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온도에서 나사못처럼 생긴 결정을 만드는 액정의 성질을 활용… 원통형 구멍에 액정을 가둬 벽을 따라 결정이 생기도록 유도

우리 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원 윤동기 교수팀이 액정으로 이루어진 나선형 나노 구조체를 제작해 학계의 이목을 끌었다. 액정(liquid crystal)은 액체와 고체 사이 중간 상태로 존재하는 물질을 의미한다. 나선형 나노 구조체를 액정을 연구하는 분야에 활용하면 복잡한 모양의 디스플레이를 구현할 수 있어 유용하다. 이번 연구의 관련 논문은 작년 10월 7일 자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되었다.

▲ 나선 구조체를 만드는 액정의 자가 조립/윤동기 교수팀 제공

제작하기 어려운 나선형 구조
예전에도 나선형 나노 구조체를 만드는 기술이 있었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성공률도 낮아 효율이 높지 않았다. 당시 사용했던 대표적인 기술로는 나선형 틀을 만든 뒤 그 안에 액체 물질을 채워 넣어 응고시키는 방법과 구조체를 회전시키면서 만들어 나선형 구조체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 방법들은 구조체를 제작하기 위한 기기 비용이 많이 들고 생성된 나선형 구조체의 모양도 균일하지 않아 상용화하기 힘들었다.

자가 조립으로 결정을 이뤄
윤 교수팀은 새로운 방법으로 액정으로 이뤄진 나선형 나노 구조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액정이 자가 조립(self-assembly)하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자가 조립은 친수성 물질은 물과 섞이고, 소수성 물질은 기름과 섞이듯 친한 물질끼리 모여 복잡한 구조물을 만드는 현상이다. 이 때문에 액정은 온도가 낮은 곳에서 분자끼리 뭉쳐 나사못처럼 꼬인 모양의 결정을 만들 수 있다.

불안정한 구조물을 만드는 자가 조립
하지만 실제로 액정 분자의 온도를 낮춰 결정을 만들면 결정들은 한 가닥씩 생기지 않고 큰 가지에서 곁가지가 뻗어 나오듯 형성된다. 이 때문에 액정 결정이 여러 개 겹치는 부분이 생긴다. 결정이 겹치는 부분에서는 여러 결정이 한 곳에 쌓여야 해 구조물이 불안정해져 제어하기 힘들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액정의 자가 조립을 이용해 원하는 모양을 가진 나선형 구조물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액정이 뭉치는 공간을 제한해
윤 교수팀은 액정의 결정이 자랄 수 있는 공간을 제한해 문제를 해결했다. 윤 교수팀은 먼저 양극 산화 알루미늄 막(Anodic Aluminum Oxide, 이하 AAO)에 원통 모양의 구멍을 뚫었다. 그다음 액정을 넣고 AAO의 한쪽 부분을 가열한다. 그러면 가열하지 않은 부분은 온도가 낮아 그 부분부터 액정 분자의 결정이 생성된다. 이때 AAO의 비열이 커 구멍 속의 공기보다 온도가 낮으므로 결정은 구멍의 벽에서 생긴다. 따라서 액정 결정은 구멍의 벽을 따라 나선형으로 형성된다.

나선형 구조를 결정하는 구멍의 지름
윤 교수팀은 이 방법을 사용하면 나선형 나노 구조체를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모양까지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밝혔다. AAO에 뚫는 구멍의 지름을 늘이면 생성되는 나선형 구조의 두께가 굵어지는 것을 전자 현미경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는 윤 교수팀의 방법을 이용하면 구조체가 꼬이는 횟수를 조절할 수 있으며, 균일한 나선형 구조체를 여러 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기존의 액정을 활용한 기술에 전기 화학적 개념을 접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나선형 구조체는 기존 편광판과 다른 형태로 빛을 편광 시킬 수 있어 광학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윤동기 교수는 “두 학문의 융합을 통해 풀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며, 단순한 모양의 나노 구조체로 구현할 수 없었던 디스플레이 기술도 실현 가능해졌다”라며 연구의 의의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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