴과 목이 길고 눈동자가 없는 독특한 인물 표현방식으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그림으로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고자 했던 화가 모딜리아니를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파리 예술인의 인명사전
전시장 안에서는 초상화 외의 다른 그림을 찾아볼 수 없다. 모딜리아니는 오로지 인물화를 고집하며 파리 화단에서 독자적인 화풍을 선보였다. 하지만 가난한 예술가였던 그는 모델을 따로 고용하는 대신 친구, 화상, 동료 예술인을 모델로 삼았다. 이런 이유로 그의 작품 목록은 20세기 초 파리 예술인의 인명사전이라 불리기도 한다. 초기의 모딜리아니는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 몽마르트에 머물며 실험적인 작업을 이어나갔다.
 
조각으로 외도를 꿈꾸다
1909년, 모딜리아니는 예술의 새로운 중심지 몽파르나스로 작업지를 옮겼다. 화가로서의 성공에 불안과 한계를 느껴 한동안 조각에 몰두했다. 그가 제작하고자 했던 ‘여인상기둥(caryatids)’은 머리로 지붕이나 발코니를 받치는 그리스 이오니아 건축양식의 기둥상이다. 조각을 향한 그의 피나는 노력은 여인상 기둥을 그린 수많은 드로잉과 유화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1913년 말, 경제적, 건강상의 이유로 조각을 포기하면서 자연히 여인상 기둥 드로잉도 멈추고 만다. 조각가로서의 경험은 후기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대표하는 비정상적으로 긴 얼굴과 목, 그리고 생기 없는 눈은 그림 속 인물을 마치 조각상처럼 그려낸다. 
 
허공을 바라보는 여인의 초상 
1915년 전까지 모딜리아니가 그린 그림은 남성의 초상화가 압도적이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많은 남성이 징용되면서 그림의 모델로 연인, 화상의 부인, 지인들이 등장한다. 점차 인물의 시선 처리에서 없어서는 안 될 눈동자가 배제된다. 정면을 향한 인물들은 동공이 사라지며 오히려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후기 작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그의 연인 잔느 에뷔테르느이다. 그가 33세 때 만난 19세의 소녀 잔느는 가난한 화가의 ‘뮤즈’가 되었다. 모딜리아니는 그림 속의 잔느를 후광을 두른 듯한 부드러운 빛의 효과로 사랑스럽게 묘사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생활고와 모딜리아니의 음주벽이 반영된 듯, 그림 속의 여인은 어딘가 처연한 표정으로 우리를 응시한다. 그녀는 모딜리아니가 사망한 다음 날, 만삭의 몸으로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누드, 가장 원초적인 아름다움
1917년 이후 작업한 누드화는 한층 성숙해진 모딜리아니의 후기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모딜리아니는 신화나 풍경, 계급비판 등의 소재를 배제하고 여체의 원초적인 절대미를 자유롭게 표현했다. 또한, 전혀 안면이 없는 누드모델을 고용해 대상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작업했다. <머리를 푼 채 누워있는 여성의 누드>는 밀도 있는 색채감과 강렬한 시선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1917년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을 열어 누드 두 점을 출품한다. 하지만 작품이 외설적이라 판단해 경찰이 출동하고, 개인전은 실패로 돌아간다.
 
모딜리아니에게 그림은 모델과의 정신적 교감을 위한 통로였다. 전통을 파괴하던 아방가르드 시대에 살고 있었음에도 가장 전통적이면서 단순화한 형태의 인물을 그리며 자신만의 개성적인 표현양식을 구축했다. “내가 당신을 온전히 이해할 때 눈동자를 그릴 것이다”라고 말하며 동공이 없는 눈과 표정이 없는 굳은 입술을 그렸던 모딜리아니는 마지막순간에는 인간을 이해했을까.
 
 

 

 
사진 | 모딜리아니 전시본부 제공
장소 | 한가람미술관
기간 | 2015.06.26.~2015.10.04.
요금 | 15,000원
시간 | 10:00 ~ 20:00
문의 | 02) 72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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