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굶주림과 내전, 독재 정치, 그리고 삶에 지친 사람들이 ‘별’ 을 씹는다. 작중에서 별은 환각과 행복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상의 마약 마스탈라를 뜻한다. 만성적인 배고픔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마스탈라를 씹으면서 잠시나마 현실을 잊는다.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도 알려진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의 소설 <별을 먹는 사람들>은 이방인 목사의 시선으로 독재와 가난에 젖은 제3국을 바라본다.

이야기는 한 미국인 여자의 회상으로 전개된다. 독재자 호세 알마요의 옛 애인인 그녀는 난민을 돕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믿는다. 그들이 왜 가난한지 알지 못하면서 난민을 동정하고, 그들을 위한 도서관과 음악 홀을 짓는다. 정작 난민들은 읽고 쓰는 것은 물론 먹을 것조차 풍족하지 않았다. 그녀의 오만은 반미운동의 시발점이 되어 결국 정권을 무너뜨리고 만다. 애인의 명령으로 총살당할 위기에 처해서도 자신이 이 나라에 전화선을 놓았다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은, 그 명령이 전화로 전해졌다는 점에서 더욱 비극적이다.

호세 알마요는 미국 여자와 대조적인 사람이다. 남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인 그는 원시적이고, 무지하다. 악마가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 는 신비주의를 맹신하며, 악마에게 다가가기 위해 더 커다란 악을 찾는다. 선(善)이 존재하지 않는 호세의 현실에 미국 여자가 가져다 준 문명은 오히려 그에게 독이 된다. 호세가 순수한 인디언에서 독재자로 변모하는 과정은 두 문명의 충돌을 잔인하게 보여준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몽롱하게 마스탈라 잎을 씹는 호세의 어머니는 무력한 민중을 대변한다. 취하지 않고서는 현실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 로맹 가리는 ‘별을 먹는 사람들’이 비단 마약에 취한 자들만은 아니라고 역설한다. 호세는 자신의 별인 ‘악마’를 쫓기 위해 광대와 예술에 집착하고, 미국 여자는 난민들을 구제하겠다는 자아 실현에 몰입한다. 그들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것을 맹렬하게 갈망 한다. 지독한 현실 속에서 선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낯선 환상보다는 차라리 낯익은 악을 찾는다. 이들을 관전하는 이방인, 호와트 박사는 그제서야 왜 사람들이 아등바등 살아 가려 노력하는지 깨닫는다.

삶의 비참함과 허무를 독재자의 끔찍한 삶으로 더듬었음에도 작가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놓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환상에 취해있지만, 그럼에도 살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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