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없는 곳은 없다. 길거리의 간판들, 우리가 매일 보는 전공 서적, 보고서 등 활자는 모든 곳에 쓰인다. 글의 목적은 내용 전달이기 때문에 활자 디자인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글이더라도 폰트나 레이아웃에 따라 가독성이 현저하게 달라진다. 또한, 활자는 글에 담겨 있는 감정이나 성격도 표현할 수 있다. 활자를 보면 외형적인 특징에 따라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성 때문에 타이포그래피 해체주의의 선구자인 데이비드 카슨은 ‘티입은 스스로 말한다’라고 하기도 했다.
이번 호 문화면에서는 타이포그래피와 레이아웃에 대해 다룬다. 더불어 플래시 기반의 발표자료를 쉽게 만들 수 있는 ‘프레지’라는 프로그램의 사용법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많은 학우가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가독성이 뛰어난 보고서나 발표자료를 좀 더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타이포그래피란
타이포그래피의 전통적 의미는 활판 인쇄술이다. 그러나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중요시됨에 따라, 타이포그래피는 전달의 한 수단으로서 활자를 기능과 미적인 면에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이나 학문을 의미하게 되었다.
전통적인 타이포그래피의 경우 미적 장식개념이 주된 관심사였다면, 현대 타이포그래피는 독자가 얼마나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지와 같은 기능에 핵심을 두었다. 타이포그래피 분야는 의미와 표현이 다양하고 깊어질 뿐만 아니라 그 영역도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현재 타이포그래피는 이미지, 타입, 그래픽, 색채, 레이아웃, 디자인 포맷과 같이 디자인에 관련된 모든 요소를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시각디자인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기능적 타이포그래피
활자가 ‘내용의 전달수단’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사용되었을 때 이를 기능적 타이포그래피라고 한다. 글자는 읽히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이 목적이 타이포그래피의 핵심이 된다. 활자는 기본적으로 읽기 쉬워야 한다는 것이다. 기능적 타이포그래피는 기능과 미의 적절한 조화를 요구한다.
모든 일반서적, 잡지, 광고물, TV자막, 신문 등의 매체는 기능적 타이포그래피의 분야에 속한다. 이런 매체의 본문은 적절한 자간과 행간, 띄어쓰기와 여백, 그리고 적절한 활자체와 모양을 요구한다. 독서심리와 지각심리, 그리고 과학적 데이터들이 기능적 타이포그래피를 만드는 기초가 된다.
지금 이 신문을 읽는 독자에게는 지극히 뻔하고 평범해 보이는 것들도 실은 주도면밀한 조직과 체계에 따라 레이아웃되어 있다. 이와 같은 디자인이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 기능적 타이포그래피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활자는 정보를 제공하되 독자의 생각이 해당기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본문의 모든 글줄과 단락은 체계적으로 디자인되어 있지만 이를 독자가 인식하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실험적 타이포그래피
실험적 타이포그래피의 경우에는 활자를 새로운 실험적 시각전달 재료로 사용한다. 활자와 타이포그래피 요소들이 역동적으로 표현되어 심리적, 미적 긴장감을 유도한다. 따라서 때로는 활자의 주된 기능인 ‘읽고 이해시키기’가 무시되기도 한다. 한 개의 활자가 지니는 내용보다 형태를 우선시해 이를 시각적 심볼로 본다. 현대예술은 이성적인 한계성에 매이지 않고 어떤 틀을 벗어나고자 시도하는 경향이 짙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보았을 때 실험적 타이포그래피는 현대예술의 한 분야로 무궁무진한 발전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한글과 타이포그래피
컴퓨터는 영어 이외의 언어권에 대해서 고민하고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폰트의 한글 적용에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 영어는 키보드에 있는 글자 94개만 디자인해도 한 묶음의 폰트가 나오지만, 한글꼴을 만들기 위해서는 2,350자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한글 활자는 많은 논의와 개발을 거쳤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한글 활자의 탈 네모화이다.
한글 활자는 낱글자의 구성 방법에 따라 네모틀 글자와 탈네모틀 글자로 구분할 수 있다. 네모틀 글자란 정해진 크기의 네모틀 안에 구성된 글자를 말한다. 훈민정음의 창제 초기부터 사용했기 때문에 익숙하고 한자의 병용이 쉽다. 따라서 오늘날 대부분의 한글 서체는 네모틀 글자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네모틀 글자는 모든 글자의 외곽이 똑같기 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진다.
1970년대에 한글의 기계화와 한글의 가독성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탈네모틀 글자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탈네모틀 글자는 낱글자의 특성에 따라 가로 또는 세로로 들쑥날쑥하게 구성되는 글자를 말한다. 탈네모틀 한글은 각각의 낱글자가 다양한 외곽을 갖게 되기 때문에 각 글자의 변별력이 높다. 또한, 탈네모틀 한글에 세벌체 디자인을 적용한다면 낱글자 67자만 제작하면 되기 때문에 경제적이다.
한글은 실험적 타이포그라피의 분야에서 보았을 때 매우 훌륭한 문자이다. 한글의 제자원리와 닿자, 홀자, 받침을 모아쓰는 원리에 질서를 부여하거나 조합, 변형을 하면 무수히 많은 형태가 탄생할 수 있다. 이때의 무작위성은 현대 디자인 조류의 한 줄기와 같은 맥락에 서 있다. 이제까지 한글 타이포그래피 연구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로 진행되었지만, 앞으로의 연구는 무궁무진한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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