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편광은 키랄성이 없는 물질에 키랄성을 전달해 나선형 구조를 만들 수 있어… 키랄성 물질의 기원 밝힐 초석 마련해

화학과 김상율 교수, 서명은 교수 공동 연구팀이 원편광을 이용해 나선형 구조체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키랄성 물질의 기원을 탐구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관련 논문은 지난 4월 23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되었다.

양날의 검, 키랄성 물질
자연에는 거울상 대칭이면서 단순히 회전하여 서로 겹칠 수 없는 물질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물질을 키랄(chiral)하다고 하며, 각 물질을 키랄성(chirality) 물질이라고 부른다. 키랄한 두 물질은 여러 물리적인 성질은 같으나, 화학적 성질은 확연히 다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탄소 화합물이다. 탄소에는 결합 부위가 4개 있으며, 각 부위의 결합기를 치환해 거울상 이성질체를 만들 수 있다. 탄소 화합물 중에는 촉매나 약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물질이 많지만, 그 거울상 이성질체는 유용한 기능이 없거나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우리에게 이로운 키랄성 물질만을 분리하기 위해 키랄성 물질이 갖는 특성을 연구해왔다.

키랄성 물질의 기원은 알려지지 않아
그중 한 분야가 키랄성 물질의 기원에 관한 연구다. 키랄성 물질이 어떻게 생성되었느냐는 질문은 자연과학계에서 아직 해결하지 못한 근본적인 의문 중 하나다. 학계에서는 빛 때문에 키랄성 물질이 등장했다는 것이 정설이었지만, 이를 증명할 근거가 부족했다.
이번 연구는 초분자 키랄성 물질의 기원에 관한 연구로, 더 나아가 최초의 키랄성 물질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밝히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초분자(supra-molecular) 키랄성 물질은 커다란 키랄성 분자 또는 여러 분자가 이루는 키랄성 화합물을 의미한다. 그중 나선형 구조체가 대표적인 예다. 나선형 구조체에는 각각 오른나사 방향과 왼나사 방향을 갖는 두 종류가 있으며, 두 물질은 서로 겹칠 수 없는 거울상이다.

빛과 자기 조립이 만드는 나선 구조
연구팀은 초분자 키랄성 물질의 기원이 편광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팀은 원편광과 분자의 자기 조립(self-assembly)*을 이용하여 이를 증명하려 했다. 원편광은 빛의 궤도가 나선을 그리는 편광을, 자기 조립은 같은 종류의 분자끼리 상호 작용해 구조물을 만드는 현상을 의미한다.

 

▲ 원편광을 받아 나선형 구조체를 형성하는 TPA / 김상율 교수 제공

TPA는 원편광을 받아 나선을 형성해
연구팀은 분자에 원편광을 쪼이면 분자의 자기 조립을 통해 나선형 구조체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연구에 사용된 트라이페닐아민(triphenylamine, 이하 TPA)**에 있는 페닐 고리 3개는 한 평면 위에 있지는 않다. 하지만 각 고리의 어긋난 정도가 심하지 않아 구조가 평평한 편이다. 외부의 개입 없이 TPA 분자끼리 자기 조립이 일어나면 분자는 무질서하게 쌓여 키랄하지 않은 물질을 형성한다.
하지만 실험 결과 TPA 용액에 원편광을 비추면 나선형 구조체가 생기며, 만들어진 나선 구조는 원편광의 궤도와 그 모양이 같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김상율 교수는 “이 현상의 정확한 과정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TPA 분자가 원편광의 전기장에 영향을 받아 자기 조립이 일어나는 도중 회전하여 나선형 구조를 형성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빛을 이용하여 키랄하지 않은 물질로부터 키랄성 물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인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김 교수는 “후속 연구를 진행하여 초분자뿐만 아니라, 크기가 작은 분자가 갖는 키랄성에 대해서도 연구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자기 조립*
외부 개입 없이 분자끼리 결합하는 현상. 이번엔 나선형으로 구조체가 생기도록 구조가 평평한 물질을 사용했다

트라이페닐아민(TPA)**
질소 원자에 페닐 고리 3개가 연결되어 있는 물질. 원편광을 받으면 각 TPA 분자가 회전해 나선 구조체를 형성한다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